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평화신문 2023. 0326]
주당 최대 69시간 근무 허용··· 노동계 반대 목소리 커
긴급 점검/ 근로 시간 개편안 쟁점과 교회의 우려는?
정부, 근로 시간 개편안 입법 예고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탄력 근무
노동계, ‘과로사 조장법’ 폐기 촉구
사용자, ‘생산성 향상 기대’ 환영
정부가 지난 6일 근로 시간 개편안을 입법 예고했다. 핵심은 주당 최대 근로 시간이 현재의 52시간에서 최대 69시간까지 늘어날 수 있게 되고, 야간, 휴일, 연장 근로 시간을 적립했다가 휴가로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업무가 많을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쉴 수 있게 탄력적으로 근로 시간을 조정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경영계에서는 찬성 입장을 밝혔지만, 노동계에서는 장시간 근로를 우려하며 반대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신중한 도입을 촉구했다.
개편안 요지는 탄력 근무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개편안은 기본 40시간과 최대 연장 12시간을 더한 주 52시간제 틀을 유지하되, 노사 합의를 거쳐 연장근로 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단위 기준별 연장 근로 시간은 △‘월’ 52시간(12시간×4.345주) △‘분기’ 156시간 △‘반기’ 312시간 △‘연“624시간이다. 다만 정부는 장시간 연속 근로를 막고, 실근로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분기 이상의 경우 연장 근로 한도를 줄이도록 설계했다. ‘분기’는 140시간(156시간의 90%), ’반기는 250시간(312시간의 80%), ‘연’은 440시간(624시간의 70%)만 연장근로를 허용한다.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전체 근로 시간을 관리하게 되면 주 단위 근로 시간이 매주 다를 수 있다. 업무가 몰리는 주에는 근로 시간이 많아지고, 적은 주에는 반대로 줄어드는 식이다. 이때는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근로할 수 있다. 정부는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자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저축한 연장근로를 휴가로 적립한 뒤 기존 연차휴가에 더해 안식월 개념처럼 장기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개편안을 만든 건 70년간 유지된 ‘주 단위’ 근로 시간 제도가 불합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 생산처럼 계절별로 일이 몰리거나 IT 개발자 등 특정 영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밤을 새워서라도 근무하는 게 필요한데, 우리 법이 이를 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개편안대로라면 근로자는 최대 주 69시간 근무가 가능하다. 노동계에서는 연장 근로제를 도입하면 일이 많아도 최대 69시간을 넘겨 일할 수 없고, 최소 40시간(법정 근로시간) 근로를 채워야 한다. 결국, 근로 시간이 늘어 날 것이란 우려다. 근로 시간을 적립해, 한 달씩 장기 휴가를 가도록 하겠다는 구상도 상사 눈치를 봐가며 연차를 쓰는 직장에서 제주 한 달살이 같은 장기휴가를 쓰는 것은 ‘그림의 떡’이 될 것이란 반응이 많다.
법안의 운명은
정부는 4월 17일까지 40일간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오는 6~7월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법안 통과 전망은 불투명하다. 우선 노동계와 사용자 간 입장이 확연히 다르다. 사용자 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기업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향상할 것으로 기대하며 환영했다. 다만 상공회의소는 ”11시간 연속휴식시간제 등은 기업별 상황에 맞게 노사가 자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고, 전경련도 “총근로시간 축소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계와 야당의 입장은 반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9일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안은 ‘과로사 조장법’이라며 현 개편안을 즉각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노총) 역시 “개편안은 어렵게 정착하고 있는 주 52시간 노동시간 한도제를 다시 과거로 회귀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장시간 압축 노동으로 노동자들을 내몰고 과로사를 조장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MZ세대를 주축으로 한 신생 노동조합 협의체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도 같은 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정부와 여당은 각계의 우려에 한발 물러선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은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서 무리”라는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2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임금 및 휴가 등 보상체계에 대한 불안이 없도록 확실한 담보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조만간 다양한 직군의 근로자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상도 기자
69시간 근로제, 노동자 과로사 급증 우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김시몬 신부
일과 생화의 균형 파괴하는 수준
노동자의 건강권과 쉴 권리 침해
포괄임금제 오남용 우려도 높아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김시몬 신부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일과 생활의 균형을 파괴하는 수준이며 노동자의 건강권과 쉴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며 반대 뜻을 분명히 밝혔다.
김시몬 신부는 13일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정부 계획이 현실화된다면 노동자의 과로사가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김 신부는 주당 최대 근로시간 증대로 장시간 근로가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 1928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617시간보다 311시간이 길다”며 “연장근무가 가능하다는 것과 해야 한다는 것은 차이가 크다. 누구를 위한 근무시간 연장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노동시간 규제 대상이 되지 못하는 특수 형태 근로종사자, 감시·단속 업무를 하는 경비 노동자, 재량노동자 등 수많은 노동자가 보호 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신부는 또한 포괄임금제 오남용 우려와 관련해서도 “노조가 없는 사업장일수록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실제 임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며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지적했다. 포괄임금제는 근로계약 체결 시 법정기준 노동시간을 초과한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이 예정된 경우 매달 일정액의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근로시간이 최대 69시간으로 늘어나면 사업주가 포괄임금제를 악용해 정해진 시간을 넘겨 일해도 수당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 신부는“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도 충분한 휴식과 여가를 누림으로써 가정, 문화, 사회, 종교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284항)”며 “OECD 국가는 평균 주35시간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재 노동시간을 더 줄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쉴 권리와 건강권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법 개정이 되지 않도록 국회가 노력해달라”며 “5인 미만 사업장과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와 같이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되지 않는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 했다.
도재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