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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톨릭뉴스지금여기] <이주형 신부 강론> 12월 27일(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 등록일 2020-12-24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319

  • 평화와 겸손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콜로 3,15)

     

    낮춤, 겸손

     

    저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참 좋습니다. 이름을 기억함에는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반대로 이름을 기억해 주지 못하거나, 혹은 “야”, “너”, 등의 표현은 다소 섭섭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 차이는 호칭을 떠나 사랑과 신뢰가 담겨 있는지의 여부일 것입니다. 그래서 의미와 사랑을 담아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간혹 이름을 세우고자 노력하기도합니다. 어딘가에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나의 족적과 업적에 치중합니다. 허영과 교만에 빠진 것입니다.

     

    로마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피에타 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가인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이름을 새겼으나 결국 이를 후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작가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께서 세상 어디에서도 당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셨는데’ 하며 이름 새긴 것을 후회한 것이지요. 교황 프란치스코께서도 한국을 방한하시고 방명록에 당신의 이름을 깨알같이 쓰신 일화는 유명합니다. 저 같으면 크고 멋지게 제 이름을 썼을 것 같습니다. 과연 미켈란젤로와 교황님은 같은 생각을 하셨을까요?

     

    약함을 고백하다

     

    그것은 겸손 때문이었을 겁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침묵하는 것이 더 큰 덕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그것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닮는 행위입니다. 코린토서의 사랑의 찬가에서 이야기하듯 사랑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내어 주고, 상대방을 위해 죽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하느님을 닮아가는, 우리 신앙인이 추구하는 삶입니다. ‘인간이 완전할 수 있다’, ‘나는 완전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어떤 종교 지도자가 자신은 영생을 할 거라는 교리를 내세웠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두 교황'이란 영화에서 이제는 주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영적인 보청기가 필요하다고 하고, 자신은 늙고 쇠약했으니 교황직을 사임한다고 고백했던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인간적 모습이 더 애잔하고 감동적으로 보입니다. 영원이라 가장하고 속이는 가증스러움이 아름다울 수 없지요. 오히려 나는 약한 사람이니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고 기도하는 이가 더 강하고 거룩한 존재가 아닐까요? 또한 그 속에서 어떤 행복과 평화가 감지됩니다.

     

    겸손, 평화를 위한 한걸음

     

    구세주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성탄은 우리에게 평화와 신비를 전해 줍니다. 평화 자체가 우리에게 다가오셨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평화를 염원함에도 현실 속에선 평화가 무엇인지는 참으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유해가 간직된 이탈리아 아시시 프란치스코 성당

    1986년 10월 27일 요한 바오로 2세와 전세계 종교지도자들이 평화의 도시라 일컬어지는 아시시에 모여 평화를 위한 세계 기도의 날을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평화란 무엇일까? 삶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 그리스도와 평화는 다만 길이라는 간디의 통찰 속에서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붙드는 것이 평화임을 떠올려 본다.

    Photo by Lee. Joohyong .2018. 7.

     

    세계적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평화를 헤치는 구조적 불의를 개선하자는 적극적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지그문트 바우만은 평화를 위한 노력이 중요함을 역설합니다. 평화를 위한 실천과 노력의 바탕은 평화를 염원하는 인간 내면에 대한 성찰과 성장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평화를 위한다며 불의한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없듯, 평화만이 평화를 이루고, 선함만이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런 노력의 초점은 내면과 자아, 인격에 대한 성숙함을 통해 우리 스스로가 평화가 되는 것입니다.

     

    평화가 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 겸손이 있습니다. 겸손은 나를 돌아보고,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웃의 부족함을 보듬는 것입니다. 겸손은 소중한 것을 지키고 간직하게 하며 모든 것을 자라게 하고 모든 것을 치유하며 모든 것을 건강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찾게 합니다. 겸손을 통해 사랑과 믿음과 희망이 자라고 평화가 일궈집니다. 성가정 축일을 통해 평화를 위해 겸손이 절실히 필요함을 묵상합니다. 그 겸손이 건강한 나를 만들고, 따뜻한 가정과 공동체, 함께하는 사회를 이룰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콜로 3,12)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장

  • 링크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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