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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milia 2019-12] “찾아가고 공감하기”
    • 등록일 2019-07-12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275
  • <기획강론: 감정노동과 우리 사회 5>

     

    “찾아가고 공감하기”

    “누가 너의 이웃이냐?”

     

    2019.7.14. 연중 15주간 주일 강론
    이주형 요한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현진건의 처녀작 <빈처>는 일제강점기 글팔이를 하며 살아가는 젊은 문학인 K와 그의 아내 사이의 사랑을 묘사하는 한국단편문학의 걸작입니다. 시대의 지성인을 상징하는 K는 가난함 속에서도 긍지와 신념을 간직하며 삽니다. 그러나 저당 때문에 나날이 줄어가는 세간, 그로인한 궁핍함은 힘겨웠습니다. ‘보수 없는 독서와 가치 없는 창작’이라는 그의 자조처럼 그의 현실은 남루하고 쉬 남들의 비소(誹笑)를 받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 그리고 무시였습니다. 글을 쓰는 K는 은행에 다니는 동년배 부유한 친척 T와 늘 비교되었습니다.

     

    비루했던 K는 자신의 수고를 인정받지 못하고 아내에게 작은 양산하나 선물로 해주지 못한 처지가 한스럽습니다. “낸들 마누라를 고생시키고 싶어 고생시켰겠소. 비단 옷도 해주고 싶고 양산도 해주고 싶어요. 그러기에 온종일 쉬지 않고 공부를 아니하오, 남 보기에는 펀펀히 노는 것 같아도 실상은 그렇지 않아. 본들 모른단 말이오.” K가 힘든 것은 글을 써도 인정받지 못하고 그로 인해 겪어야 하는 가난과 궁핍인데 그보다도 이면에 숨어있는 남편으로서의 자존심과 미안함일 것입니다.

     

    다행히도 가난 속에서도 그의 아내는 남편의 성공을 바라며 묵묵히 뒷바라지를 합니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현실을 이겨나갑니다. 좌절하는 남편에게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것이 장래에 잘될 근본이에요!” 라고 말하는 아내의 헌신 덕에 남편 K는 용기를 얻습니다. 소설 속에서 K가 작가로 성공을 했는지 알 길은 없으나 부부의 화목한 모습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오늘날 K같은 이들이 우리 주변에 많을까요? 노력하지만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젊은 지식인들, 굳은 신념에도 궁핍한 탓에 자신의 길이 고단한 사람들, 아무리 일을 하고 애를 쓰고 스펙을 쌓아도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이웃들은 많습니다. 언젠가는 성공하겠지, 좋은 날이 오겠지 라고 위안을 삼으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티지만 현실의 벽만큼 더 비참한 것은 주변의 무관심과 비판, 심지어 냉소-그것도 무지(無知)에서 비롯된-라고 합니다.

     

    노동사목 소임을 하면서 의외의 현상을 많이 목격합니다. 그것은 바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사회 문제를 포함한 노동문제에 대해 매우 단순하게 판단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당사자에겐 들어보지도 않은 채 말입니다. 개인의 지식과 체험들이 많이 작용하는 탓일까요? 아니면 그런 일들은 충분히 봐왔고 안 봐도 다 안다고 판단하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막상 현장을 가서 당사자를 만나보면 실제 상황이 알려진 내용과 보도된 자료조차도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물론 어떤 경우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조차도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 믿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더 신중하게 듣고 판단해야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당사자에게” 듣고 그것을 면밀히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의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는 이웃에 대한 따스한 선행을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이웃의 어려움이 발생한 급박한 상황과 그가 입은 치명적 고통은 우리에게 “선(先)판단무(無)조치”가 아니라, “선(先)공감후(後)조치”, 또는 “선(先)조치후(後)공감”중 적어도 하나를 권고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사마리아와 이스라엘은 매우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역사적 아픔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무지어린 지역감정, 적대감과 증오, 멸시의 판단, 부정적 감정을 갖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을 구해준 그 행인은 마음도 따스한 사람이었고 손도 빠른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배운 것을 실천하는 신앙인이었으며 어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현장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현장을 살펴보고 재빨리 판단한 다음 체면과 격식, 편견을 버리고 과감히 행동했습니다. 언행이 일치된 그는 실로 지혜롭고 온유하며 건강한 인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가 편견과 선입견이 가득한 사람이고 치우친 식견과 섣부른 판단만을 가졌다면 오늘 우리가 듣는 착한 사마리아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겠지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감정노동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돈만 중시하고 편안함과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 신앙과 윤리적 가르침에 소홀함 등 많은 요인들이 이러한 감정노동 현상이 심각해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우리의 굳어버린 편견과 완고함, 현장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우리의 무관심이 크게 작용한 것입니다. 이웃의 다른 말은 사회이고 가정의 다른 말도 사회이며, 종말론적 하늘나라도 있지만 우리가 머무르는 지금 이 삶의 다른 말도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다만 우리가 사는 우리의 관심과 노력 속에서 하느님 나라가 되느냐가 관건이겠지요.

     

    꿈을 이루진 못해도, 노력의 결과가 미약해도 실패하고 좌절한다 해도 그 모든 우리의 이웃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와 처지에 공감하는 대상과 공간이 있길 바랄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이런 이들이 위로받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 소설 빈처에 등장하는 K의 지혜롭고 따스한 아내, 그래서 용기와 희망을 얻었던 K, 이렇게 대화하고 듣고 공감하며 손을 뻗고 사랑이 피어나는 이런 일들이 우리 사회에 더 많아야겠습니다. 고통과 어려움이 없는 사회보다 관심과 사랑, 도움과 온정이 활발히 오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돈만 많이 버는 사회가 아니라 건강한 사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겠습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루카 10,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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