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시는길
  • 후원안내
  • 문의하기
노동이슈

판단

  • home
  • 노동이슈
  • 판단

  • [사회정의 문헌] 만남의 문화
    • 등록일 2022-09-02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15
  •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만남의 문화

       때로는 경제 분야처럼 기술적이고 어려운 분야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이 진리와 사랑 안에 머무는 한 “세상 끝 날까지”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당신 벗들과 날마다 만나십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그 벗들에게 형제들과 만나라고 초대하십니다. 형제들이 심지어 때로는 원수로 나타나고 때로는 두려움을 자아내는 겉모습에 가려져 있더라도 그들을 만나라고 당부하십니다. ‘버리는 문화’(cultura dello scarto)와 정반대인 ‘만남의 문화’(cultura dell’incontro)는 인류 가족이 나아가야 하는 유일한 방도입니다. 이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미래를 바라보며 초월의 지평 안에서 살아가는 문화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순전히 이러한 ‘만남의 문화’를 위하여 일해야 합니다. 그저 보는 것만이 아니라 눈여겨보고, 그저 듣는 것만이 아니라 귀담아들으며, 사람들을 그저 스쳐 가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멈추어 서야 합니다. “불쌍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연민으로 기꺼이 그들을 보듬어야 하는 것입니다. 형제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를 어루만지고 그에게 “울지 마십시오.” 하고 말하며 생기를 북돋우는 작은 성의를 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상황을 바꾸려면 다수로 모이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흔히 군중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권세가들에게 수동적으로 끌려 다닙니다. 상황을 바꾸려고 세력을 키울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의 도시나 지역, 온 인류의 생활을 바꾸려고 다수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간을 맞추고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하려면 소금과 누룩이 변질되지 않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참그리스도인, 선의의 사람들, 의인들이 그러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선의의 사람들을 북돋워 주는 ‘행동 원칙’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소금은 단지 양을 늘린다고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소금은 빵을 먹을 수 없게 만듭니다. 소금은 그 영혼이라고 할 수 있는 제 성질을 보존할 때 제맛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개인, 당파, 운동, 민족, 심지어 교회조차도 수를 불려서 자신과 세상을 지키려는 생각으로 권력 구조를 만들고 자리를 차지하느라,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짬을 낼 틈도 없습니다. 다만 소금과 누룩이 되는 것만으로 우리의 경제와 정치를 구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소금은 제맛을 잃고 누룩은 효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인간적인 경제의 바탕이 되는 일치와 나눔과 친교의 행동 원칙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난 시절 농부의 표상이 유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냉장고가 없던 때에는, 빵의 누룩 씨앗을 보존하려고 누룩 반죽을 이웃집에 약간 나누어 주고, 새로운 빵을 구워야 할 때 그것을 맡겨 놓았던 이웃에게서, 또는 또 다른 반죽을 얻었던 다른 이에게서 누룩 반죽을 거저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상호성입니다. 친교는 재화를 나누는 것만이 아니라 그 재화를 늘리는 것이기도 하며, 새로운 빵과 새로운 재화 또는 ‘새로운 선’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복음의 ‘살아 있는 원칙’인 사랑은 자신을 내어 줄 때에만 끊임없이 풍성한 열매를 맺고 생명을 낳습니다. 상상이 아니라 직접 사랑을 할 때에만 사랑이 활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신경 쓴다면 사랑은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경우에, 복음도 타락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주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만약 자신을 내어 주는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돈은 구원이 아니라 단죄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경제, 가난한 이들.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존경과 겸손의 형제애와 삶의 희망입니다. 돈은 그 다음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사회 정의 – 돈과 권력 p175-178

    미켈레 찬추키 편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링크
    http://reurl.kr/2CC11A748ZJ
  •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