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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성기업 고 한광호 노동자 추모 기도회
    • 등록일 2016-04-04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2548
  • 유성기업 故 한광호 형제 추모 기도회

     

    2016년 4월 4일(월) 11시 30분    

    시청앞 광장 

     

     

    [말씀의 전례 강론] 전문

     

    오늘 우리는 故 한광호 형제의 영혼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형제가 세상을 떠난지 벌써 3주가 가까워지고 있지만,

    언제 장례를 치를 수 있을지..

    언제 故 한광호 형제를 마음편히 떠나 보낼 수 있을지.. 기약 없지만

    그래도 그를 기억하는 추모의 공간을 어렵게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서울에 사업장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는 저는 자세히 내막을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언론의 보도를 통해 유성기업이라는 이름과

    그 보다 더 유명해진 이름 창조컨설팅의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들에 대해서는 故 한광호 형제의 죽음을 통해

    더 생생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한 삶이었을까.. 얼마나 답답하고, 무기력한 삶이었을까..

    저에겐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고

    무어러 말을 꺼내야 할 지 처참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하고 감사의 인사를 나누어도 힘든 것이

    노동의 현장인데

    그와 정 반대로 매일 만나는 사람이 나를 감시 추척하고,

    옆 자리의 사람과 불공정하게 차별해서 대우하고,

    이걸 문제 삼으면 고소, 고발을 통해 경찰서와 검찰을 집 드나들 듯 다니며

    심문을 당하고 조사를 받아야 하는 곳이었다니, 기가막힐 노릇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괴롭힘이라는 폭력이 단 한가지 이유...

    노동조합의 조합원 숫자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나

    탐욕이 불러온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느끼게 됩니다.

     

    이 추모 말씀의 전례에서 우리는 방금 성경의 한 대목을 들었습니다.

    옛날이야기와 같은 이 구절에는 한 부자와 라자로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라자로는 부자의 집 앞에 살던 거지였고,

    부자는 매일 고운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라자로도 부자도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런데 그 부자가 저승에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라자로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천국에 있는 아브라함 할아버지에게 라자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에 물을 찍어 자신의 혀를 식히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라자로는 살아서 나쁜 것을 받았고,

    너는 좋을 것을 다 누렸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러했기에 라자로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격는 것이라 이야기 하며

    부자의 청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부자는 그 때에 가서야 후회를 하고,

    자신들의 일가 친척만은 이 사실을 깨달아

    자신과 같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기를 바라며

    라자로를 자신의 친척들에게 보내줄 것을 요청하지만,

    이미 그들은 모세와 예언자들을 통해 가르침을 받아 알고 있다며

    그 청 또한 거절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면 살아서 호화로운 부자는 지옥에 가고,

    살아서 고생하고 힘들게 산 사람은 위로를 누린다는 말씀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성경의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도식은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부자는 모두 나쁜 사람이 되고

    힘들게 사는 사람은 나쁘게 살아도 나중에 다 위로받는 다는

    위험한 단순한 도식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 성서 구절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부자의 무관심.. 부자의 탐욕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집 앞에 종기 투성이의 라자로가 있다는 사실을 보았음에도

    부자는 호화롭게 살며 그의 고통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눈과 귀를 닫고 자기 혼자만 행복할 수 있고, 자기 혼자만 행복해야 한다는

    그 무관심과 배척.. 바로 그런 탐욕이 멸망의 길로 그를 이끌고 간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이러한 탐욕과 배척이 너무나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특히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자본의 탐욕은

    상상을 초월한 일들이 벌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탐욕은 점점 더 교모한 형태의 폭력으로 나타납니다.  

    예전에는 눈에 보이는 국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고문하고 매질했다면,

    오늘날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에 의한 폭력, 돈에 의한 폭력이

    사회 전체를 누르며 이 시대의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야만의 시대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너무나 힘들고 고단한 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작은 추모의 공간을 만드는 길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움이 필요했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고 자본을 꾸짓는 이 작은 자리를 만드는 것 하나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눈치를 보고 무관심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공간이 우리 사회의 인간성을 살리는데

    조그마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래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성기업과 그 뒤에 있는 현대 재벌의 탐욕이 멈춰지고

    세상을 떠난 故 한광호 형제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래봅니다.

     

    다시 한 번 故 한광호 형제의 영혼이 안식을 누리고

    남은 가족들과 동료들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같은 마음으로 노력하고 기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잠시 묵상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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