노동사목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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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하늘은 여직 개지 않았다
산재 유가족들의 기자회견이 있던 날, 밤새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어 잦아들었다.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잔뜩 흐려 있었다. 혹여 다시 비가 쏟아지진 않을까 염려하며 기자회견 장소인 건설회관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설회관 앞에는 피켓을 손에 든 산재 유가족들과 종교인들이 서 있었고, 정부 기념행사를 찾은 주요 인사들의 차량이 줄지어 들어섰다. 정오를 넘긴 오후, 푹 찌는 더위는 아니었지만, 검게 얼룩진 바닥의 빗물은 공기를 후텁지근하게 만들었고,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검은 차량들은 유가족들의 애끓는 마음을 더욱 짙게 했다.   묵묵히 서 있었고, 무심히 지나쳐 갔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의 목소리는 먹먹했다. 유가족들은 안전한 일터를 호소하며 다시 그날의 기억과 마주해야 했다. 상실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았고, 그리움은 울분이 되어 가슴 깊이 떨려 올라왔다. 유가족들에게 하늘은 여전히 잔뜩 흐려 있었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차마 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떠올리며 부족하나마 기도를 보탠다. 일터의 모든 이가 안전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언젠가는 유가족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하늘이 맑게 개기를.   * 이날(7월 9일) 기자회견에는 경동건설 故 정순규(미카엘) 님, 인우종합건설 故 문유식 님, 은하종합건설 故 김태규 님, 한익스프레스 이천 물류센터 화재 故 김형주 님, 건설노동자 故 강대규 님의 유가족들과 여러 종교인들이 함께했습니다.  
Fr.비오
아직 끝나지 않은 외침
고진수 노동자(세종호텔지부 지부장)는 올해 1월 14일, 336일 동안 이어온 고공농성을 해제하고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세종호텔 앞에 있는 도로 위 10m 높이 좁은 철제구조물에서의 투쟁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의 건강을 걱정했고, 교섭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방법을 찾겠다는 약속도 이어졌습니다. 저 또한 마음을 보태며 하루빨리 그가 내려오기를,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복직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전해진 고공농성 해제 소식에 당연히 당분간은 몸을 추스르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농성을 마친 당일에도 사측과의 7차 교섭에 직접 참여한 후에야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이러한 간절함이 교섭에 긍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지길 바랐으나, 7차와 8차 교섭 모두 "복직이 아니면 의미 없다"는 입장과 "복직 불가"라는 사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며 합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좀처럼 진전이 없는 교섭에 노동자들은 로비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실소유주가 직접 교섭에 나서라는 요구였습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복직 안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측 대표와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측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로비 농성을 이어가던 어느 날 아침, 해고 노동자들이 일하던 호텔 연회장에서 행사가 열렸습니다. 세종호텔은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식음료부서를 폐지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했으나, 임대 방식으로 연회장 영업을 다시 시작한 것입니다. 이를 본 해고 노동자와 연대하는 사람들은 즉각 항의했고, 그 과정에서 11명이 연행되었습니다. 연행자 대부분은 조사 후 석방되었지만, 고진수 노동자에게는 구속영장이 신청되었습니다. 다행히 시민 9천여 명이 석방 탄원서를 제출했고, 영장실질심사 결과 구속 사유가 없다고 판단되어 석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최근 다른 연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다시 구속되었고, 56일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이렇게 지나온 시간을 정리해 보니 고공농성, 평행선을 달리는 교섭, 로비 농성, 그리고 두 번의 구속까지... 참 답답하고, 구속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옵니다. 현장에서 투쟁하는 해고 노동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이들이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투쟁을 이어 나가는 이유는 단지 개인의 복직 때문만이 아닙니다. 경영상의 어려움이라는 핑계로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고, 그 자리를 불안정한 비정규직과 저임금 외주화로 채우는 기업의 행태, 그리고 이것이 당연시되는 사회에 맞서고 있는 것입니다. 이 외침에 의미가 있음을 확신하기에 이들은 오늘도 하루하루 목소리를 냅니다. 노동사목위원회는 월요일마다 세종호텔 농성장 앞에서 해고 노동자와 함께하는 미사를 봉헌합니다. 저는 그때마다 길어지는 투쟁 속에서 노동자분들이 지치지 않기를, 그리고 불쑥 밀려드는 미움과 억울함으로 마음을 다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또 노동이 단순한 생산 도구가 아닌 인간을 목적으로 하는 존엄한 행위임을 다시 되새깁니다. 점점 더 인간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차가운 세상에 맞서, 모두의 노동이 존중받는 날까지 마음을 모아 함께 걸어가고자 합니다.  
