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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톨릭 사회교리와 파견법
    • 등록일 2016-02-19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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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2월 18일 3대종단 토론회 '종교가 바라본 파견법" 토론자료 (천주교)

     

    가톨릭 사회교리와 파견법

     

    천주교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정수용 신부

     

    1.들어가며

    지난 1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일자리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차선책으로 노동계에서 반대하고 있는 기간제법과 파견법 중에서 기간제법은 중장기적으로 검토하는 대신, 파견법은 받아들여 달라"고 말한 일이 있었다. 정부가 비정규직의 기한을 늘리려는 기간제법 개정안이 사회적 반감이 심하기에 차선책으로 파견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후, 여러 개의 노동관련 법 개정안 가운데 파견법은 가장 관심을 모으는 사안으로 떠올랐다. 하나를 양보했으니 노동계도 하나를 양보하라는 모양새를 갖추며 이마저도 선택하지 않으면 노동계에 ‘타협하지 못하는 사람들’, ‘고집부리는 사람들’이란 이미지를 덫 씌우려 압박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폭행과 강도를 내어놓고 이 가운데 두 개 모두 당할 것을 요구하다 하나로 줄였으니 그만 합의하자고 한다면 과연 양보와 타협의 정신이라 말 할 수 있을까? 파견법 확대가 과연 가톨릭 교회가 이야기 해온 노동에 대한 가르침을 실현할 수 있는 법과 제도인지 살펴보고 수적으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공동선 실현을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2. 우리 시대의 “관찰” - 파견법 개정안의 문제점

    앞선 발제에서 우리는 “노동력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필라델피아 선언과 함께, 우리 노동법 체계 안에서 인정하는 ‘강제노동 금지’, ‘중간착취 금지’, ‘직접고용’ 등의 원칙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1998년,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에서 예외적으로 허용되기 시작한 것이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다. 이 법은 이후 몇 번의 개정을 통해 조금씩 그 대상 범위가 확대되어 왔고 이번에 다시 그 적용 가능 범위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즉, 55세 이상 고령자, 근로소득 상위 25% 이상자, 전문직 종사자, 뿌리산업 종사자 등에도 파견을 가능하게 만들자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고령자 파견이 허용되면 그렇지 않아도 정년 60세를 채우기 힘든 은퇴 예정자들은 모두 파견의 형태로 전환될 것이다. 고소득자 파견 허용은 소득이 많으면 직접고용이 아닌 간접고용을 해도 된다는 생각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앞으로 소득 25% 이상은 얼마든지 확대 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전문직 종사자 파견 확대 역시 한국표준직업분류의 총 9개 대분류 중 2개 대분류에 대해 파견을 허용하자는 것으로 세부적인 업무 개수는 486개이고, 종사자 수는 약 400만 명~50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마지막으로 뿌리산업 파견 확대 역시, 현재의 파견법이 금지하고 있는 직접생산공정, 즉 제조업에도 파견이 가능해지는 것으로 수많은 불법 파견을 합법으로 둔갑시키게 된다. 이렇게 법이 바뀌게 되면 결국 노동은 상품이 되고 사람은 생산의 소모품이 되어 필요할 때 사용하고 필요 없으면 버리게 되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번 파견법 개정안의 핵심인 것이다.

     

     

    3. 신앙인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판단” - 가톨릭 사회교리의 원리들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이름 앞에 너무도 손쉽게 인간이 상품이 되는 세상에서도 가톨릭 교회는 성경과 교부들의 전통을 기초로 해서 사회교리를 발전시켜 왔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교리는 몇 가지 중요한 기본 원리를 나타낸다.

    ① 그 누구에게도 부정할 수 없는 “인간존엄성”

    가톨릭 사회교리의 제1원칙은 인간 존엄성이다. 우리는 그 근거를 인간은 유일하게 모든 피조물 가운데 초월성으로 열려 있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은 무한한 것, 영원한 것, 곧 하느님을 향하여 열려 있다. 자기 지성과 의지로 모든 창조 질서와 자신을 초월하여 자신을 드높임으로써 피조물과 맺는 관계에서 독립적이고 자유로우며, 완전한 진리와 절대 선을 향하여 나아간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간직한 존재로 창조되어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고, 하느님을 닮을 수 있는 존재이기에 존엄하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회는 인간의 초월적 존엄성에 대해 존중을 바탕으로 할 때에야 비로소 실현된다. 인간은 사회의 궁극적 목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 사회 질서와 그 발전은 언제나 인간의 행복을 지향하여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가톨릭 사회교리 제1원칙인 인간존엄성의 정신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은 자기 자신의 발전과 무관한 목적을 위해서 조종당할 수 없음을 나타내며 인간은 도구가 될 수 없음을 선언한다.

