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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사목 자료]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13
    • 등록일 2021-06-23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332
  • 사람이 자본이 될 때 무슨 일이 생기는가

     

    그런데 다음과 같은 새로운 물음들이 생깁니다. 효율성은 어떻게 측정되는가? 효율성은 예를 들어 물리적 재화를 제공하는 문제를 이야기할 때에는 쉽게 적용할 수 있다. 당신은 생산된 콩이나 맥주 깡통의 수를 셀 수 있으며 생산성과 효율성을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서비스 부문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 부문에서의 성공은 때때로 생산된 인간관계의 질로 측정될 수 있다. 이 부문에서 성공을 측정한다는 것은 더 어려워지고, 그 어려움은 이제 노동과 자본 사이, 고용주와 고용인 사이의 긴장이 아니다. 여기서 문제는 사람을 섬기는 사람, 인간적 재화를 생산하는 사람과 관련된 물음이다. 여러분은 그 생산성을 어떻게 측정하는가? 예를 들어 경찰력처럼 사회적 재화의 전달에 관해 그 효율성을 측정할 때 적용하는 사례가 있다. 만일 효율성이 범죄를 저지른 범죄인을 찾는 것을 뜻한다면 이는 효율성의 수학적 정의를 제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만일 여러분이 제시된 기간에 범인의 80%를 체포하여 유죄 판결을 받게 했다면, 여러분의 경찰력은 오직 40%만 체포한 경찰력보다 더 효율적이라 측정할 수 있다. 혹은 만일 여러분의 사회적 용역 제공자가 하루에 60명 노인의 발톱을 손질한다면, 그는 같은 시간 같은 비용으로 35명 노인의 발톱을 손질하는 사람보다 더 효율적이라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의 유일한 기준인가? 예를 들어 같은 조건에서 더 효율적인 경찰력이 죄가 없는 사람들도 더 많이 체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혹은 발 관리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노인이 발 관리만이 아니라 누군가 이야기하는 것까지 원할 수 있다는 것을 철저히 간과할 수도 있다. 이는 의사나 보건 노동자의 노동에 대해 효율성 측정할 때에 더욱 그렇다.

     

    만일 성공이 인간관계의 질로 측정된다면,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순전히 경제적인 측정 기준이 적용된다면, 노동자를 정량화하고 객체화하는 위험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인간적 능력과 관련한 서비스를 덜 효율적이며 덜 창의적인 것으로 보일 위험이 있다. 효율성이 처음부터 작업 전체의 초점이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위기의 때에 일부 이런 경제적 측정 기준들이 무너진다는 사실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효율성과 측정, 인간의 정량화와 객체화 역시 중요하다. 정량화는 개인적 공헌과 재능을 효율적인 결과와 조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생산되어야 할 생산물에 더 효율적으로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영국 존 메이저의 시민헌장에 대해, 그리고 내가 여권 심사를 받을 때 10분 동안 기다렸을 때 이 시민헌장을 자주 생각한다. 인적 혁신과 재능이 서비스 분야에서 수요와 공급을 맞출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이 가능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경제적으로 승리할 효율적이고 유연한 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그런 서비스 공급자들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기술적으로 효율적이고 인간적으로 유익하며 가격 우위를 제공하는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나는 멀리 있더라도 그 사람에게 갈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사람이 자본이 되면, 교육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더 많이 참여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는 적극적인 사람이 무엇인가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남미 경제에 관한 가장 중요한 연구 중 하나는 미국의 평균적인 어린이가 동-남아시아의 유사한 어린이보다 2년 동안 학교에 덜 다닌다는 것, [경제가] 교육의 질에 더욱더 좌우된다는 것, 그리고 이는 가르침과 교사의 질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많은 곳에서, 교사의 사회적 지위는 낮고 교육 관리가 너무 중앙집중적이며, 그 관리가 이루어지는 공동체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여러분은 많은 개발도상국에 서류로만 존재하는 유령 학교의 문제, 또는 봉급 받을 것만 주장하는 유령 교사의 문제가 있음을 보았다.

