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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사목 자료]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9
    • 등록일 2021-05-28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60
  •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선성에 관하여

    VI
    이는 적어도 적지 않은 차원에서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 원리를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을 가능성을 설명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까지 개괄된 개념 내에서 이 원리가 지닌 한계들을 지적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가능하다면 그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그 원리 자체를 확장할 수 있기 위해서다. 그 측면들은 다음과 같다.

    회칙 「노동하는 인간」의 이해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특정 형태의 노동이 지닌 주된 역할에 집중했다. 그것은 의존적인 노동(고용된 노동, dependent work), 고용 임금 노동(dependent wage labour)으로서 그것은 최전선에 배치되어 있다. 물론 이 영역에도 독립적 자기-고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교황 역시 이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고와 정신은 고용 임금 노동과 결합하고 있으며, 그가 매우 특별하게 자본에 대한 우위성을 단언하는 것은 그 고용 임금 노동을 위한 것이다. 오늘날 노동은 예를 들어 더 많이 지식과 자본에 밀접하게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지적 노동은 그 고유의 전망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노동 우위성’의 원리에 아무런 손상을 입히지 않고도, 노동을 좁은 개념의 덫에 걸리게 하는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회의에서 회칙 「노동하는 인간」 자체는 매우 복합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1부, 2부와 5부에서 노동의 개념과 3부와 4부에서 노동의 개념을 참조하라)

    이제 노동과 자본 사이의 이원론적 특성화가 불충분하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불가피하게 대립하는 두 요소의 이해관계를 표현한다는 의미에서 생산의 이 두 요소가 구성적이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것은 충돌하는 이 이해관계 사이의 균형, 양측에 수용될 수 있는 그런 균형을 이루는 데 달려 있다. 기업이 지닌 이 이분법적 개념은, 그 형태를 달리하지만, 자유주의 진영에서도 마르크스 진영에서도 모두 발견된다. 기업가 정신이 마르크스주의에서뿐만 아니라, 상당히 오랜 기간, 가톨릭 사회 교리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은 반복 언급되었다. 최소한 그런 지향의 몇몇 경향들이 언제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최근 실제로 실질적인 향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는 구별해야겠지만, 나는 경영의 기능에 있어 이 기업가 정신의 수행이 충분하게 강조되지 않았다고 믿는다. 도식적으로, 자본은 언제나 ‘게으르고’ 혹은 ‘무익한’ 자본으로 묘사된다. 자본과 노동은 불가결하게 서로 의존적이지만, 이 두 기본적 혹은 구체적 요소들은 서로를 향한 길을, 그리고 그것들이 함께 수행할 무엇인가를 향한 길을 스스로 찾지 않는다. 그것들을 함께 모을 누군가가 필요하다. 노동과 자본이라는 그 두 구체적 요소들이 불러일으킨 이해관계의 이분법을 ‘중립화할“ 사람이 바로 기업가다. 이해관계는 불가피하게 분산되고 실제로 중요한 측면에서 갈등을 유발하는데, 기업가는 상호 과업(a mutual task)을 그래서 포괄하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동과 자본을 조정하고 통합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 이 자리에서는 자세하게 다룰 수 없지만 - ‘함께 결정함(co-determination)’ 이란 전체 현안을 위한 출발점이 된다.

