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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정의 문헌] 새로운 형태의 가난
    • 등록일 2021-08-06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67
  • [경제와 금융의 힘]

    새로운 형태의 가난

       안타깝게도 경제와 금융의 세계화는 품위 있게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인간의 기본 소명과 연대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너무 자주 잊어버립니다. 바오로 6세께서는 「팔십주년 (Octogesima Adveniens) 에서 오늘날에도 유효한 제안을 하셨습니다. “모든 국가의 자율과 문화를 온전히 존중하지만 우리는 지구가 온 인류의 것이고 온 인류를 위한 것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자원이 부족하고 발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그들이 인간답지 못하게 살아가는 사실이 정당화되지는 않습니다. ‘남보다 잘사는 사람들은 자기 재산을 남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너그러이 일정한 자기 권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합니다.”

       경제와 금융의 세계화는 다른 이들에게 기울이는 관심만큼 가난한 이들에게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너무 빈번하다 못 해, 도리어 가난한 이들을 실제로 시민 사회에서 배척해 버리고 맙니다. 다시 말해서, 바로 세계화 자체는 예나 지금이나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의 가난과 취약함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노숙자, 약물 중독자, 난민, 멸족의 위기에 놓인 원주민들, 나이 때문에 활동적인 삶에서 배제되는 이들, 불법 이민, 온갖 형태의 인신매매 피해자들, 밀수 공장에서 살해당하는 노동자들, 신종 매춘의 피해자들, 구걸에 이용당하는 아이들, 마피아 범죄의 피해자들, 배척과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고 흔히는 자신의 권리를 수호할 기회조차 거의 없는 여성들, 소셜 네트워크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피해자들이 있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 가운데에서도 가장 무방비한 상태인 무죄한 태아를 어찌 잊겠습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목적에서 태아의 인간 존엄성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버림받은 노인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버림받은 노인들을 사회에 부담을 주는 걸림돌이라고 여기며 치워 버리기를 요구합니다. 더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사실 언제나 가난과 노예의 새로운 형태들이 생겨납니다. 이따금 우리 자신도 안이하게 편리한 침묵으로 공모하며 이를 키웁니다. 이처럼 우리는 아마도 우리 양심의 불을 밝히지 않으려고 에둘러 말하는 완곡어법이라는 수치스럽고 무서운 경향에 굴복해 버리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불의한 세상에서 이러한 완곡어법이 얼마나 만연되고 있는지 살펴보면 흥미롭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입바른 말을 하지 않고 현실을 세련되게 치장하면서 묘사하고자 합니다. 고립되거나 소외되거나 빈곤이나 굶주림에 시달리며 떠도는 사람들을 ‘거주 불명자’ (persona senza fissa dimora significa)라 부릅니다. 이는 분명 그럴 듯하지만 위선적인 표현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폭격의 희생자들은 어쩔 수 없는 '부수적 피해자'라는 것입니다. 오해일 수도 있지만 통상적으로 그러한 완곡한 표현의 이면에는 언제나 진실이 가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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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reurl.kr/2CC11A748Z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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