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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사목 자료]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7
    • 등록일 2021-05-14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54
    •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선성에 관하여


    III
    이러한 이유로 이 원리가 교회의 사회 교리의 나머지 영역에서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표현되었는가를 적어도 간단하게라도 물어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때 내용과 언어에 있어 발전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더 나아가 교황의 선언들은, 그 내적인 지적에 있어, 한편으로는 종속적인 임금노동자들을 만난 그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신의 철학적, 신학적 인간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교회의 사회 교리 역사에 대해 간단히 살펴볼 수 있다. 당연히 회칙 「노동하는 인간」의 진술과 비교하면, 이러한 참조들은 아직 다듬어질 필요가 있는 초기의 사고들로 간주 될 수밖에 없더라도, 그 사고들은 이미 기초적 방향을 반영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교황 레오 13세가 그의 1891년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채택한 다음의 정식을 염두에 둘 수 있다. “각 계급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노동 없이는 자본이 할 수 없고, 자본 없이는 노동도 할 수 없다.”(19항) 이 정식은 다음의 설명과 함께 1931년 회칙 「사십주년」에서 반복된다. “그러므로 자본과 노동의 협력으로 얻어진 것을 어느 한편에만 귀속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그릇된 것이며, 또한 어느 한편이 다른 편의 노력을 무시하고 모든 이익을 독점한다는 것은 정의에 크게 어긋난다.”(53항)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차별화된 인식이 궁극적으로 진화되어, 양 생산 요소가 상호작용의 관계에 있다는 인식이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교황 요한 23세는 1961년 「어머니요 스승」에서 노동의 본질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힌다. “노동이란 바로 인격의 직접적인 표출이므로 그 본성상 도구적인 것에 불과한 외적 재화 소유보다 언제나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노동에 관한 이런 시각은 확실히 우리 문명에 있어 진보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조다.”(107항) 불과 몇 해가 지나지 않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은 이런 초기의 사고들에 영감을 받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재화를 생산하고 교환하고 경제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간 노동은 경제 생활의 다른 요소들보다 우월하다. 다른 요소들은 오로지 도구라는 본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 노동은 자가 노동이든 다른 사람에게 고용된 노동이든 직접 인격에서 나오는 것이며, 마치 자기 도장을 찍듯이 자연의 사물에 자기 모습을 새기며, 자기 의지로 사물을 다스린다.”(67항) 매우 근본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것은 다음과 같이 주목할 만하다. “그러므로, 사회 질서와 그 발전은 언제나 인간의 행복을 지향하여야 한다. 사물의 안배는 인간 질서에 종속되어야 하며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26항)

    이런 진술들은 요한 바오로 2세가 「노동하는 인간」에서 인간(인간의 인격)이 어떤 생산 수단보다도 우위를 누린다고 밝힐 때 그가 그의 전임 교황들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노동과 자본이라는 개념에서 교황은 자기 노동을 통해 결합 된 인간 존재들을 보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그가 주목한 주장으로 전체 개념을 상당히 명확히 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황은 무엇보다도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월성에 대한 추론을 정교하게 하고 심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교황은 특히 강화된 철학적-신학적 인격주의와 부분적으로는 현상학적 분석으로 자신의 진술을 뒷받침했는데, 이 둘은 동시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어떤 종류의 일반적 사회주의에서 이 원리의 뿌리를 찾는 것은 불필요하다. 그 자체로 ‘자본과 노동’이라는 일반적인 표어와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선 원리를 신중하게 구별해야 한다. 더 나아가 「노동하는 인간」에서 노동주의(labourism)의 강력한 영향력을 찾는다는 것은 정말 쓸데없는 일이다. 먼저 이 용어 자체가 너무나 모호하기 때문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훨씬 더 결정적인 것은 이 용어는 적어도 근대의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원, 즉 자본을 포함하여 모든 것에 대한 노동의 우선을 그 근본적인 기원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W. 베버는 노동의 이 우선성을 두고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이 우선성은 사실상 논쟁의 여지가 없고, 근대의 시작부터 수많은 학자와 학파의 공동 재산이다. 그것은 성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1517)에서,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1632-1704)의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그것은 정치경제학의 중농주의 학파(18세기)와 정치경제학의 주창자 D. 리카르도(1772-1823)의 작품에서도 발견되는데, 리카르도의 사상을 바탕으로 K. 마르크스는 그의 ‘노동 가치론’과 ‘착취론’을 구축했다. 이 우선성은 프랑스 유명한 사회 이론가 Claude Henri de St. Simon(1760-1825)과 다른 이들의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이 자리에서 1891년 최초의 사회 회칙「새로운 사태」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는데, 회칙은 “국가가 부유해지는 것은 진실로 노동하는 사람들의 노동에 의해서만 이라는 사실은 아주 확실하다.”(25항) 분명히 이는 늦어도 르네상스 시대 이후 근대인의 자기 이해를 광범위하게 나타낸다.

  • 링크
    http://www.nodongsam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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