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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톨릭신문] 왜 노동은 덫이 되어 버렸나?
    • 등록일 2015-02-02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2300
  • [사회교리 아카데미] 왜 노동은 덫이 되어 버렸나?

    도구로 전락한 인간의 노동
    일자리 양극화 현상 심각
    열심해도 가난 극복 힘들어
    노동의 본의미 회복 급선무
    발행일 : 2015-01-18 [제2928호, 7면]

     (일러스트 조영남)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덫에 걸린 신분으로 사는 것과 같다. 최근 5년 사이에 빈곤에서 벗어나는 비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주식 배당이나 은행 이자 소득을 뜻하는 자본 소득에 비해서 노동소득의 비율 역시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이미 일자리는 10%의 대기업과 공기업의 좋은 일자리, 그리고 나머지 90%의 일자리로 양극화되었다. 90%의 노동자는 변변치 못한 보수로 일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임금 노동자의 50% 이상이 언제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지 모르는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비정규직이 5년 안에 정규직으로 옮겨가는 비율은 20%도 되지 않는다. 이제 평생직장은 아련한 추억 속에서나 머무는 단어다.

    반대로 2014년 1분기 기준으로 우리나라 10대 재벌기업의 사내보유금은 500조를 넘었다. 얼마 전 현대차그룹이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를 감정가의 세 배가 넘는 10조5000억 원에 살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뿐만 아니라, 10대 기업집단의 보유금은 지난 5년간 2배 이상 늘어났다. 그런데도 재벌들은 경제가 어렵다고 엄살을 떨고 있고, 정부는 기업이 잘되는 나라를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세계 경제 10위권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불평등으로 따지자면 멕시코와 비슷한 수준이 되어버렸고, 빈곤율로 따지자면 터키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나라에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부자 되기는 힘들다. 이 나라에서 노동이란 자신을 실현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존엄한 것이 아니라, 되도록이면 빨리 탈출해야 하는 덫이 되어버렸다. 

    왜 노동은 덫이 되어버렸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노동하는 인간」에 의하면, 노동은 두 가지 얼굴을 지닌다. 인격적인 얼굴과 도구로서의 얼굴이다. 인격적인 얼굴의 노동이란, 누가 어떤 노동을 하든지 그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인간됨을 실현하고 하느님이 하신 창조의 일을 지속시킨다는 의미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노동은 존엄한 것이고 이마에 땀을 흘리는 노동자 역시 존엄한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노동력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환산되어 값이 매겨진다. 그 값에 따라서 노동은 서열이 정해진다. 이것이 바로 도구로서의 노동이다. 노동이 인격적인 얼굴을 잃어버리고 시장에 내팽겨져 상품으로서 그리고 도구로만 여겨질 때, 노동은 인간의 발목을 잡는 덫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상품이라는 도구로 전락해버린 노동을 다시 인격 안으로 되돌리지 않고서는 노동의 미래는 없다. 노동이 시장을 벗어나거나 넘어서지 못하는 한, 노동은 그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을 시장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장의 폐해를 줄일 수는 있다. 국가가 노동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정책을 쓰면 된다. 이를 ‘적극적 노동정책’이라고 한다. 가톨릭 사회교리가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듯이, 모든 노동자가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한 임금을 받도록 도와주고, 비자발적 정리해고로부터 보호해주고, 실직한 노동자들에게는 충분한 연금과 직업훈련을 제공하면 된다. 돈이 없어서 못한다는 말은 말자. 지난 5년 동안 꾸준히 변두리로 밀려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서 지난 5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어난 재벌의 사내보유금에 세금을 매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무엇이든 하려고 하면 방법을 찾게 되지만, 무슨 일이든 하지 않으려고 하면 변명만 쌓이는 법이다. 


    이동화 신부는 199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2010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노동사목을 담당하며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사목하고 있다.
     

    이동화 신부(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

     

     

    기사보기

    https://www.catholictimes.org/view.aspx?AID=265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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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2928_2015_0118_070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