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시는길
  • 후원안내
  • 문의하기
노동이슈

판단

  • home
  • 노동이슈
  • 판단

  • [Homilia 2019-06] 2019월 4월 21일 주님 부활대축일 미사 강론
    • 등록일 2019-04-23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044
  • 2019월 4월 21일 주님 부활대축일 미사 강론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 사도행전 10,34ㄱ.37ㄴ-43

    □ 콜로새서 3,1-4

    □ 요한 20,1-9

     

    ✝️찬미예수님

     

    부활절 현장미사를 함께 봉헌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들과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거의 500여 년 전(정확히는 503년 전) 영국의 성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라는 소설을 (1516년) 썼습니다. 그 소설에는 ‘유토피아’라는 섬이 등장합니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 사회는 사람들이 하루에 단 6시간만 일하고도 아무런 결핍이 없으며 사유재산이 없고, 굶주림과 불평등의 공포도 없습니다. 불로소득이나 빈부격차도 없고, 모든 시민들이 교육과 여가를 영위하며 살아가는 아름답고 평등한 이상 사회입니다. 이처럼 <유토피아>는 일부 사람에게만 이익이 되는 사회가 아닌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는 진지한 시도였으며 여가를 소수의 유한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시민들이 노동을 공평하게 분담함으로써 동등하게 권리를 지향하는 고전 명저입니다. 토마스 모어는 그런 이상향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이 작품을 저술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모든 종교에서도 그런 이상 세계를 묘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느님 나라라고 칭합니다.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모든 슬픔과 눈물, 괴로움과 불행, 모욕과 박해마저도 상쇄되고, 의롭고 올바른 이들이 행복을 누리는 곳입니다.(마태오 복음 5장 산상수훈)

    성경의 가장 앞자리에 있는 창세기에서도 묘사하는데 그런 나라를 묘사하는데 에덴동산, 낙원이라 부릅니다. 그 에덴동산은 인간의 욕심과 폭력으로 인해 상실되어버린 이상향이지만 분명한 것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원래 그처럼 보시니 좋은 세상이었습니다. 이러한 유토피아와 하느님 나라, 그 이상이 너무 높기도 하고 창세기적 시각으로는 인간의 잘못으로 상실되어 멀어져 버린 공간이지만 언제나 인간과 사회가 갈망하는 희망이자 시도이며, 나아가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만들어야 하는 실체로 볼 수 도 있습니다.

     

    콜트 기타 사태가 4462일을 맞고 있습니다. 흑자 경영을 하던 회사가 돌연 사람들을 정리해고했고 부당한 정리해고였음이 재판에서 인정되었으나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미래에 닥칠 위기가 있으니 합당했다고 해서 노동자들은 속절없이 13년을 거리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돈을 더 벌기 위해 사람을 해고한 경영과, 이를 묵인한 정부와 기업, 사법부에 대해 우리는 그저 순종하고 가만히 지켜보아야만 하는 것인지요? 혹자는 악법도 법이니 따라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현실, 사람보다 돈이 귀하고, 억울하게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이 고민스럽습니다. 이 상황이 이상합니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라 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엔 나날이 화려한 고층 건물이 늘어납니다. 세상은 부자가 되어가는데 왜 누군가는 이런 어려움에 시달려야 하나요? 이제는 국민 중 3명 중 한 명인... 왜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고 저임금 근로자는 늘어나고 있으며, 평생을 일해도 내 집 한 칸 마련 못하는 현실... 청년들은 피나는 노력에도 자신의 꿈과 일자리를 얻을 수 없는 현실... 청년 김용균과 이한빛 피디, 박선욱 간호사는 꽃다운 목숨을 일터에서 잃어야 했습니까?

    콜트콜텍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영악화와 적자경영, 긴급한 경영위기에 시달리는 회사였다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름 아닌 아닌 흑자경영과 세계적인 기타 회사가 그러했습니다. 사람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입니다. 돈과 욕심만을 쫓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느님께서 원하시던 세상이 이런 세상,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결코 이런 모습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모두가 부자가 되는 그런 세상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누구 하나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어제(4월 20일) MBC뉴스에서 콜트콜텍에 대한 기사나 방영되었는데 임재춘 조합원의 인터뷰가 방송되었습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밥 한 끼 같이 먹고, 가족들을 보살피는 것이 바람입니다.”

    이런 바람을 갖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무리한 것일까? 너무나 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상식적인 바람입니다.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란 무엇입니까?

    올바른 가치를 공유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억울하게 고통받는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우리 모두가 공동체라는 인식 속에서 함께 책임을 다해 서로 행복한 길을 찾고 노력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오늘 하느님 아드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큰 축제일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부활이란 죽음을 넘어선 신비로운 사건입니다.

    죄가 없으신 분께서 우리를 위해 수난하고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희망을 열어주신 것을 기념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부활을 기억하며 그분의 사랑도 함께 기억합니다. 기억하는 행위 속에서 우리는 사랑과 함께 존재의 의의, 삶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사람과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들의 어려움을 보듬고 어려움 속에서 함께 하는 것은 사랑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실천은 죽음을 이기는 부활을 체험하게 합니다. 형제적 사랑 안에서 콜트콜텍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희망합니다. 유토피아는 아니더라도 상식과 이성이 통용되고 억울하게 고통받는 이가 없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독서의 말씀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콜로새서 3,3-4

     

    (이주형 세례자 요한 신부.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 첨부파일
    photo_2019-04-21_11-24-3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