     

    교육의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요구되는 교육체계는 창의성을 격려하고 산출하는 체계다. 자주 언급했듯이 학교 체계는 (영국의) 국교 신봉(conformity)을 격려했다. 다행히 나는 어떻게 비국교도가 되고 그런 조건에서 생존하고 성장하는 법을 알았다. 그러나 빈곤이 인간의 잠재 가능성을 실현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면, 빈곤에 맞서는 투쟁은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 가능성을 충분히 실현하고 그것을 조직과 공동체 안에서 구체화할 수 있게 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뜻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교육과 양성을 통한 개인의 향상(the advancement of the individual)뿐만 아니라 참여와 공유 책임 조직의 창조를 통한 사회의 주체성(the subjectivity of society)이 요구된다. 여기서 다시 또 다른 긴장이 발생한다. 누가 이 교육에 드는 비용을 치르는가? 경제 행위자는 좋은 교육을 받은 능동적인 주민에게서 혜택을 받지만 언제나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지는 않는다.

     

    다른 두 가지의 요소가 있다. 나로서는 오늘날 인간의 중심성인간의 객관화사이의 갈등(충돌)이 가장 지독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이주의 분야다. 사회가 시작한 이래 사람들은 이동했다. 이 유동성은 불가피하게 세계화 시대의 특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과 통상과 함께 나타난 모든 것과 더불어, 때때로 이주의 자유라는 개념에 대해, 아무리 관리되는 이주에 관한 제안이라 하더라도, 거의 비이성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주는 참으로 win/win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주는 보내는 나라의 고용 압력을 완화하고 받아들이는 나라에서 욕구에 부응한다. 이주는 또 다른 문화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송금은 여러 나라의 경제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사람들이 귀국했을 때 낮은 수준에서 기술적 이전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더욱더 인간학의 개념으로 돌아가게 된다. 인간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인류 가족에 귀속되어 있다. 분명히 손실이 있을 수 있다. 일부 개발도상국의 두뇌 유출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육과 보건이 개발도상국에 실제로 핵심적일 때, 보건 노동자들과 교사들의 극적인 손실을 생각할 수 있지만, 시장 경제가 이 문제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일이 이루어진 한 사례가 있는데, 축구에 있어서 다른 나라에서 계발된 재능을 얻기 위해서는 더 부유한 나라들이 그 값을 치러야 한다.

     

    인간학 분야에서 그리고 인간이 자본이 될 때 여러분에게 필요한 인간학의 유형에 관한 마지막 논평은 창조의 보전 안에 있는 인간의 자리를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창조 이야기는 창조의 모든 요소는 그 특유한 고유의 자리를 가지며 그 요소는 선하다는 것을, 인류는 창조 안에 배치된 조화를 유지하는 과업을 맡게 되었음을 깨닫게 한다. 노동의 우위성(the primacy of labour)은 노동의 환경(the environment of work)에 관한 특정 질적 차원들도 포함해야 한다.

     

    이 조화에 관해 말하고 있는, 창조 이야기를 살펴볼 때, 그리고 창조의 보전이 인류에게 맡겨졌을 때, 그 일은 남자와 여자로 만들어진 인류에게 맡겨진 것이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에 있어 균형을 이루는 것은 나머지 창조에서 조화를 찾고 유지하는 일에 있어도 핵심이라는 분명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다시 노동에 관한 우리의 성찰에 있어 간과된 한 차원이다.

     

    다시 나는 교황이 경제적 자유는 인간 자유의 한 요소일 뿐이다.”라고 말한 회칙 백주년으로 돌아가서 요약하려 한다. 경제적 자유가 독립적인 것으로 될 때 사람은 생활하기 위해 생산하고 소비하는 하나의 주체가 아니라 재화의 생산자나 소비자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자유는 인간과의 그 불가결한 관계를 잃어버리고 인간을 소외하고 억압하게 될 수밖에 없다. 현대의 경제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차원 그 이상의 다른 많은 인간적 차원들의 통합을 요구하는 그런 것이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노동소위원회에서

     
    교황청 사회과학학술원(Pontifical Academy of Social Sciences)에서
    발표된 글들을 엮은 문건을
     
    번역한 글을  13회에 걸쳐 나누어 올렸습니다.
     
    노동사목위원회 홈페에지 자료실 [문서자료] 전문 PDF파일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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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nodongsam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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