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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톨릭뉴스지금여기] <이주형 신부 강론> 12월 13일(대림 제3주일)
    • 등록일 2020-12-17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280
  • 성찰하고 인내함, 희망의 발견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5)

     

    이사야서 61,1-2ㄱ.10-11

    1 테살 5,16-24

    요한 1,6-8.19-28

     

    고통 속에서 피어났던 믿음

     

    저 먼 옛날 이스라엘을 비롯해 250여 년 전 이 땅의 신앙 선조들을 생각하며 ‘그분들은 어떻게 신앙을 지키셨을까’를 생각해 보곤 합니다. 이스라엘은 수천 년 강대국의 압제 속에서 늘 고통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온통 잡혀간 사람들, 옥에 갇힌 이들,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 투성이고,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한국 순교성인들도 마찬가지이십니다. 박해와 죽음 속에서 눈물겹게 사셔야 했지요. 칼날과 모진 형벌 앞에서 얼마나 무서우셨을까요? 하지만 그 속에서도 위대한 신앙의 유산들, 성경과 성전(聖傳), 전통들이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이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아픔과 눈물 속에서 샘솟았던 영원한 믿음, 죽음과 위협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굳센 믿음입니다. 사도 바오로께서 오늘 2독서를 통해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들은 ‘성령의 불’과 ‘좋은 것을 간직’하셨던 것입니다.(1테살 5,19-21) 그런데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인내가 필요해?

     

    여기서 문득 인내를 떠올려 봅니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도, 어려운 시간을 보낸 모든 이에게도 필요한 것은 바로 인내입니다. 두렵고, 힘들고, 어렵고 괴롭지만 버티는 것이랄까요? 그러나 케리 윌터스는 그 인내의 의미를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재해석합니다. 인내는 단순히 버티는 것만이 아니라 고통에 주의 깊게 반응하는 것이며, 이것을 통해 더 의미 있는 것을 식별하고 체험한다고요. 행복과 고통, 성장과 의미라는 요소들은 사뭇 복잡합니다. 여기서 의미와 고통의 상관관계를 설명합니다. 오히려 아픔과 상처 속에서 삶의 귀한 것들을 알게 된다고 말입니다. 사실 우리의 일상은 기쁘고 유쾌한 것이 되려 무의미하기도 하나 반대로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가 성장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고통은 하나의 악이지만 동시에 신비라고 가톨릭교회는 해석합니다. 그 고통이 악으로 남을지, 선을 위한 섭리로 체험될지의 여부는 인내에 달려 있지요. 인내가 없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겁니다. 케리 월터스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내만큼 많은 오해와 평가 절하를 받는 덕도 없는 것 같다. 한편에서 우리는 입버릇처럼 인내를 예찬한다. 특히 나이든 사람들은 곧잘 젊은이들에게 인내하라고 훈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내라는 마음의 덕을 기르는 데 긴 시간과 정성을 쏟기를 꺼려하는 것이 사실이다.” ("아름답게 사는 기술" 중)

     

    저 한 송이 꽃이 피우기까지 많은 고난이 있었음이 이제는 나의 인생처럼 느껴진다!

    과연 인생도 그러한 것인가? (OMG!)
    Photo by Lee. Joohyong .2018. 7.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어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 '국화 옆에서'

     

    인내, 나를 성장시키는 덕

     

    생각건대 나를 건강하고 소중하게 지키려는 마음 때문에 우리는 인내합니다. 나의 소중함은 존재감, 자존감, 존엄 등으로 표현할 수 있지요. 페터 비에리는 존엄을 인간의 주요한 특성이자 삶의 방법이라 하며,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존엄을 위한 중요한 요소라고 합니다.(페터 비에리, "삶의 격" 중) 그리고 일상의 크고 작은 상처들, 세상에 과연 내 자리가 있을까 힘겨워 하는 사람들, 심지어 삶을 포기하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서 누구나 쉽사리 상처받습니다. 이처럼 존엄이란 주어지는 것이면서 동시에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어떤 무형의 힘과 덕으로서 인내는 그 존엄을 유지시켜 줍니다. 고통과 상처 앞에서 우리는 힘겹지만 동시에 성장합니다.

     

    루카 복음의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21,19)는 말씀을 종종 묵상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이 가신 길을 가만히 생각해 보기도 하고요. 인내와 믿음을 통해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제겐 큰 힘과 용기, 인내할 의지를 줍니다. 대림시기를 기다림의 시기라고 하지요? 구세주를 기다리는 시기이며 동시에 내가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남을 인고(忍苦)하는 시기라고도 여겨집니다. 우리 온 생애도 기다림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성장하고, 더 성숙한 나로 확장되고 커 가는 그런 인내로운 기다림 말입니다. 어려움 앞에서 분명 우리는 약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현실이 우리 삶의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왜입니까? 희망은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희망은 빼앗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 희망이 나자렛 예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 인내를 통해 희망을 간직합시다.

     

    폭풍이 지나갈 때 나는 주님에게 수줍게 간구합니다.

    폭풍이 지나간 뒤에 우리를 더 낫게 해 달라고

    주님께서 한때 우리에게 바라던 그 모습대로

    - 알렉시스 발데스, '희망'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장

  • 링크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67
  • 첨부파일
    31067_51059_401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