     

    ② 공동선

    공동선은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자기완성을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로 정의한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인간존엄성에 대한 인식은 더욱 확대 되었고 초월을 향한 행복 추구에서 각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신의 권리와 의무는 때로 충돌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집단이나 개인도 보편적 선을 향해 나아가야 하며 특정한 무엇의 발전과 완성을 위해 공동의 선을 부정할 수 없다. 여기서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는 인간 삶의 환경과 자연환경 모두를 포함하는 것으로 가정, 문화, 경제, 정치, 제도, 법체계, 세계질서 같은 인간 환경 뿐 아니라 그 밖의 모든 자연환경까지도 개인과 모든 이의 존엄한 삶의 완성에 기여하는 조건을 갖출 때 우리는 공동선이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③ 재화의 보편적 목적

    지난 2월 14일 멕시코를 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고역으로부터 나온 빵을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하며 돈의 유혹과 허영심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가톨릭 사회교리 원칙 가운데 재화의 보편적 목적을 잘 나타내준다.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들과 모든 민족들을 위해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풍부히 돌아가야 한다. 이 원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모든 선한 것의 기원은 땅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땅을 주시어 자신의 노동으로 땅을 지배하고 그 열매를 따 먹도록 하신 하느님의 행위 자체이다. 하느님께서는 온 인류에게 차별과 편견 없이 땅을 주시어 그 모든 구성원들이 생명을 유지하게 하셨다. 이것이 지상 재화의 보편적 목적의 바탕이다.” 그리고 이러한 재화의 보편적 ‘목적’에서 지상 재화의 ‘사용’에 대한 보편적 권리가 나오는데 이를 ‘지상 재화의 공동 사용권’이라 말한다. 즉 모든 재화는 그 소유가 개인에게 있음이 보장된다 하더라도 재화 자체가 가지는 보편적 목적상 사용에 있어서는 공동선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다.

     

    ④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바로 이러한 재화의 보편 목적의 원칙은 가난한 이들, 소외받는 이들, 어느 모로든 자신의 올바른 성장을 방해하는 생활 조건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을 것을 가르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사랑의 실천에서 우선하는 특별한 형태의 선택을 말하는 것으로, 교회의 전통 전체가 이를 증언한다. 사랑은 구체적 대상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며 추상적일 수 없다. 특히 오늘날 사회 문제가 전 세계적인 차원을 지닌다는 점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과 거기서 영감을 받아 내리는 결정은 당연히 수많은 굶주리는 사람들과 곤궁한 사람들, 집 없는 사람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이 외에도 가톨릭 사회교리 원리에는 보조성의 원리, 책임 있는 참여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 등이 있으나 이는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관한 원리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기에, 앞선 네 가지 원리만을 노동법 개정이라는 경제 과제의 판단 원리로 소개하고자 한다.

     

     

    4. 구체적 변화를 이끄는 “실천” - 파견법 개정안에 대하여

    지난 2013년 9월 22일 이태리 사르데냐 노동자들과의 만남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는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일자리가 없는 곳에는 존엄성도 없습니다. 이것은 세계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돈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현 경제 시스템이 이 비극적인 실업사태를 가져왔습니다. 그 경제 시스템은 그 중심에 하나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돈이라고 하는 우상을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중심에 우상을 두기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 나가는 사람을 중심에 두기 원하셨습니다. (중략) 이제 이 배척의 문화에 대해 “NO!”라고 해야만 합니다. 모두가 함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정의로운 체제를 원한다고 말해야만 합니다. 많은 해악을 끼치고 있는 이 세계화된 경제 체제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 중심에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교황님의 이러한 연설에 우리 그리스도인, 아니 모든 선한 의지를 간직하고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선택해야 할 경제 모델이 있을 것이다.

     

     

    5. 나가며

    최근 진행되는 노동법 개정은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이다. 그 하나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조건을 좌우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중요한 내용을 정하는 일에서 ‘절반씩 양보하자’는 기계적 균형을 요구할 수는 없다. 무엇이 인간존엄성을 추구하는 일인지, 어떤 제도가 공동선을 실현하는지, 앞으로 일어날 변화가 재화의 보편적 목적을 실현하고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지에 대해 충분한 논의와 이해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파견법 개정안을 비롯한 노동관계 법 개정을 우리 이웃의 문제, 아니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서 일어나는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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