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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milia 2019-09]<기획강론: 감정노동과 우리 사회 2>“인간에 대한 확신”
    • 등록일 2019-06-22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292
  • <기획강론: 감정노동과 우리 사회 2>

    인간에 대한 확신

     

    2019.6.23. 성체성혈 대축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 위원장

    이주형 요한 신부.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 제안에 계시지 않으면 저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1.1>

     

     

    하느님 모상으로 인간

     

    가톨릭 교회는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imago Dei. 창세 1,27)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아 창조되었고 기도하는 존재이며 사랑을 증거하는 존재입니다. 이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인간 존엄을 뒷받침하는 영감(inspiration)어린 근거가 되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던 빅터 프랭클은 인간에 대해 절망을 극복하는 희망의 주체로 이야기했고(Men's searching for Meaning),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고유한 가치와 존엄을 지닌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언급했습니다(Life lessons). 노동과 인간에 대해서도 프랑스의 시몬 베이유는 인간의 노동은 존엄과 결합된 창조적 활동이고 사유의 결과이며 인격적 행위라고 이야기합니다.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인간 존엄에 바탕을 두어야하며 올바르고 건강한 사회는 인권을 중요하게 여길 때 이룩됩니다.

     

    새로운 시대 속에서 인사관리

     

    최근 전세계적으로 4차산업 혁명과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가 많습니다. 선진국들은 최첨단 센서와 스마트팩토리를 통해 이미 변화에 조우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의사와 변호사, 조교가 등장했고 도심에는 무인편의점이 증가하고있습니다. 향후 몇십 년 안에 디지털 클라우드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과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고용이 퇴조하고, 고용없는 성장이 구현되며 중간 노동계층이 축소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습니다(Frey & Osbone. 2013).

    이러한 변화로 인해 기업과 조직의 인사혁신도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이미 지구적 시장은 공유 경제(sharing economy), 협력적 소비(collabrate consumption), 지역 밀착 연계형 서비스(local centro service)를 중심으로 종래의 파이프형 기업모델과 시장을 탈피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속도의 기술 발전, 기술 반감기의 감소는 기업으로 하여금 상시적 혁신을 강요합니다. 아마존, 넷플릭스, 에어비앤비, 우버, 무크(Mooc), 블록체인과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이미 그런 기업과 인사 혁신의 중요성을 입증했습니다. 혁신된 조직은 속박, 통제, 추종과 성과주의라는 과거의 피라미드식 조직문화에서 벗어나 신뢰, 자율, 확장과 도전, 몰입이라는 역피라미드조직 형태로 변화될 것입니다.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서비스(customized product & service)를 위해 조직은 협업적(coordinated)이고 육성적(cultivated)인 문화를 구축해야하며 그러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공격적 마켓팅이 가능할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확신

     

    물론 인사관리에 있어서 창의성과 평생학습, 동기부여와 유연성을 강조했던 것은 비단 오늘의 일만은 아닙니다. 문제는 인사관리의 철학과 방향, 질적특성을 어떻게 설정·유지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리고 그 질적특성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정말로 사람을 신뢰하는가? 우리 조직은 신뢰와 협력이 가능한가? 예상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이익배분(profit sharing)에 대한 상호배려가 가능한가? 어려움 속에서 고통을 분담할 수 있는가? 확증 편향적이고(confirmation bias) 휴리스틱(heuristic)한 방법론이 아니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과감한 혁신과 도전을 선택할 수 있는가? 또한 노사와 모든 구성원은 해고의 유선성보다 기능의 우선성(multi player)을 함께 선택할 수 있는가? 사실 4차 산업혁명속에서도 기업의 생존과 존립을 결정하는 것은 인프라와 시스템, 공장과 설비보다 중요한 것은 인사관리에 대한 질적 차별성과 그에 대한 확신일 것입니다.

    이미 오래전인 19세기, 참담하기 짝이 없는 노동문제들을 바라보며 교황 레오 13세는 당시의 노동문제가 사람들을 심각한 갈등과 불안, 고민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새로운사태, 2). 실제로 국민소득 3만불을 이룬 대한민국 사회도 불안과 불신으로 가득합니다. 무한경쟁을 강제받는 경제환경 속에서 기업과 사람은 모두 불안합니다. 기업은 부진을 겪고, 고용지표가 악화되고 노사 모두 절망으로 빠집니다. 문제는 그러한 굴레속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기술혁신과 조직과 문화의 혁신이 아니라, 사람을 줄이고, 창고를 늘리는 식의 대안만을 모색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더 많은 악순환을 가져올 것이며, 노동환경에서 사람이 배제되고 마는 풍토 속에서 결국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많은 것을 빼앗길 것입니다(마태 13,12).

     

    해결의 첫 걸음 - 인간에 대한 확신

     

    고대로부터 모든 사회 문제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확신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보는가? 아니면 인간을 도구적이며 기능적인 존재로 축소하여 보는가? 닥쳐올 미래 사회에서도 그러한 논란이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 중심, 인간 중심이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성혈을 지내고 있습니다. 인간을 위해 강생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전례 안에서 거행하는 사랑의 신비는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으로 열매 맺어야합니다. 이웃과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기에 발생하는 감정노동은 하나의 폭력으로서 욕심과 이기심이 드러나는 것이며 그 뿌리는 교만입니다(창세 3). 그러나 그것 역시 인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사회의 감정노동은 나로 하여금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돈과 명예, 권력과 내 욕심보다 이웃으로서 사람은 소중합니다. 나와 같은 하느님 자녀이기에. 노동자들의 고통을 안타까워하시며 회칙 새로운 사태를 쓰셨던 레오 13세 교황께서 참된 사랑의 회복을 마지막 항으로 선택하신 이유도(83), 인간에 대한 참된 이해, 확신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셨을까요?

     

    그리스도교의 사랑은 한마디로 복음을 통해 계시하신 하느님의 법이며

    다른 사람을 위해 언제나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도록 만드는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세속적 교만과 지나친 이기심에 대한 가장 확실한 특효약이다.

    사랑의 근본정신과 그 거룩한 모습을

    사도 바오로의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1코린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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