솔렌지아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제게 신앙은 당연함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엔 주일이면 성당에 가는 것은 정해진 일과였고, 성인이 된 이후엔 청년부 활동을 하며 성당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저에게 성당이란 공간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곳일 뿐, 신앙에 대해 깊이 생각한 시간은 많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고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신앙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이는 노동사목위원회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한층 더 깊어졌습니다. 세상의 아픈 현실을 마주할수록, 교리에서 이야기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알아갈수록, 깊어지는 고민은 더욱 어렵게 다가왔습니다. 늘 마음 한편에 그런 고민을 품고 살아가던 중, 노동사목위원회 교육 프로그램으로 가톨릭청년교리모임 '울림'을 기획했습니다. 봉사자들, 신부님과 함께 가톨릭교회교리서의 '그리스도인의 삶' 내용을 살펴보면서 저의 고민은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신부님께서는 강의에서, 우리가 하느님을 '성당'이라는 공간과 '주일'이라는 시간 안에만 가둬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주일 미사에 빠지면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 시간에는 하느님을 찾으며 기도를 드리면서도 정작 성당 문을 나선 일상에서는 그분을 잊은 채 무심히 살았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성당 제대 앞에 앉아 있는 ‘나’와 가정과 일터에서 살아가는 ‘나’는 같은 사람임에도, 하느님의 자리와 삶의 자리를 나누어 살아가던 이중적 모습을 돌아보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은 내 곁의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일상의 현장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 노력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정작 그분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기보다 익숙한 울타리의 편안함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우리의 신앙이 진심이라면, 주일뿐만 아니라 하루하루의 시간 속에서도 그분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은 때때로 아프고 버겁습니다. 당장 내 한 몸 건사하고 하루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날이 많기에 다른 이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손을 내밀라는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말처럼 멀게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노동사목위원회에서 연대활동을 하며 자신의 버거움보다도 먼저 이웃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보았고, 불의한 일 앞에서도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그분들의 삶은 평생을 그리스도인으로 산 저보다 더 그리스도인답게 느껴졌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힘들다 하기보다, 힘겨운 가운데서도 아주 작은 것 하나를 먼저 실천하려 애쓰는 것. 그것이 “믿을교리”를 고백하며 “지킬교리”를 실천하는 모습,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꾸어야 할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이 세상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함께 나누고 가난하고 힘든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자리는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곳은 성당의 제대 앞만이 아닌 우리가 매일 출근해 부대끼는 일터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는 성당 문을 나서는 순간 바래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이라는 더 넓은 곳에서 그 가치를 증명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응답일 것입니다.
