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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정의 문헌] 죄의 구조 바꾸기
    • 등록일 2021-07-29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200
  • [경제와 금융의 힘]


    죄의 구조 바꾸기

     

       공적 권위들과 사적 단체들의 상당수가 사회 정책들을 이행하고 있고 빈곤을 척결하려는 수많은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참다운 성장을 보여 주는 이러한 상찬할 만한 노력들에 갈채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난한 이, 고아, 과부, 중풍 병자, 하혈하는 사람처럼 유다 사회의 '버려진 이들은 십일조와 이삭줍기를 통하여 도움을 받고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난에서 계속 헤어나지 못하였고, 그들이 받는 도움도 굶주림에서 벗어나거나 거처를 마련하거나 궁핍한 모든 사람을 돌보는 데에는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소외된 이들에게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주고 그들을 돌보고 교육하고자 여러 다른 방안들과 효과적인 전략들을 강구하고 적용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제도들은 분명히 이스라엘 시대의 제도들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은 국가가 원활한 기능을 발휘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연대 활동을 수행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하여 전부든 일부든 세금 탈루는 법을 위반하는 행위인 동시에, 가장 가난한 이들을 향하여 국가가 수행하는 연대를 저해하는 행위입니다. 상호 부조를 부인하는 것은 삶의 기본 법칙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들에도 충분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우스꽝스러운 관행은 인간이 폐기물을 계속 만들어 내고 나중에 이를 슬그머니 무마하는 것입니다. 규제 당국이 없으면 “자유 시장 경제는 광란에 빠질 것입니다.” 이것이 부도덕한 자본주의입니다. 이러한 잉여 폐기물을 만든 다음, 신문이나 텔레비전, 인터넷에 드러나지 않게 이를 숨기려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와 동일한 논리, 진실을 말하는 것이 비논리적인 그러한 논리가 시장을 지배합니다. 예를 들어 항공 시장은 피해를 입힌 다음 이를 만회하려 합니다. 항공기가 비행 노선을 따라 탄화수소를 배출하면서 대기를 오염시키지 않습니까? 항공사들은 항공료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비용만 들여 나무를 심고는 그 피해의 일부를 보상한 것 마냥 으스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행성 산업에 자금을 대는 다국적 기업들도 바로 그들이 만들어 낸 도박 중독자들을 치유하는 데에 기부금을 내고 광고 캠페인을 펼칩니다. 이제 우리는 군수업체들도 자기들 이 생산한 폭탄 때문에 장애를 입은 아이들의 치료를 위하여 병원에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나서게 될 날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지금 우리는 위선이 극에 달한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치와 경제 체제들은 그 체제의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피해자를 점점 줄여 나가고 가능하다면 피해자가 아예 없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화되고 얼굴 없 는 경제-사회 체제들의 운영 규칙들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피해자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우리는 그를 돌보도록, 적어도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그에게 쉴 곳을 찾아 주도록 부름받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기업인이라면, 그 불쌍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또한 형제애에서 우러난 자신의 개인적인 행위에 시장도 참여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숙박업자도 동참시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예방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강도들을 만나기 전에 강도들과 피해자를 낳는 그러한 죄의 구조를 척결하는 의로운 행동이 필요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행동하는 기업인이나 은행가나 자본가는 자기 의무의 반만 이행하는 것입니다. 물론 피해자를 돌보겠지만, 앞으로 이와 유사한 피해자가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조처한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일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기도 한 죄가 존재하기에, 우리는 ‘죄의 구조’에 대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이를 풍부하게 다루며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죄의 신비는 죄인이 자기 자신 안에 그리고 이웃 관계에 끼치는 이중의 상처가 됩니다.” “어떤 죄들은 그 목적 자체가 자기 이웃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됩니다.”“죄의 결과로 죄의 구조가 영속됩니다.” 죄의 결과는 “또 다른 죄의 원천”이 되고 “인간의 행동”을 규제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두 번째 비유인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 줍니다. 자비로운 아버지는 집에서 자녀들을, 곧 잘못을 저지른 일꾼이나 협조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들을 껴안아 주고 그들과 함께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열어 줍니다. 큰아들이, 그리고 공로를 내세워 그 자비를 부인하는 모든 사람이 올바른 처사가 아니라고 따져도 아버지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자기 회사가 정의와 참다운 결속을 이루기를 바라는 기업인, 경영자, 생산자는, 잘못을 저지르고 집을 떠난 이들이라도 그들이 생계유지를 위하여 근근이 살아가지 않고 언제든 일자리와 품위에 걸맞은 정당한 소득을 희망할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고 부름받고 있습니다. 어떤 아들도, 어떤 사람도, 심지어 반역자라 할지라도,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나 도토리를 먹어 마땅한 사람은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사회 정의 – 돈과 권력  P26-30
    미켈레 찬추기 편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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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reurl.kr/2CC11A748Z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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