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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레 21] 노조인 듯 노조 아닌 노조 같은
    • 등록일 2019-03-19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152
  • 한겨레 21 제1253호  

     

    노조인 듯 노조 아닌 노조 같은

     

    플랫폼 노동자 아우른 ‘라이더 유니온’, 공제회 성격의 봉제노조,

    건강권 위한 간호사들의 모임 ‘행간’… 다른 처지, 다른 이름의 노조들

     

             

    김진수 기자.

          

    111년 만의 폭염으로 날마다 ‘최고’ ‘최악’ 기록을 갈아치우던 2018년 여름, 한낮 온도가 가장 높은 오후 2시에 1인시위를 하던 사람이 있었다. 40도에 육박한 폭염 한가운데에 선 이는 맥도날드 라이더(배달원) 박정훈(35)씨. 박씨는 당시 “폭염으로 라이더들의 노동강도가 늘었다”며 “폭염수당 100원을 지급하라”고 맥도날드 본사에 요구했다. 지난여름 온열질환 사망자는 48명으로, 질병관리본부가 감시 체계를 운영한 2011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였다.

     

     

    산업재해 인정에 도움

     

    박씨가 들고나온 ‘폭염수당 100원’은 실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날씨가 노동 보상·보호 체계에서 외면당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폭염수당 100원’ 지급 요구는 퀵, 배달 대행업체, 업체 소속 배달원 등 ‘바이크’를 타고 배달하는 ‘바이크 이용 배달원’을 아우른 노동조합(노조) 출범의 서막이었다. 민주노총 산하에 퀵·대리기사 노조가 있지만 전체 라이더가 대상인 노조는 처음이다.

     

    “‘폭염수당 100원을 지급하라’는 1인시위를 하고 있는데, 한 남자 초등학생이 다가왔다. 친구들이 부르는데도 ‘잠깐만’이라고 하더니, 내 앞에서 한참 동안 가방을 뒤적인 뒤 100원을 찾아 내게 주더라. 그래서 ‘그 100원이 아니야’라고 했다.” (웃음)

     

    약 10일간 이어진 1인시위 뒤 박씨는 라이더들과 ‘라이더 유니온 준비모임’(라이더 유니온)을 꾸려 카카오톡에 오픈채팅방을 만들었다. 현재 조합원은 약 40명. 100명을 채워 5월1일 노동절(근로자의 날)에 노조를 출범하는 게 목표다. 박씨는 라이더 유니온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라이더’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단일 사업장에 설립하는 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노조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라이더들은 주단위로 근무표가 나오고, 배달대행 기사 대부분은 주6일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 박 위원장이 ‘온라인’을 이용해서 노조 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다. 라이더 유니온에서 영상을 제작하는 김준기(23·가명)씨도 오픈채팅방에서 알게 됐다. 배달대행업체에서 라이더로 일하다 다친 김씨는 라이더 유니온 도움으로 산재 승인을 받았다. 김씨는 “혼자 싸우면 안 되는 일도 함께 싸우면 해결된다. 만약 라이더 유니온의 도움이 없었다면 산재 승인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더 유니온은 가입 대상부터 기존 노조와 다르다. 직종별, 또는 기업별 노조 대신 ‘범라이더’를 아울렀다. 그동안 노조를 만들기 어려웠던 플랫폼 노동자와 이미 노조가 있는 맥도날드 등 프랜차이즈 배달노동자들을 합쳤다. 라이더 유니온은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같은 상급 단체에 가입하지 않는 독립 노조를 표방한다. 기존의 노조 운동 방식으로는 새롭게 등장한 플랫폼 노동시장을 다룰 수 없다는 게 라이더 유니온의 생각이다. 박 위원장은 “플랫폼 노동자들한테 정규직화 투쟁을 하자고 하면 학을 뗄 거다. 정규직화가 아닌 적게 일하고 충분한 소득을 가져가자는 주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정년 연장’ 등을 위해 싸우는 민주노총과 결이 다를 것 같아 독립 노조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독립 노조로서 활동하는 데 힘이 부칠 땐 민주노총에 가입할 수도 있다”고 여지를 뒀다. 고용노동부의 2017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을 보면 라이더 유니온처럼 상급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노동조합(미가맹)이 21.4%(44만6천 명)를 차지했다. 2016년보다 약 4천 명이 늘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플랫폼 노동자도 프랜차이즈 노동자도

     