마태오
인내
솔렌지아
길 위에 다시 선 ‘쿠팡’ 산재 유가족
작년 말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쿠팡의 도를 넘는 행태가 하나둘 본색을 드러내며 공분을 샀습니다. 대기업 규모의 대관 조직을 가동해 정부, 국회, 노동부 등을 상대로 로비를 시도했다는 기사도 전해졌습니다. 특히 전직 검사와 청와대 비서관 등 고위 공직자 출신을 대거 영입하여 노동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노동부 실무진에게 접촉했다는 기사는, 그간의 산재 은폐와 유족에게 행했던 무자비한 행태 등 쿠팡이 어떤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해 왔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쿠팡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쿠지게(쿠팡 지게차 계약직 사원), 헬퍼(소분 등 물류 현장 보조 업무), 워터(부자재 보조·운반 업무), 쿠팡 친구, 쿠리어·플렉서 등 파편적인 형태로 일합니다. 쿠팡 물류센터 한 곳당 일하는 노동자 약 2,500명 중 정규직은 겨우 5~10% 남짓이며, 대부분은 단기 계약직과 아르바이트 등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내 곁에서 일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구조 속에서 이 노동자들은 철저히 ‘노동력’으로만 존재했습니다. 알고리즘에 기반한 자동화 시스템은 노동자를 부품처럼 통제하게 했고, 이는 심각한 노동 강도와 폭력적인 노동 착취를 초래했습니다. 그리고 배송 기사들은 새벽·로켓 배송 시스템 속에서 쓰러져 갔습니다. 결국 많은 쿠팡 노동자가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산재는 매번 은폐되었고, 유가족은 따로 관리되며 대관 조직을 활용한 로비 방식으로 축소되었습니다. 2020년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청년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당시 27세였던 그는 계속되는 심야 노동으로 근무 기간 중 몸무게가 15kg이나 줄 정도로 과중한 업무를 지속해야 했습니다. 코로나19로 대폭 늘어난 작업 물량에 시달리며 인력 충원과 근무 장소 변경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건장했던 청년 ‘장덕준’님은 ‘과로사’로 무참히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고 장덕준 님의 부모님은 아들이 죽은 이유를 알고자 하였지만, 쿠팡은 부모님의 애끊는 슬픔을 외면하고 산재 판정 자료 요구에도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합의를 유도하여 유족은 더욱 힘들게 하였습니다. 결국 ‘사과 없는 합의’만 있었고, 유족은 이에 비통해하며 고통 속에 더욱 힘든 나날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5년이 흐른 2025년 12월. 쿠팡이 과로사를 은폐하려던 증거가 언론에 공개되었습니다. “그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도록 확실하게 하라” 이는 정보보호 책임자와 당시 쿠팡 한국법인 대표 김범석이 나눈 메신저 대화의 일부분입니다. 과도한 노동에 시달린 증거를 남기지 말라고 지시한 정황이 드러난 것입니다. 합의 당시에는 전혀 몰랐던 산재 은폐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어머니는 ‘피가 식는 느낌이었다’라며 또 다른 고통에 신음해야 했습니다. 이후 쿠팡을 고발했지만, 4개월째 조사 중이라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이러한 고통은 고 장덕준 님의 유가족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2020년 쿠팡 목천물류센터에서 돌아가신 고 박현경 님, 2020년 용인2물류센터에서 돌아가신 고 최성낙 님, 2024년 쿠팡 퀵플렉서로 일하다 돌아가신 고 정슬기 님 등 계속되는 쿠팡 일터에서의 죽음과 그 유가족에게도 유사한 고통은 반복되었습니다. 같은 슬픔을 가진 유가족들은 ‘이대로 두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와 ‘더는 안타까운 희생이 없어야 한다’라는 다짐으로 ‘쿠팡 산재 피해 유가족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4월 유가족은 전국 쿠팡 물류센터를 돌며 노동자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며 전단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쿠팡 유가족은 쿠팡의 ‘산재 은폐 인정’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과 무리한 기업 운영에 반발해 ‘탈팡’을 선택했던 시민들이 다시 쿠팡을 이용한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하는 어머니의 말씀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 속에서도 다른 유가족을 보듬으며 애써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유가족 1인 시위에 함께 섰습니다. “올여름에는 누구도 힘들지 않게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집으로 건강히 돌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베로니카
절제
솔렌지아
오월의 첫 날, 제 이름을 찾다
