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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레 신문] 을의 자존감
    • 등록일 2021-07-19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92


  • 청소노동자 ㅇ씨가 근무하던 925동 여학생 기숙사 앞에 붙은 추모 글.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이승준
    사건팀장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가졌던 직업은 청소노동자였다. 집에서 버스로 20여분 거리에 떨어진 한 은행 지점을 주5일, 몇년을 쓸고 닦았다. 새벽에 일어나 남편의 아침을 차리고 출근을 하고, 오후에 퇴근해 남편의 저녁을 준비했다. 매일매일 집을 쓸고 닦던 어머니가 청소일을 한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더 말리지는 못했다. 일을 하고 싶은 50대 중반의 여성이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으니까. “힘들지 않냐”, “누가 함부로 하지 않냐” 물으면 어머니는 정색했다. “(은행 직원들이) 다들 잘해줘.” “에어컨 나오는 데서 일하는데 힘들긴.” 나는 어머니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더 캐묻지 않았다. ‘책잡히면 안 된다’고 매일매일 은행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완벽하게 청소를 마치려던 어머니의 강박적 성실함도, 가끔 허리에 파스를 붙이고 끙끙대는 모습을 보며 속상했지만. 기자가 돼서 ‘청소노동자 어머니들’을 여러 차례 만난 뒤에 이들에게 비슷한 정서가 있다는 걸 느꼈다. ‘이 나이에 내가 떳떳이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책잡히지 않으려 내가 맡은 일은 대충대충 안 한다.’ 이는 ‘중년+여성+청소’ 노동자를 향해 낮춰 보는 주변의 시선에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이들의 ‘보루’ 같았다.

    지난달 서울대 기숙사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ㅇ(59)씨에 대한 동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전의 ㅇ씨에게도 이러한 정서를 엿볼 수 있다. “ㅇ씨가 특히 자존심이 강해서 지적받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게다가 어느 동으로 (기숙사 안전관리팀장이) 검열을 나올지 몰라서 ㅇ씨가 열심히 1~4층의 도서실, 샤워장, 화장실, 세탁실, 복도부터 창틀, 창문까지 모두 대청소를 했어요.” “고인은 저에게 회의 참석 시 나뭇잎 무늬 옷을 입어 팀장님께 지적을 받았다고 토로했고, 많이 화가 난 듯했습니다.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데, 돈 모아서 정장 한 벌이라도 사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ㅇ씨의 동료들과 노조가 지난 7일 기숙사 안전관리팀장이 영어·한자 시험을 치르게 하고 반성문 쓰기를 강요하고, ‘드레스코드를 지시’했다고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자 나온 학교 관계자들의 반응은 학교의 공식입장이 아니라 해도 당혹스럽기만 하다. “고인은 우수하고 성실한 분 중 한 분이셨고, 문제의 그 ‘필기시험’에서도 1등을 했고, ‘드레스코드’ 조치에 대해서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는 학교 관계자의 글에는 ‘을의 마음’에 대한 고려가 보이지 않는다. 자연스레 “노조는 안타까운 사건을 악용해 다른 청소노동자와 유족을 부추겨 사실관계를 왜곡하면서 일방적인 주장을 펼친다”는 시각으로 연결된다. ‘갑’에게 ‘책잡히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노동자’라는 정체성은 부정된다.

    죽음의 배경과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신중히 접근해야 하는 일이고, 학교 관계자들의 말처럼 “엉뚱한 사람을 가해자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과로나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꼽히는 급성심근경색으로 노동자가 쓰러지고 홀로 휴게실에서 숨졌다. 마스크를 쓰고 엘리베이터 없는 4층 건물을 청소하고, 100리터 쓰레기봉투를 치우는 일을 해야 했다. 배달 음식 쓰레기의 증가로 업무량도 늘어난 정황이 보인다. 동료들은 새로운 중간관리자가 온 뒤에 “일이 힘들어졌다”는 증언을 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건 ㅇ씨의 말이나 행동에 대한 ‘해석 전쟁’도, 노조든 중간관리자든 누군가를 ‘악마화’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코로나19 시대 필수 노동자로 꼽히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동 강도가 적절한 것인지, 작업 환경에는 문제가 없는지 시험이나 반성문, 드레스코드가 청소노동자들의 업무와 상관관계가 있는지, 학교의 노무관리 시스템에는 문제가 없는지 등 따져봐야 할 지점이 수두룩하다.
    서울대는 학교 안 인권센터의 공정한 조사를 공언했지만, 유족과 노조는 이를 거부하고 공동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ㅇ씨 남편은 말한다 “시험을 쳐야 하는 건 학교”라고.
    gamja@hani.co.kr

  • 링크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04035.html#csidxcc0e64b6db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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