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제게 신앙은 당연함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엔 주일이면 성당에 가는 것은 정해진 일과였고, 성인이 된 이후엔 청년부 활동을 하며 성당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저에게 성당이란 공간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곳일 뿐, 신앙에 대해 깊이 생각한 시간은 많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고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신앙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이는 노동사목위원회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한층 더 깊어졌습니다. 세상의 아픈 현실을 마주할수록, 교리에서 이야기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알아갈수록, 깊어지는 고민은 더욱 어렵게 다가왔습니다.
늘 마음 한편에 그런 고민을 품고 살아가던 중, 노동사목위원회 교육 프로그램으로 가톨릭청년교리모임 '울림'을 기획했습니다. 봉사자들, 신부님과 함께 가톨릭교회교리서의 '그리스도인의 삶' 내용을 살펴보면서 저의 고민은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신부님께서는 강의에서, 우리가 하느님을 '성당'이라는 공간과 '주일'이라는 시간 안에만 가둬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주일 미사에 빠지면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 시간에는 하느님을 찾으며 기도를 드리면서도 정작 성당 문을 나선 일상에서는 그분을 잊은 채 무심히 살았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성당 제대 앞에 앉아 있는 ‘나’와 가정과 일터에서 살아가는 ‘나’는 같은 사람임에도, 하느님의 자리와 삶의 자리를 나누어 살아가던 이중적 모습을 돌아보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은 내 곁의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일상의 현장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 노력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정작 그분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기보다 익숙한 울타리의 편안함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우리의 신앙이 진심이라면, 주일뿐만 아니라 하루하루의 시간 속에서도 그분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은 때때로 아프고 버겁습니다. 당장 내 한 몸 건사하고 하루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날이 많기에 다른 이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손을 내밀라는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말처럼 멀게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노동사목위원회에서 연대활동을 하며 자신의 버거움보다도 먼저 이웃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보았고, 불의한 일 앞에서도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 그분들의 삶은 평생을 그리스도인으로 산 저보다 더 그리스도인답게 느껴졌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힘들다 하기보다, 힘겨운 가운데서도 아주 작은 것 하나를 먼저 실천하려 애쓰는 것. 그것이 “믿을교리”를 고백하며 “지킬교리”를 실천하는 모습,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꾸어야 할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이 세상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함께 나누고 가난하고 힘든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자리는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곳은 성당의 제대 앞만이 아닌 우리가 매일 출근해 부대끼는 일터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는 성당 문을 나서는 순간 바래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이라는 더 넓은 곳에서 그 가치를 증명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응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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