5월은 참으로 많은 의미가 담긴 달입니다. 어린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어린이날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되새기는 어버이날, 스승의 은혜를 기리는 스승의 날, 그리고 가톨릭 신자인 저에게는 공휴일이라 더 반가운 부처님 오신 날까지 있습니다. 이토록 다채로운 5월의 문을 여는 첫 번째 날, 바로 ‘노동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려 합니다.  노동사목위원회에 갓 입사했을 때, 달력에 적힌 ‘5월 1일 노동절’이라는 글자를 보았습니다. 당시 명칭에 민감했던 저는 웃으며 “오타가 있네요. 근로자의 날인데 왜 노동절이라고 적혀 있죠?”라고 말했습니다. 곁에 계시던 선생님들이 무언가 설명을 해주셨던 것 같은데, 당시엔 그저 ‘근로자의 날’이 정답이라고 믿었기에 그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을 배우며 ‘노동’이 지닌 참된 의미를 깨달아갈수록, 그때의 당당했던 제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1923년 조선 최초로 세계 노동절 행사를 개최하면서 이 날을 '노동절'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일제타도’를 외치며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절 행사를 하였고, 해방 이후 맞이한 1946년 5월 1일 노동절에는 전국노동조합전국평의회의 주도로 20만 명이 모여 행사를 개최하였습니다. 하지만 군사정부 시절(1963년) 노동이라는 단어가 북한 용어와 비슷하고, 저항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노동절’이라는 명칭은 ‘근로자의 날’로 강제 변경되었습니다.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노동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라고 나와 있는 반면에, 근로는 ‘부지런히 일함’으로 나와 있습니다. 노동은 노동자가 주체적으로 일을 한다는 내용이지만, 근로는 일을 시키는 사람이 주체로 노동자가 아무런 저항 없이 순응하며 일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인 저는 노예처럼 수동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 삶과 생계를 위해 주체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합니다. 여러 의미로 노동을 되찾기 위해 노동사목위원회에서는 2017년부터 “헌법 제32조 개정 운동 ‘근로’에서 ‘노동’으로” 캠페인을 이어 왔습니다. 처음부터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사회가 바뀌어 '근로'가 '노동'으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니 우리 노력이 결코 헛수고가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마침내 2026년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 아닌 ‘노동절’이라는 제 이름을 찾았습니다. 63년 만에 되찾은 이름인 만큼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노동 존중 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올해부터는 법정휴일로 변경되었고, 게다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택배기사와 같은 특수고용자까지 포함하면서 노동의 권리가 미치는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단어 하나가 바뀔 뿐인데 사회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습니다. ‘근로자의 날’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끄러운 과거의 제 모습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노동의 진짜 가치를 잊고 살았던 당시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 결과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5월 1일은 하루 더 쉬는 공휴일이 아닌 우리가 주체적인 ‘노동자’로서 존엄을 확인하는 날입니다. 앞으로도 현장의 노동자들과 발맞추며, 노동이 진정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향해 함께 걷겠습니다.
도로테아
제110차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미사 강론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사각지대 학창 시절, 교실에서 선생님들로부터 듣던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앞에서 보면 다 보인다”, “선생님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다” 같은 말씀입니다. 실제로 뒤에 눈이 달린 것은 아니겠지만, 학생들을 세심히 살피는 선생님의 마음은 책상 아래 숨겨둔 만화책이나 서랍 속 과자까지도 용케 찾아내곤 했습니다. 이러한 기억을 떠올려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각지대’는 단순히 시야각이 닿지 않아 보이지 않는 물리적 영역이라기보다, 우리의 관심이 충분히 닿지 않아 살펴지지 않는 마음의 영역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리가 의지를 갖는다면 사각지대는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운전할 때 고개를 돌려 ‘숄더체크’를 하면 안 보이던 옆 차선이 보이고, 비용을 들여 옵션을 넣으면 경고음이나 화면으로 사각지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각지대란 ‘볼 수 없는 부분’만이 아닌, ‘무언가에 의해 가려져 있는 부분’으로서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앞만 보고 서둘러 가려는 우리의 속도일 수도 있고, 늘 해왔던 대로의 익숙함을 고수하려는 타성일 수도 있습니다. “이 땅에서 일하는 모든 이의 생명과 존엄”을 지향으로 미사를 봉헌하는 오늘,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익숙함과 무관심에 가려진 노동자의 생명과 존엄 ‘모든 이’의 생명과 존엄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와 아는 사람, 내 관심사 안에 있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비록 지향문에는 ‘이 땅에서 일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이것이 실업 상태에 있는 이들을 배제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외려 이는 ‘우리 모두는 일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이’의 존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누구를 먼저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마치 ‘모든 이’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이들, 즉 ‘가려진 이들’을 우선적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대개 높은 곳만 바라보거나 또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아래에 있거나 옆 혹은 뒤에 있는 이들은 그다지 잘 살피지 않으려 합니다. 