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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정의 문헌] 진보와 발전
    • 등록일 2021-09-24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42
  • [경제와 금융의 힘]


    진보와 발전


       집과 땅과 노동, 이 세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경제는 물론 국가와 사회의 진정한 발전에 대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진보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세계적 변화와 더불어 경제적 성장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폐단들도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일부 기술 혁신에 따른 실업, 사회적 배척, 물과 에너지와 원자재의 불균등한 사용과 소비, 폭력 증가, 새로운 형태의 약탈, 마약 밀매와 이에 따른 마약 사용 증가, 정체성 상실, 그 밖에도 매우 많은 악영향이 초래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지난 세기의 성장이 그 자체로 참으로 온전한 진보로 이어지지 못하고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지 못하였음을 보여 주는 징표들입니다. 이러한 징표 가운데 일부는 도리어 사회가 지속적으로 퇴보하고 있고 사회적 통합과 친교의 유대가 소리 없이 와해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한 사회의 건강은 실제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사회의 역량, 곧 그 사회가 제공하는 고용 전망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보를 이야기할 때에는, 바오로 6세께서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에서 이미 제안하신 대로, 인간의 존엄성과 그 온전한 발전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족들의 발전]에서는 이를 가리켜 특별히 “완전한 휴머니즘”이라고 아름답게 표현하였습니다. 진보에 대하여 말할 때 각별히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이해시키고자 사회생활의 한 측면만 살펴보겠습니다. 바로 대중 매체입니다. 이 시대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홍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홍수는, 많은 지식과 많은 친구를 얻는 것이 진보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려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변질시킵니다. 이러한 진보는 예상과는 달리 인간의 새로운 문화적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저 인간의 가장 풍요로운 본질만 해칩니다. 참된 앎이란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성찰과 대화와 실질적 만남의 결실입니다. 일종의 정신적 중독 상태에서 계속 접속하고 자료를 축적한다고 해서 이러한 참된 앎이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상이 아닌 실제 관계는 여러 도전 과제들이 따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일종의 간접적인 관계, 다시 말해 매개를 통한 관계로 대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성이나 정의가 아니라 자유 의지에 따라 관 계를 선택할 수도 단절할 수도 있게 해 줍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 진짜가 아닌 인위적인 감정들에 휘말리게 됩니다.


       오늘날 대중 매체는 더 신속하고 풍부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지식과 정서, 감정, 생각을 공유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이따금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뇌와 불안과 기쁨, 그의 복잡한 개인적 체험을 직접 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오늘날 나눔의 지상 낙원으로 자처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이 인상적으로 때로는 과도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와 더불어 대인 관계에서 깊은 불만만 쌓여 가고 있다는 사실은 놀랄 일도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오늘날 군중 속의 고독만 무수히 생겨납니다.


       이제, 요한 바오로 2세를 따라 진보(progresso)와 발전(sviluppo)의 차이를 규명해야 합니다. 참된 발전은 경제 성장, 재화와 서비스의 증대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충만함, 곧 ‘온전한 인간 자신의’ 충만함에 기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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