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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사목 자료]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12
    • 등록일 2021-06-17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81
  • 사람이 자본이 될 때 무슨 일이 생기는가

     

    H.E. MONSIGNOR DIARMUID MARTIN  디아뮈드 마틴 대주교 1999년 주교 수품, 2004년부터 더블린 대교구장을 맡고 있다. 2001-2003년 UN 산하 기구(Office of the United Nations and Specialized Institutions in Geneva)와 WTO에서 업저버로 활동을 하였다.

     

    나는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월성에 관한 나의 성찰로서 그 제목을 ‘사람이 자본이 될 때 무슨 일이 생기는가’로 삼았다. 주요 자원은 인간의 지성, 곧 사람들의 창의성과 혁신의 역량이다. 사람들에 대한 투자는 강력한 지식 기반 경제를 위한 주요 전제 조건이며, 비숙련 노동자는 우리 경제의 어느 부문에서도 가장 소외(주변화)되어 있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자본과 함께 ‘인적 자본(human capital)’과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을 말하고 있다.

     

    이런 개념들은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백주년」에서 매우 단순하게 여러 방식으로 요약되어 있다. 한때 생산의 결정적 요소가 토지였고, 후에 자본이 생산 수단의 총체적 복합체로 이해되었지만, 오늘날 결정적인 요인은 점점 더 사람 자신이 되었다. 즉 그의 지식, 특히 그의 과학 지식, 상호 관련되고 압축적인 조직의 운영 능력,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인식하고 충족시킬 수 있는 그의 능력이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회칙 「백주년」의 또 다른 단락에서 교황은 소유권의 또 다른 형태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 중요함이 덜하지 않은 또 다른 형태의 자본에 대해, 즉 노하우와 과학기술과 기술의 소유(the possession of know-how, technology and skill)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산업화가 이루어진 민족의 부는 자연 자원보다는 훨씬 더 많이 이런 종류의 소유에 기반하고 있다. 지식 기반 국가들이 탈-산업화하고 있으며 점점 더 서비스 지향적이기 때문에, 어쩌면 교황이 산업화가 이루어진 민족(industrialized nations)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어야 했다. 이 회칙에서 그는, 오늘날 그가 회칙을 쓰고 있다면, 아마도 지적 재산권의 개념을, 하나의 자본이지만 인류를 위한 자본인, 이 지적 자산의 소유권과 관련하여 나타날 그 도전 과제를 탐구했을 것이다.

     

    인간의 인격이 현대 경제의 성공을 결정 짓는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덜 객관화될 것임을 의미하는가? 그런 식으로 작동해야 하지만, 우리가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었다고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나는 이와 관련하여 최근 유명한 사업가와 토론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대화 중에 제 말을 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몬시뇰, 누군가 당신에게 자원이라고 말하면 좋겠습니까? 당신은 비즈니스가 그 사람들을 사람들로 대할수록 비즈니스는 더욱 성공적일 것이라 이해해야 합니다. 단 그들이 진정으로 공헌할 것이라 그렇게 취급될 때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전체 인간적 역량이 향상되어 현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공헌을 가져올 때만 그렇습니다.”

    이는 내가 제기한 질문에 다양한 측면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선 혁신은 단순히 객체화(객관화)되고 사전 포장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경제는 그 인간학을, 즉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는 사람들을 간단하게 정량화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고결함으로 존중할 수 있음을 뜻한다. 똑같은 원리가 두 가지 다른 적용 분야에 관련된다. 예를 들어, 교황은 회칙 「백주년」에서 한편으로 기업을 서술할 때 ‘노동의 공동체’와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관념에 주목하며, 다른 한편으로 기업 내에서 이익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다.

     

    이런 측면들 때문에, 경제는 인간학이 필요하며, 교회의 사회 교리는 인간에 대한 특유한 관점에서부터 나타나는데, 그 관점은 다른 사회적 관점과는 구별된다. 첫째, 인간은 하느님의 이미지로 창조되었다. 이는 존재할 수 있는 다른 그 어떤 형태의 자본과 관련해서 그리고 침해할 수 없는 그의 존엄과 관련해서 인간들을 전적으로 다른 정세에 위치시킨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하느님은 삼위일체이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정의에 있어 관계라는 개념이 나온다. 인간은 절대로 폐쇄된 개인이 아니라 언제나 관계 안에서 존재한다. 인간은 관계 안에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자신을 초월해야 한다. 관계라는 이 개념 내에서, 그리고 나중에 다시 말하겠지만,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 안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관계 안에 있는 인간에 대한 교회의 사회 교리에 있어 하나의 특별한 분야는 노동자와 가족의 역할에 있다.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 교회의 사회 교리는 가족 임금(생계임금)에 관해 말하였다.

     

    교회의 사회 교리가 공헌한 그런 것들은 널리 인정받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 인권 선언이 노동의 보수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리고 적절한 생활 수준에 대한 권리에 관해 이야기할 때, 여러 곳에서 ‘그와 그의 가족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음을 상기하는 것은 흥미롭다. 분명히 이는 그 선언을 작성할 때 참여했던 가톨릭 대표자들의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나는 이를 또렷하게 묘사한 Glendon 교수의 연구를 참고할 수도 있을 것이며 또 그의 연구에 맡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 사회 교리와 인권의 전통은 모두 그 새로운 차원들을 다루는 데 있어 오늘날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권리들은 개인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지급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동등함에 관해 이야기할 때 유효한 원리이다. 그러나 동등함을 말할 때 여러분은 자주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차원을 잃어버린다. 다음과 같은 물음을 생각해보라. 모든 노동자가 똑같이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가족의 책임 가운데 어떤 책임이 피고용인의 사적인 문제가 되어야 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공공의 문제가 되어야 하거나, 혹은 사회 보험 밖의 다른 어떤 문제가 되어야 하는가? 여러분은 분명히 사람과 그의 관계 사이에서 일종의 긴장을 보게 될 것이다. 이상하겠지만, 임신하고 양육하는 여성의 특수성이 인정될 때까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변화하는 역할들과 함께 그 특수성이 방정식에 대입될 때까지, 직장에서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는 그 방정식에 답을 줄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는, 예를 들어 실질적으로 말해서, 가족 임금에 관해 이야기하기가 매우 어렵다.

     

    사실, 우리는 더욱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오늘날 세계 많은 지역에서 생계임금(a subsistence wage)을 찾아볼 수 없다. 이른바 ‘일하는 빈곤층’(노동빈곤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은 완전히 고용되어 있으나 극빈층에서 벗어나는 데 충분한 수입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며, 이 현상은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들의 고용 유형의 불확실성에 의해 심화가 된다. 그것은 고용주(employer)와 고용인(employee) 사이의 관계에 단층 변화가 생길 때 다시 더 어려워진다. 많은 소기업조차 그 기업이 고용한 사람들이 아니므로 이제 누가 그 기업의 노동자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다른 대륙에 살고 있을 수 있으며 하위 계약들의 복잡한 상호 연결을 통해서만 최종 고용주와 연결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고려할 때 우리는 국제 노동 기준의 수립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 옹호의 보장 방법을 찾을 아이디어를 얻게 되는데, 이 과정은 현재 존재하지만, 그 안에 새로운 긴장이 존재한다. 가난한 나라의 비교 우위는 값싼 노동 비용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노동 기준을 유지하고 (노동의) 주도권을 장려하기 위한 올바른 장치를 찾아보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주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협상을 지켜보면서, 나는 사회 경제적 권리들이라는 강력한 개념이 효율성과 상충하기 때문에 이 개념을 점점 더 거부하는 선진국의 문제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 링크
    http://www.nodongsam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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