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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cial Doctrine 2018-03]사회갈등에 대한 교회의 시각
    • 등록일 2018-12-20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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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갈등에 대한 교회의 시각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이주형 요한 신부

     

     

    가끔 교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교회나 사제들이 왜 사회, 정치 문제에 관여하는가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사제들이 성당에 오는 신자들의 영혼만 구하고 미사만 잘 드리면 되지 왜 그러느냐고 하십니다. 저도 한때 그랬습니다. 저도 바쁘다는 이유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많이 못 가졌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싸우고 투쟁하고 갈등을 빚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도 다양한 이유가 있으시겠지만 갈등이 부담스럽고 힘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갈등은 불가피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갈등에 어떻게 대처하고 함께 풀어가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갈등은 누군가의 고통이나 아픔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가 사회문제에 어떻게 관여해야 하는지에 대해 교회의 가르침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는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사회가 겪었던 경제적 재난을 묘사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다양한 후기와 평론이 있는데 영화 자체가 사실을 왜곡했다는 시각과, 영화는 사실을 올바르게 묘사했으며 책임 있는 자들이 무책임했다는 평가가 대치합니다. 분명 역사적 사실은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his-story라고 하는 것처럼 그에 대한 시각은 참으로 다릅니다. 기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시각이 공존합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회 갈등이 있습니다. 생각, 사고방식, 견해, 입장의 차이 이익과 이해관계에 따라 작게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넓게는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첨예하고 뿌리 깊은 갈등이 있습니다. 또한 국가적 이익과 손해, 외교와 정치, 안보와 경제, 인권과 가치의 문제 등 수많은 커다란 사안들이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갈등을 바라보는 가톨릭 교회와 신앙인의 생각은 어떠해야 할까요? 남의 문제는 관심 없다는 무관심 주의도 적절한 답은 아닐 것이며, 교회가 사회문제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발상은 타인의 고통을 묵인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므로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모든 사회 문제에 대해서 비록 과격하고 폭력적인 방법을 총 동원 해서라도 해결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바람직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 되면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며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이 방법 역시 결코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우리는 간추린 사회교리의 이야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선물과 마음의 회개를 통하여, 정의와 형제애, 연대와 나눔 안에서 새로운 방식의 사회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는 ‘하느님 나라’를 세우러 오신다...... 악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다시 한번 친교를 이루게 된 인간은...... 그 안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정의를 베풀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며,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고, 물질적 가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가장 연약한 이들이 비참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세력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도록 부름 받는다. 이럴 때,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 것이 아니라 해도 지상에 이미 존재하게 된다. (간추린 사회교리 325항)

     

    간추린 사회교리 325항에 의하면 억압받고 고통받는 갈등상태는 극복되고 개선되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목표는 구원을 이루는 것인데 그것이 나 혼자를 위한, 내 안위만을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타인과 사회가 겪는 불의한 현실을 개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구원의 한 부분입니다. 즉, 비 구원의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적극적인 의미의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사회문제를 대해야 합니까? 저는 다음의 세 가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그리스도인으로서 참으로 기도하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한때 교구 청소년국에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전했던 “WWJD”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What would Jesus do?” 의 영문 머리말을 모은 것인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입니다. 우리 신앙의 중심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성체 안에서 살아계시며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예수님을 닮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사회 갈등을 대하는 첫 번째 방법은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도 이웃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What would Jesus do?라는 말처럼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누군가와 싸우고 대치한다는 것은 분명 괴로운 일입니다. 그 누구도 그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와 싸운다는 것과 정의로운 목소리를 합당하게 내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싸운다는 것과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정의를 외치는 것은 다릅니다.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도 이를 분명히 명시합니다. ‘사회와 인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원칙을 확인하고 강조하는 것이 교회의 예언자적인 소명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정의와 원칙을 외치는 시작은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를 먼저 생각하고, 그분의 시각으로 힘겨운 갈등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도 그리스도인은 정당하고 보편적인 원칙을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천명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267항)

     

    역사의 흐름은 노동의 근본적 변화와 힘찬 승리,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많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그들의 존엄성 침해를 보여준다. 산업 혁명은 교회에 중대한 도전을 제기하였으며, 이에 교회의 사회 교도권은 강력하고도 예언자적으로 대응하면서, 노동자와 그들의 권리를 지지하는 보편적으로 정당하고 영구히 타당한 원칙들을 강조하였다. (간추린 사회교리 267항)

     

    그렇습니다. 우리가 듣고 배워서 알고 있는 원칙을 확인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도하는 것은 더더욱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싸우는 것은 특정한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기도는 오히려 자신의 이익과 욕심을 내려놓고 평화로운 해결을 지향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싸우지 않고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로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기도는 평화를 목적으로 평화롭게 모든 것을 대하며 하느님께 의탁하는 그리스도인의 보편적 행동입니다. 기도 안에서 평화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는 그것을 기도드리고 지향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 항상 하느님의 뜻을 듣는 가운데 끊임없이 식별하고 그 결과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참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이제 기도 안에서 듣고 확인한 내용을 실천해야 합니다. 실천한다는 것의 요지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실천하는지의 여부입니다. 간단하지만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발로 찾아가서 손으로 위로해주고 마음으로 공감해주며 눈으로서 어려운 이웃들의 처지와 그 상황에 대해 진실을 마주해야 합니다. 함께 해주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가 기억나는군요. 한 유다인이 강도에 의해 죽을 정도로 얻어맞고 죽게 생겼는데 사제와 레위인이 그냥 지나치고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돌보아줍니다. 쉽게 말해서 갈등관계의 극점에 이른 두 사람 간에 사랑과 도움이 오고 간 것입니다.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다.” 교황 프란치스코 성하께서 지난 2015년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갈등은 누군가의 고통과 어려움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갈등에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갈등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태도는 평화롭게 사익을 버리고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그러므로 사랑은 인간 삶의 모든 분야에 활력을 주고, 국제 질서에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사랑의 문화’가 다스릴 때에만 인류는 참되고 지속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교도권은 공동선을 보장하고 인간의 통합적 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연대를 높이 권장한다. 사랑은 “이웃 안에서 또 다른 자신을 보게 해 준다.” (간추린 사회교리 58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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