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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milia 2019-10]“하느님을 바라보십시오!”
    • 등록일 2019-06-28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299
  • <기획강론: 감정노동과 우리 사회 3>

     “하느님을 바라보십시오!”

     

    2019.6.30. 교황주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 위원장

    이주형 요한 신부.

     

     

    제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저는

    어떤 빛, 어떤 음성, 어떤 향기, 어떤 음식, 어떤 포옹을 사랑합니다.

    거기서는 공간이 담지 못하는 무엇이 제 영혼에게 반짝하고

    시간이 붙들지 못하는 무엇이 소리를 내고 숨결이 흩어 보내지 못하는 무엇이

    향내를 풍기고 실컷 먹어도 줄지 않는 무엇이 맛을 내고 흡족하고도 풀리지 않는 무엇이 사로잡고 있습니다. 저희 하느님을 사랑할 때

    제가 사랑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고백록 106.9>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마태 22,34-40).

    여기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바로 현세의 쾌락과 물질에 대한 애착, 사욕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애착과 사욕이 강하다면 그 분명한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해보셨습니까?

    혹은 정녕 누군가를 용서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이른 아침에 일어나 주어진 오늘 하루의 삶에

    감사함을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고운 쌀알을 입속에 넣으며

    그것을 위해 애쓴 농부들을 기억한 적은 없습니까?

    사실 하느님은 그런 체험들 속에 계십니다.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신(無所不在) 그분께서는 그런 순간순간 속에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쟁기를 쥐고

    하느님이 아닌 것에 마음을 두려합니다(루카 9,62)

     

    모두가 하느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재물과 현세에만 관심을 두니

    우리 주변과 사회가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감정노동의 뿌리도 결국 무엇입니까?

    썩어 없어질 재물에 대한 우리의 과한 애착 때문이 아닐까요?(요한 6,27)

    그것 때문에 하느님을 잊은 우리의 교만 때문이 아닐까요?

     

    하느님을 바라보십시오.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모든 것이 평화로워집니다.

    모든 것이 감사해집니다.(1테살 5,18)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새삼 은혜롭습니다.

    하느님을 알길 잘했구나 싶습니다.

    그 순간 내 삶의 자리가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루카 9,6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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