    노동의 자본에 대한 ‘우위성’ 혹은 ‘우선성’이란 개념은 논쟁적인 해석을 유발하는데, 물론 그것은 그 구절의 개방성과 관련되어 있다. 만일 그 구절에서 대립을 끌어내는 식으로 노동과 자본 사이의 구별을 고집한다면, 그리고 그 대립내에 계급 투쟁을 위치시킨다면 곧바로 이상적인 관념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면 ‘자본이 노동을 조직한다.’라는 원리는 ‘노동이 요구되는 자본을 조직한다.’라는 요구와 맞서게 된다. 생산 수단이 그 소유자들로부터 임대 또는 대여된다는 점에서 가능할 수 있다. 만일 이런 아이디어가 그 자체로 현재까지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선언한다면 누구에게도 불의가 행해진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오해는 종종 단순한 언어학적 용어에서 발생한다. 무엇보다도 노동하는 개인의 존엄으로 대변되는 ‘노동’은 실질적으로 절대적인 우선성으로 인식되어, 근본적으로 자본을 노동에 종속시킨다. 이런 식으로 자본은 ‘오로지’ 하나의 도구가 된다. 그렇게 보이면, 단순하게 하나를 다른 하나와 부당하게 대립시키는 것을 회피하려 요구된 ‘동등(동격, and)’은 마침내 ‘이상’으로부터 일탈로 나타난다. 나는 이것이 자본에 대한 일종의 근본적 저평가라고 여기는데, 그 자본은 특히 오늘날 생산 조건에서 경제적 과정들을 맨 처음 시작하기 위해 불가결하다. 더구나 그 모든 경제적 과정들은 이미 매우 높은 정도의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결과적으로, 예를 들어 수익성 문제와 생산의 재정적 유용성 계산과 관련하여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종종 ‘자본 위의(over) 노동’ 원리의 해석은 물질적 골격 조건들 그 자체를 과소평가하는 영지주의나 이상주의라는 숨은 형태를 구체화한다. 인격주의(personalism)의 발견이 분명히 사회윤리 및 교회의 사회 교리를 위해 이용되고는 있지만, 그 인격주의를 인위적으로 과장하는 것과 인간의 주체성을 실질적으로 유일한 요소로 축소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 것은 기업가의 역할은 말할 것 없고, 자연과 일반적 물질 조건과 그럼으로써 자본의 근본적 중요성마저 과소평가하는 잘못된 인간론이 될 것이다. 만일 이런 위험들이 충분하게 인식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과소평가된다면, ‘자본 위의 노동’ 원리는 양면의 상황에 빠질 것이다. 노동의 인격적 개념이 경제적 문맹이 되어서는 안 되면, 때로는 회칙 「노동하는 인간」을 갖고 시도된 것처럼, 편파적이거나 심지어 이념적으로 도구화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의 인간적 의미나 노동만을 과대평가하는 것 역시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런 성찰을 잠정적으로 끝내고 싶다. ‘자본 위의 노동’ 원리는 분명히 고정된 차원을 구성하지 않는다. 그 원리는 그 기원과 그 기능의 전망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 원리는 틀림없이 –가톨릭 사회 교리의 다른 많은 선한 원리처럼 –개방된 원리가 될 것이다. 그 원리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기준이라는 기능을 가정할 것이다. 실제로, 이 원리에 대한 더 깊은 숙고가 있을 때, 세계화 현안의 전망 내에서, 특히 제3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점에서, 그 기준의 적용은 전적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많은 문헌처럼, 1986년 3월 22일 신앙교리성(the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이 발표한 그리스도인 자유와 해방에 관한 훈령(the Instruction on Christian freedom and liberation)은 회칙 「노동하는 인간」에서 밝힌 이 기본적 사상을 취하고 있다. 교황 자신은 다음과 같이 밝힘으로써 언제나 그 기본적인 사상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성은 고용주들에게 이윤의 증대에 앞서 노동자들의 복리를 고려하라는 정의의 의무를 지운다. 고용주들은 자본을 비생산적이지 않게 할 도덕적 의무와 투자할 때 공동선을 먼저 생각할 도덕적 의무를 갖는다. 이 도덕적 의무는 일자리를 공고하게 하려는 우선적 노력이나 실제로 유용한 재화의 생산에 있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우선적 노력을 요구한다.”

    이것은 특히 인간 발전과 관련된 문제들을 예상하여 적용된다. 따라서 회칙 「민족들의 발전」을 발표하고 20년이 지나 1987년 12월30일 발표된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사회적 관심」은 「노동하는 인간」에서 밝힌 진술들을 다시 밝히고 있으며, 이 진술들을 매우 분명하게 발전에 결부시킨다. 교황은 자신이 회칙「노동하는 인간」에서 “발전의 주역은 언제나 사람이라는 사상을 강조하기 위해서 노동에 대한 인간의 소명을 언급했다.”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노동은 그 인격적 성격으로 인하여, 인간 발전에 절대 필요하다. 따라서 이 입장은 교회의 전체 사회 교리와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회 교리의 맥락으로 흘러 들어간다.
  • 링크
    http://www.nodongsam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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