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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곱의 우물] 배가 기울고 있다.
    • 등록일 2016-09-07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2786
  •  

    [야곱의 우물] 2016년 9월호

     

    배가 기울고 있다

     

    천주교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

     

    배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금덩이 오백 개를 싣고 가는 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장이 항로를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배 바닥에 구멍이 뚫렸고, 그 구멍으로 물이 들어왔습니다. 배는 천천히 가라앉았습니다. 짐을 줄이지 않으면 모두 바다에 빠지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열 사람은 할 수 없이 짐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적어도 배에 실린 금덩이의 10퍼센트인 오십 개를 바다에 버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한 사람이 나서서 제안합니다. 갑자기 발생한 어려운 상황이니 모두 똑같이 다섯 개씩 버리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총 오십 개를 버리게 되니 공평할 것 같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그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금덩이의 개수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열 명 중 다섯 명은 열 개씩 오십 개를 가지고 이었고, 다른 네 명은 오십 개씩 이백 개,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백오십 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금덩이를 다섯 개씩 포기하면 열 명 중 다섯 명은 자기 재산의 50퍼센트를 버리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네 명은 10퍼센트, 가장 많은 금덩이를 가진 한 사람은 불과 2퍼센트만 버리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반대했습니다. 자신들은 배의 항로를 정할 때 참여하지 않았고, 그저 노를 젓기만 했다며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힘이 센 그 사람은 기울어지는 배에서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이야말로 자신의 욕심만 채우는 사람들이라며 나무랐고, 하는 수 없이 가장 적게 가진 사람들이 가장 큰 희생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가 얼마만큼

    희생하고 양보하면

    상상으로 만들어 본 이야기이지만, 요즘 벌어지는 조선업 구조조정을 보고 있으면 기울어지는 배에 탄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세계 경기침체로 전체 물동량이 줄고, 유가 하락으로 해양 플랜트 선박의 수주가 침체된 상황에서 조선업의 위기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업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누가 얼마만큼 희생하고 양보해서 위기를 넘어갈 것인가?’ 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진행되는 구조조정을 보면, 가장 힘없고 약한 사람이 가장 큰 희생을 하게 되는 모양새라는 것입니다.

    조선업의 인적 구성은 대규모 조선소에 속한 직접고용 정규직 노동자와 대기업의 하청업무를 담당하는 작은 회사 소속의 하청 노동자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하청 회사에도 속하지 못한 물량팀이란 구조도 있습니다. 물량팀은 안정된 고용관계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일감에 따라 물량 팀장이 열 명에서 스무 명 정도의 노동자로 팀을 꾸리면, 하청 업체가 받아온 일감 중 일부를 처리하고 그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는 시스템입니다. 당연히 물량팀 노농자들은 대기업 정규직은 고사하고, 하청업체에도 고용되지 못한 불안정한 신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조선업이 성장하면서 물량팀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졌다는 것입니다. 2000년 조선업 부분 노동자 수는 약 8만명이었고 이중 직영은 5만 4천명(67.5%), 하청은 2만 6천 명(33.5%)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2014년에 와서는 총 노동자 20만 5천 명 가운데 직영은 7만 명(34%)으로 약 1만 6천 명이 증가한 반면, 물량팀을 비롯한 하청 노동자 수는 10만 9천 명이 늘어나 13만 5천(66%)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직영과 하청의 비율이 2000년 2:1에서 2014년에는 1:2로 역전되었습니다. 그만큼 고용이 불안정해진 것입니다. 산업현장은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라 저임금 비정규직을 늘려 성장해 온 셈입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시오

    지난 6월에 ‘조선소 위기와 대량해고, 무엇을 할 것’라는 주제로 긴급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발제자로 참여한 허민영 경성대 교수는 2014년부터 해양플랜트 발주가 줄었고, 조선3사의 경영부실이 가시화되면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하는 구조조정이 진행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직격탄을 맞은 이들이 바로 물량팀 노동자라고 했습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앞으로 일감이 줄어듦에 따라 5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해고될 것이라는 예상치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니, 물량팀 노동자들은 정식으로 고용된 적도 없기에 “내일부터 나오지 마시오”라고 하면 곧바로 일자리를 잃어버린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조직된 노동조합도 없기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사람도 없이 구조조정의 일차적 희생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한 산업이 구조조정 되는 과정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 수만 명이 지금까지 해오던 일자리를 한순간에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가 구조조정을 하면서 2600여 명의 노동자를 해고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겪었던 사회적 고통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7년여의 시간 동안 해고된 노동자들과 그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무기력함, 분노, 좌절, 수치심 등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질병이 발생하거나 스스로의 극단적 선택으로 스물여덟 명이 고귀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가 단식과 농성을 하며 거리와 고공에서 호소했고, 시민들과 종교인들도 문화제나 기도회를 열어 대량해고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올바른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길 간절히 염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인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실업사태가 다시 우려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익의 사유화,

    고통의 사회화’는 이제 그만

    다시 기울어 가는 배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가장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희생으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려고 할 때, 갑자기 누군가 이야기 했습니다. “왜 배에 구멍이 난 것일까요? 잘못된 항로를 선택한 사람은 선장이 아니었나요? 그렇다면 이 일은 선장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권한을 가진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리고 선장이 가진 것 가운데 많은 몫의 금덩이를 내놓았고, 그 후 각자가 할 수 있는 힘을 보탰습니다. 조선업의 구조조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구조조정에 앞서 그동안 회사의 위기상황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 경영을 잘못한 사람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입니다. 더 이상 구조조정이란 이름이 가장 힘없는 사람, 가장 약한 사람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모습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이익의 사유화, 고통의 사회화’라는 과정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며, 결정권을 행사한 사람이 큰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바로 공정한 길이 될 것입니다. 조선업 구조조정이 약자의 일방적 희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회교리가 가르치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경제, 도덕성을 간직한 경제를 기반으로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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