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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milia 2019-02] 2019년 3월 24일 사순 3주일 강론
    • 등록일 2019-03-22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233
  • 2019년 3월 24일 사순 3주일 강론

     

    불편함을 통해 하느님께 다가가기

     

    찬미예수님. 노동사목위원회 이주형 세례자 요한 신부입니다.

    봄과 함께 찾아온 사순시기이지만 꽃샘추위가 매섭습니다.

    교우 여러분들이 환절기에 건강하시길 빕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보내라고 당부하신 이 안식일에

    우리 모두 하느님 말씀 안에서 영적인 쉼, 힘과 용기를 얻길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하고자 하는 주제는

    "불편함을 통해 하느님께 다가가기"입니다.

     

    불편함이란(不便) 말 그대로 어떤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또는 뭔가 거슬리거나 신경이 쓰이거나, 나아가 매우 불쾌한 상태를 뜻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불편함을 언제 겪으십니까?

    신앙생활도 불편함이 많을 수 있습니다.

    달콤한 늦잠을 자고 싶은 주일 아침, 주일을 지키기 위해 성당을 가는 것은

    때론 불편할 수 있습니다.

    사순특강이나 각종 신앙 강좌, 사제의 강론에서 듣는 이야기가 불편할 수 있습니다.

    나의 삶을 바꾸고 회개하라는 이야기는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나 이웃에게 불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밉고 편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편합니다.

    사회의 어려운 현실을 살펴보고 그것에 함께하고 힘을 보태는 것도 불편합니다.

    남의 일이기에 고단하고 귀찮습니다.

    우리는 그런 모든 불편함을 멀리하고 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불편함이 주는 열매들이 있습니다.

    불편함은 비록 어려울지라도 현사태와 상황, 그리고 진실마저도 마주하게 합니다.

    그래서 불편함은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게 마주하고 성찰하고 기도하다 보면 나의 부족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내 시선을 향하게 합니다.

    하느님을 보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평화는 편익과 안이함, 안락함이 아니라

    인내로운 대화와 끝없는 노력, 그리고 고통마저 내가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의지를 통해 얻어지는 평화입니다. 즉 불편함을 통해 얻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성찬의 전례는 사제가 축성된 성체를 높이 들어 올리며 외치는 선포에서

    그 장엄한 정점을 이룹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세상의 죄를 없애신다는 것입니까?

    바로 당신이 몸소 우리 죄를 위해 고통을 짊어지심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분은 불편함의 정점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에페 1,7)

     

    하느님께서는 오늘 1독서 탈출기의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를 불편한 곳으로 보내실지도 모릅니다.(탈출 3,8)

    그 불편한 곳에서 어쩌면 우리도 고통에 신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같은 부르심을 받았으나 그 안에서 악(惡)을 선택할지, 거부할지는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1코린 10,6)

     

    하지만 선(善)을 선택함으로 우리는 참된 평화를 얻을 것입니다.

    악(惡)을 거부함으로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참된 회개를 하고 멸망이 아닌 생명으로 초대받을 것입니다.(루카 13,5)

    우리 모두 용기를 냅시다.

    그리고 내 삶의 불편함을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한 계기로 삼읍시다.

    코린토 2서의 말씀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2코린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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