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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세상의 빛] 93. 우리와 사회의 회복을 위하여 - 가족과 공동체의 의미
    • 등록일 2020-11-06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030
  • 가톨릭신문
    발행일2020-11-08 [제3218호, 17면]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세상의 빛] 93. 우리와 사회의 회복을 위하여 - 가족과 공동체의 의미
    「간추린 사회교리」 40항

     

    모두가 함께 빛나며 더불어 살기 위하여
    집콕생활로 늘어난 이웃 간 분쟁
    타인을 협력자·동반자로 바라보는 성숙한 공동체 의식 함양 절실

     

    요한: 매너 없는 이웃 때문에 너무 화나요! 같은 아파트 살면서 전혀 양보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 챙겨요!

    시몬: 맞아요, 얼마나 밉상인지 몰라요!

    비오: 정말 타인은 지옥이에요. 신부님!

    이 신부: 아, 저런!

     

    ■ 나는 어떤 이웃인가?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그의 작품 「출구 없는 방」(1944)에서 “타인은 지옥이다”(L’enfer, c’est les autres)라고 합니다. 「출구 없는 방」은 타인과 함께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겪는 어려움, 불안, 갈등을 실존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집콕생활이 늘면서 가족 간 갈등뿐 아니라 이웃 간 분쟁도 늘었다 합니다. 공동 주택 층간소음, 흡연, 쓰레기 분리수거, 반려동물, 주차, 텃세 등 이웃 간에 붉어지는 문제들입니다.

     

    향약, 두레, 품앗이에서 보듯 농업중심 전통사회는 협동과 상부상조가 중요했는데 핵가족화, 도시화가 진행되며 현대사회는 개인적 관심과 권리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또 SNS 발달로 이웃 관계는 점차 탈지역화, 인격적인 만남이 결여된 ‘공항화’(공항에서 이뤄지는 만남은 모두 피상적이라는 데서 현대사회 풍조를 표현한 말)가 강해졌습니다. 실제로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지내니 이해와 배려가 사라지며 다름과 차이가 갈등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이기주의, 무관심, 비협조, 고독사, 소외의 증가, 그리고 우발적 범죄로 이어져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웃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들

     

    전환 시대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많이 벌고 많이 쓰는 문화에서 덜 쓰고 지속가능한 문화로, 심각한 생태기후 위기에 관심 갖는 것으로 말이죠. 선린(善隣)관계를 위해서도 광범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자체에서는 ‘마을분쟁해결센터’, ‘이웃분쟁조정센터’, ‘이웃갈등 조정자 양성교육’을 통해 분쟁예방과 화합을 유도합니다. 인천 어느 아파트에서는 주민들 간 ‘배려생활 실천서약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정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성숙한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것입니다.

     

    “타인은 지옥이다”에 대해 사르트르는 정말로 타인이 지옥이라서 한 이야기는 아니라 합니다. 타인들 평가와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함이 우리를 지옥에 머물게 한다고 하죠! 비교하고, 눈치보고, 불안해하지 말고 다른 이의 평가와 시선의 노예가 되지 말라 합니다. 그런데 타인은 지옥으로서도 존재하지만 매개자로서도 나의 존재가치를 부여하기에 역설적이지만 긍정적이라고도 합니다. 타인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타인을 도움을 주는 존재로 인식하고, 모두 함께 빛나며 더불어 사는 것은 과연 어려울까요?

     

    ■ 모두가 빛나는 삶은 불가능할까?

     

    「간추린 사회교리」에서 건강한 사회를 위해 중시하는 것은 대화와 협력, 이웃사랑입니다. 이는 타인은 짐이나 멍에가 아닌 동반자, 협력자라는 가르침에서 비롯됩니다.(창세 2,18) 쌀알을 위해 농부가 구슬땀을 흘리고 해와 달과 땅, 비와 구름 등 모든 대자연이 있어야 합니다. 그 쌀로 사람이 살고, 사람은 이웃을 살리는 것처럼 서로를 은혜로 바라보고 도와야 한다는 더 넓은 지평으로 나아갑니다.

     

    번영과 화려함을 구가하는 현대문명은 젊음과 아름다움, 화려함을 추구하며 오로지 이를 미덕과 지혜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약하고 초라한 것 심지어 이웃마저 배제하는 어리석음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늙음과 죽음도 삶의 일부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살 날 수를 알고(시편 90,12) 하느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한다고 합니다.(코헬 12,13) 반목은 착각이자 유혹이며 죽음 그 자체입니다. 화목은 생명이며 지혜이고, 주님 현존의 표징입니다. 그 무엇보다 상생을 위한 노력도 중요해 보입니다. 좋은 이웃으로 지내다보면, 멀든 가깝든 이웃의 슬픔과 고통에도 함께하고, 서로 용서하는 우리가 되리라고 희망해 봅니다.

     

    ‘엄마’의 반대편은 ‘아빠’래요. 아녜요, 아냐. 아빤 엄마의 참 좋은 짝인 걸요.

    ‘남’의 반대편은 ‘북’이래요. 아녜요, 아냐. 북은 남의 참 좋은 짝인 걸요.

    ‘하늘’의 반대편은 ‘땅’이래요 아녜요, 아냐. 땅은 하늘의 참 좋은 짝인 걸요.

    우리 가족, 우리나라, 우리 별 지구···. 자꾸자꾸 불어나는 참 좋은 짝인 걸요.

    (손동연 시인 ‘짝1’)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 링크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349113¶m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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