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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정의 문헌] 노동의 존엄
    • 등록일 2021-10-23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19
  • [노동과 불로 소득]

    노동의 존엄

       세계화 사회에서 노동은 문제가 되었습니다. 금융은 어디서든 노동에 불리한 쪽으로 나아가야 증진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동은 인간과 시민의 우선적 권리입니다. 곧 노동은 다른 모든 생산 요소보다. 심지어 자본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은 그리스도교가 우선으로 여기는 사항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이는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첫 명령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서 땅을 가득 채우고 일구며 지배하여라. 노동은 인간의 본래 조건에 속하는 것이고, 인간이 타락하기 전부터 있었으므로, 형벌이나 저주가 아닙니다.

       교회와 노동의 가까운 관계, 이른바 교회와 노동의 우정은 노동자이셨던 예수님을 출발점으로 삼아 언제나 계속되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지상 생활의 대부분을 요셉의 일터에서 목수로서 육체노동을 하면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받은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둔 게으른 종은 꾸짖으셨지만,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 맡긴 역할을 올바로 수행하고 있던 성실한 종은 칭찬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지상 사명을 가리켜 “일”이라고 말씀하셨고, 당신 제자들을 “수확할 밭의 일꾼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과 교회의 사랑의 시선과 관심은 언제나 노동자가 있는 곳을 향합니다. 교회는 노동을 창조 사업뿐만 아니라 구원 자체에 참여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교회의 사람들이 본당이나 엄숙한 회의실에서 하는 노동 못지않게 일터와 작업실에서 하는 노동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교회의 자리들이 곧 삶의 자리이기에, 광장도 사무실도 공장도 마땅히 교회의 자리입니다. 노동의 세계는 그리스도인들의 세계, 하느님 백성의 세계입니다. 공장 노동자들도 완전한 권리를 지닌 하느님 백성의 일원입니다.

       성경과 복음서를 읽어 보면, 하느님과 인간의 수많은 만남은 바로 노동하는 도중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는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다가 자신을 부르시고 당신 이름을 알려 주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순박한 어부들로 호숫가에서 일하고 있다가 예수님께 부름받았습니다. 노동은 인간 삶에 근본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일자리를 잃게 되면, 그 피해는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수입이 없어진다는 사실보다도 훨씬 심각한 것입니다. 노동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활동이라는 것은 맞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도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노동을 통하여, 개인은 ‘더욱 인격체’가 되고 인류는 번성하며 공동체에는 유익이 됩니다. 실제로 젊은이는 일을 시작하고 나서 비로소 어른이 됩니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언제나 인간 노동을 무엇보다도 “창조 행위에 대한 참여”로 여겨 왔습니다. 창조는 노동자들의 손과 정신과 마음 덕분에 날마다 그리고 오늘도 계속되는 것입니다. 노동하고 땀 흘리며 자기 일을 애써 성취해 내는 경험보다 더 큰 기쁨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동이 착취나 굴욕이 될 때, 직접적인 살인만 아니었을 뿐, 일터에서 겪는 고통보다 더 뼈저린 고통도 없을 것입니다. 노동은 선을 행할 수 있지만, 그만큼 악도 행할 수 있습니다. 노동은 인간의 벗이고 인간은 노동의 벗입니다. 사람들은 노동에서 힘을 얻습니다. 인간은 노동으로 ‘존엄의 기름부음’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그리고 노동이 사람들을 서로 가깝게 해 주고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일하도록 해 주기 때문에, 노동을 둘러싸고 공동체를 다 함께 유지시켜 주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과 노동은 언제나 함께 나아갈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두 요소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인간을 배제하고 노동을 생각할 때, 노동은 비인간적인 것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구체적인 사람들을 망각하면, 노동도 본질을 잊고 메말라 버립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노동을 배제하고 인간을 생각할 때에도, 이와 마찬가지로 편파적이고 불완전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노동자가 될 때에야 비로소 충만한 자아실현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개인은 다른 이들에게 열려 있을 때, 풍요로운 사회생활을 영 위할 때, 노동으로 스스로를 꽃피울 때 인격체가 됩니다. 노동은 인류 역사 전체에 걸쳐 인간이 낳은 협력의 가장 공통된 형태인 것입니다. 날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교육하고 기계들을 사용하며 일터에서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등, 함께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노동은 ‘시민애’ (amore civile)의 한 형태입니다. 이는 낭만적인 사랑이나 의도적인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세상을 지탱하는 진정한 참사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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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reurl.kr/2CC11A748Z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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