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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곱의 우물]청소년 '노동인권' 바라보기
    • 등록일 2015-08-19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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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곱의 우물 9월호  - 교회와 사회

    청소년 [노동인권] 바라보기

     

    올 초 한 주간지의 국제면에서 본 내용입니다. 독일의 한 여고생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 사람들 사이에 관심을 끌며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졸업반인 그녀는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곧 18세가 된다, 하지만 세금, 집세, 보험 등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시를 분석하는 데는 능하다. 그것도 4개국 언어(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라는 글을 남겼고, 졸업과 동시에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생활하는 독일의 학생들 사이에서 학교 밖 세상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는 공감을 얻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모든 것을 가르칠 수는 없는 것이고, 필요한 내용은 알아서 터득하거나 부모로부터 배우는 것이 옳다는 주장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며 논쟁의 찬반 여부를 떠나 과연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당연히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했을 때 학생들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얼마나 과중할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 제가 살고 있는 노동사목회관에 신학생 두 명이 찾아왔습니다. 사제 양성 과정에서 교구가 하고 있는 사회 사목 여러 분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마련한 방학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신학과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연례 프로그램으로 올 해는 두 명의 신학생이 3박 4일간 노동사목위원회의 활동을 경험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나름 위원회에서는 다양한 일정을 준비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주장하며 고공 농성중인 현장을 방문해 노동조합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있었고, 교회의 평신도 사도직 단체 가운데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가톨릭 노동 청년회, 가톨릭 노동 장년회 회원들과의 만남도 마련했습니다. 사무국의 여러 업무들도 소개했고, 일정을 마치는 마지막 날에는 체험기관 책임자 신부와 피교육생 신학생 관계가 아닌 편한 선후배로서 술 한잔 기울이며 본당이 아닌 곳에서 사목하는 삶에 대해서도 문답이 오고갔습니다. 그런데 현장 체험 일정이 모두 마치고 그들이 보내온 보고서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내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평가의 내용은 긍정적이었습니다. 본인들도 열심히 임했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노동사목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점이 많아 유익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목했던 것은 방문 체험 이전, 평상시 ‘노동’하면 연상했던 생각들을 소개했던 부분이었습니다. 한 신학생은 노동이라 하면, 일단 합의를 쉽게 이루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들, 극단적인 선택만 하고 협조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부터 떠올리게 된다고 하며, 왜 저렇게 싸우려고만 하고 서로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양보하지 않는 걸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해왔다고 표현했습니다. 아무래도 신문이나 뉴스에 등장하는 노동 뉴스는 노조의 활동을 소개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이마저도 주로 굴뚝에 올라가거나 단식을 하면서 절박함을 표현했던 것이 그러한 이미지를 낳게 한 것 같았습니다. 즉, ‘노동’과 ‘노조’는 분명 다르고, 그가 가지고 있는 그 ‘노조’에 대한 이미지마저도 사실 매우 일부의 왜곡된 내용이지만 우리가 미디어에서 만나는 화면은 그 신학생이 표현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그러한 표현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에 대한 이미지는 비단 20대 젊은 한 신학생만이 아니라 아마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본당에서 보좌 신부로 활동하다가 특수사목을 맡게 되었을 때도 수많은 신자분들이 염려하거나 궁굼해 한 것이 노동사목위원회는 파업하는 것 지원하는 곳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신부님도 앞으로 조끼입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사는 것이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된 노조의 이미지만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노동, 교회의 사회교리에서 정의하는 노동은 분명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이미지를 훨씬 뛰어 넘습니다. 우리는 머리로는 노동이 하느님 창조에 동참하여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로서, 각자의 직업과 일을 통해 공동선을 이룬다는 사실과 함께 노동은 인간의 존엄함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을 압니다. 하지만 미디어에 소개되는 노동은 일부 노동조합의 활동이 전부이기에 ‘노동=노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잡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비단 미디어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공교육에서도 참된 노동의 가치를 배울 기회가 없거나 있어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저 역시 신학교에서 성경과 교황님들의 사회교리 회칙을 배우며 노동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배우지 않았다면, 세상이 말하는 노동, 세상이 가지고 있는 개념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아이들 역시 앞서 소개한 독일의 여고생이 말한 것처럼 과연 졸업 후, 필요한 내용을 충분히 배우고 익혔다고 느낄지 생각해봅니다. 고등학교 졸업생 뿐 아니라 재학생중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의 많은 데, 과연 첫 일터에서 근로계약서 한 장 쓰는 법을 알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아니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은 알기는 할까요? 청소년도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다는 것이나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면 법적으로 유급휴일을 받을 수 있다는 권리, 4시간 이상의 노동이 주어지면 휴게시간이 보장된다는 것 등에 대해 배운 적이 있을까요? 아니 단편적인 노동법의 내용만이 아니라 노동을 하지 않는 인간은 스스로 존엄한 존재임을 느낄 수 없고 삶의 보람도, 자아의 실현도 경험하지 못하기에 인간 실존에 노동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나, 인간은 노동을 통해 창조주이시며 구세주이신 하느님께 보다 가까이 갈 수 있기에 노동이 인간과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하는 길이라고 느끼고 있을까요?

     

    우리는 평생 노동을 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그 노동의 참된 의미는 잘 모르고 살아가는 듯 합니다. 그러하기에 더 많은 돈을 준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단 생각을 하게 되고,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경우라면 최소한의 돈만 주면 그만이라고 인식합니다. 그러나 노동은 인간 존엄성의 척도입니다. 노동이 없는 곳에 인간 존엄도 없습니다. 우리 세대가 이러한 “노동의 가치”를 배우지 못하고 그저 “노동하는 법”만을 배웠다면,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노동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재미난 상상 하나를 해봅니다. 서울 강남 유명한 학원이 즐비한 거리에 영어, 수학 학원보다 “노동의 가치”를 가르치는 학원이 생긴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그 학원에 아이들을 보내게 될까요? 우리 아이들은 정말 필요한 것을 잘 배우고 있는 것일까요?

     

    천주교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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