늘 그래왔던 익숙함에 눈을 가리우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영역에 스스로 사각지대를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떠올려봅니다. 스마트폰 앱을 몇 번 터치하면 음식이 배달되고, 새벽이면 문앞에 택배 상자가 놓입니다. 처음에는 감탄했던 이 편리함을 이제는 당연하게 여깁니다. “귀찮으니 배달시키면 되지”, “그분들에게 일을 주는 것이니 좋은 것 아닌가?”라며 배달 노동자들의 고단한 처지를 시야에서 슬그머니 가려버립니다. 익숙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법과 제도는 아주 오랫동안 ‘정해진 일터에서, 정해진 시간에, 계약상의 고용주를 따라’ 일하는 이들만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해 왔습니다. 이러한 관성은 땀 흘려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를 가려버립니다. 실질적으로는 종속적인 지휘·감독을 받으면서도 개인사업자나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플랫폼 노동자들, 서류 한 장 없이 노무를 제공하며 법적 보호의 울타리 밖에서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프리랜서와 이른바 ‘3.3 가짜 노동자’들, 그리고 먼 타국에서 와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가려져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노동자가, 일하는 평범한 사람이, 한 가정의 구성원이 우리의 관성과 이기심 그리고 무관심에 가려진 채 생명과 존엄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법과 제도의 거울에는 ‘노동자’로 비추어지지 못한 채 쉽게 지워집니다. 그리고 그 가려짐의 대가는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그리고 반복되는 산업재해 사망이라는 비극이 되어 우리의 지체를 잔혹하게 찢어놓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이 사각지대, 우리가 가려버린 그리스도의 벗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합니까? 단순히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며 시혜적인 태도로 기도에 이름을 올리는 것에 그쳐도 괜찮은 것이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바르티매오의 부르짖음과 우리의 응답 교회가 우리에게 전하는 복음의 가르침은 이웃의 아픔에 적선하는 태도를 넘어, 가려진 채 손상된 벗들의 존엄을 다시금 바로 세우는 실천으로 나아갑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입니다. 때문에 노동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 이전에,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존엄한 인간이 행하는 거룩하고 인격적인 행위입니다. 따라서 일하는 모든 이가 일터에서 죽지 않고, 안전하며 품위 있게 자신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동의 의무’가 됩니다. 세상의 편리함과 이익이 땀 흘려 일한 모든 이에게 정의롭게 돌아가도록, 공정한 분배와 정당한 임금을 보장하는 것. 일터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일하는 사람 기본법, 생명 안전 기본법, 정순규 방지법 등)을 만드는 것. 이와 같은 것들을 위해 애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사회적 실천이 되는 것이겠고, 이는 복음의 기쁨을 삶으로도 노래하는 구체적인 모습이 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들은 복음을 떠올려봅니다.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가 길가에 앉아 있습니다. 수많은 군중이 오가는 길이었지만, 그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철저히 가려져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픔을 알리며 자비를 외치는 목소리에도 사람들은 그를 보이지 않는 영역에 억누르려 하며,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습니다. 앞만 보고 바삐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의 서두름과 무관심은, 어쩌면 2천 년 전 바르티매오를 꾸짖던 군중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인간을 부품처럼 여기고 노동의 가치를 오직 돈으로만 치환하는 방식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우리이기에, 오늘 복음 속 바르티매오를 불러오라 하시는 말씀은 여전히 우리들의 마음을 일깨우려 하는 예수님의 음성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오늘날의 수많은 바르티매오들에게 잠자코 있으라 꾸짖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그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고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게”라고 연대의 말을 건네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다시금 오늘 복음 속 그리스도의 음성을 우리의 마음 안에 깊이 담아보았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또한 예수님의 자비를 입어, 가려진 이웃 안에서 그리스도를 찾아 뵙는 눈을 뜨게 되길 간절히 청하며, 바르티매오의 절박한 기도를 우리의 기도에 담아봅니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Fr.비오
멀어지지 않기 위한 머무름
솔렌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