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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milia 2019-07] 2019월 5월 3일 부활 3주간 주일 강론
    • 등록일 2019-05-03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83
  • 2019년 5월 3일 부활 3주간 주일 강론

     "용서,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는 길"

      

    이주형 세례자요한.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 사도행전. 5,27ㄴ-32.40ㄴ-41

    ▥ 요한 묵시록. 5,11-14

    ✠ 요한복음. 21,1-19

     

    † 찬미예수님!

     

    부활 3주간 주일 강론입니다.

    한 주간도 고생 많으셨고요, 이번 한 주간도 하느님 사랑 속에서 머무시길 빕니다.

    오늘은 특별히 생명주일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존중받고 보호받을 수 있기를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다음의 글은 용서에 관해 묵상할 수 있는 교황님의 말씀인데

    2018년 9월 아일랜드 세계 가정 대회에서 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제가 직접 가지는 못했기에 일부 내용을 간접 인용합니다.1)

     

    우리는 많은 경우 평화를 이루길 원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그 대신에, 한 번 어루만져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어 교황은 가정의 세 가지 키워드,

    곧 “미안합니다.”, “부탁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영어로 반복하도록 초대했다.

    아울러 교황은 평화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실천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다음날 “냉전”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있는 그대로의 용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완벽한 가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용서하는 습관이 없다면 가정은 병을 키우며 점차 무너집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무엇인가 주는 걸 의미합니다.”

     

    교황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 저는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반성과 참회가 마음에 일어 오릅니다.

    "미안합니다.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음에도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대화 자체도 별로 없을 때도 많습니다.

    대화를 한다 해도 내 얘기만 다음 바쁩니다.

    이 얼마나 메마르고 무의미한 시간들입니까?

    저도 강론 때 신자들에게도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

    감사와 미안함의 표현의 중요성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정작 제가 실천을 못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용서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하게 남을 평가하고 비판하고 판단하고 단죄하는 일들에 젖어

    저는 용서하고 이해하려는 생각이나 시도조차도 못하고 삽니다.

    내가 나중에 하늘나라에 갈 수 있을까? 스스로 종종 고민하지만

    정작 하늘나라에 가려는 노력은 못하고 삽니다.

    정말 이제부터라도

    용서는 못하더라도, 완벽히 이해는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3번이나 “너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그 참혹했던 수난의 밤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는

    스승님에게 무척이나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스승의 사랑을 체험했고 이제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 그 사랑의 힘을 믿기에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랑의 증인입니다.(사도 5,31-32)

    그런 베드로 사도의 모습은 생생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늘 체험하지만 늘 나약한 마음으로 죄 속에서 살기에

    우리는 늘 하느님께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자비로 만물이 회복되고 용서되었듯이(콜로 1,20)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이미 입었습니다.(에페 1,7)

    우리는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신 그분의 공로(公路)로 살아갑니다.(묵시록 5,12)

     

    그러기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정작 우리가 몰랐지만 우리는 그 덕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다른 이름은 바로 용서입니다.

    그분의 끝없는 용서를 통해 삶을 살아갑니다.(로마 4,7)

    그리고 정녕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는 길은 바로 용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용서하고 나누고 베풀며 살아야합니다.(에페 4,32)

    그것이 가장 귀한 길이고

    그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며

    그 길에 참 생명이 있음을 깨달아야합니다.(요한 14,6)

    오늘 복음의 말씀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나를 따라라.”

    (요한 20,18-19)

     

     

    1)(교황 프란치스코) 세계 가정의 축제…“완벽한 가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용서가 필요합니다.” 2018.8.25| 가톨릭 신앙 & 뉴스글 인터넷 까페에서 인용.

    http://cafe.daum.net/aloysiusresearch/Tq70/1484?q=%EA%B5%90%ED%99%A9%20%ED%94%84%EB%9E%80%EC%B9%98%EC%8A%A4%EC%BD%94%20%EA%B0%80%EC%A0%95%20%EC%9E%90%EB%8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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