    독립 노조의 장점은 그야말로 ‘독립’이다. 박 위원장은 “폭염수당 지급 요구도 어떻게 보면 ‘아무 말’이다. 누구도 한 적이 없는 이야기니까. 만약 우리가 큰 조직에 있었으면 회의부터 거쳤을 거다. 라이더 유니온은 눈치 볼 상급 단체도 없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인 셈”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다양한 근로 형태의 노동자들이 모였기 때문에 한 가지 통일된 주장을 내기 힘들다는 어려움은 있다. 맥도날드 같은 프랜차이즈에 직접고용된 노동자들은 교섭 대상이 분명하다. 하지만 배달대행업체 라이더들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로, 개인사업자로 간주된다. 때문에 단체교섭권 같은 노동3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직접고용된 라이더들과 배달대행업체 라이더들의 요구사항이 다를 수 있는 셈이다. 박 위원장은 “오토바이 보험료 인하와 미세먼지·한파·폭염 속 라이더 보호책, 최소배달료로 건당 4천원 등을 공동의 목표로 삼아 먼저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추후 프랜차이즈 라이더와 배달대행업체 라이더를 나눠 지부를 만들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전태일 열사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지 2주 뒤인 1970년 11월27일.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전국연합노동조합 청계피복지부(청계피복노조)를 결성했다. 그로부터 꼭 48년이 지난 2018년 11월27일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서울봉제인지회’(이하 봉제노조)가 다시 들어섰다. 48년이라는 세월은 지났지만 하루 12시간 이상인 장시간 노동, 터무니없이 적은 공임비 등 여전히 열악한 봉제 노동자들의 현실을 바꾸는 게 목표다.

     

    서울시엔 1만5200여 개 봉제업체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봉제업체 종사자는 9만3천여 명으로, 전국의 약 65%가 서울에 있다(한국의류산업협회, 2017년). 봉제노조는 사업장의 약 90%가 10인 미만 영세 사업장으로 보고 있다. 노동 형태는 비슷하지만, 대체로 동대문시장 등에서 일감을 떼온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봉제 노동자들은 ‘탠디’ 같은 명확한 원청이 있는 제화 노동자들과 달라 노조를 만들기 쉽지 않았다. 또 사업주 대부분이 실제 봉제노동을 하는데다 1~2인 사업장도 많아 개별 사업장을 대상으로 교섭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봉제노조는 개별 사업장을 상대로 교섭하는 대신 노조, 사업주협회, 서울시가 만난 노·사·정 교섭기구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 시내 제조업 중 가장 많은 노동자가 일하는 봉제업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서울시가 나서달라는 요구다. 강도수 전국민주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 미조직비정규사업실장은 “공공부문에서 의류를 살 때 국내 생산을 증빙하는 자료를 첨부하도록 하면, 동남아 등으로 갔던 일감이 내수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위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듯 3자 기구에서 공임비 기준을 정하면 시장에서도 이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기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서울봉제인지회 지회장이 성북구 보문동 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왼쪽).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 재 인정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3월6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장수경 기자.

     

     

    사업주도 가입하는 봉제노조

     

    봉제노조의 특이점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업주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정기 봉제노조 위원장은 “영세 사업장 사업주는 노동자성이 강하다. 때문에 10인 미만 영세 사업주에게까지 노조 가입의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아내와 단둘이 일하는 이 위원장도 밤 11시까지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며 짬짬이 노조 활동을 한다. 개별 사업장에 노조 전임자가 있는 것과 달리 노조 전임자를 둘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과 집행부는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인 아침 7시께나 토요일 오후 공장 문을 일찍 닫고 봉제업체가 밀집된 장위동, 신당동, 창신동 등으로 봉제 노동자들을 만나러 간다. 노동자 대부분이 60대 이상인데다, 노조 설립을 알리려면 ‘찾아가는 노조’가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봉제노조는 5월1일 공제회 출범이 목표다. 4대 보험 미가입률이 83%에 이르는(서울노동권익센터, 2015년)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장시간 작은 의자에 앉아 일하면서 허리 통증(63%), 어깨·목 통증(74%)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위해 녹색병원과 업무협약을 맺어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받게 하거나, 상조·긴급 소액 대출 같은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봉제노조가 공제회 같은 노조를 꿈꾼다면, 라이더 유니온이 꿈꾸는 노조는 배달 노동 시민의 정당이다. 박 위원장은 “어느 사업장이든, 어느 지역이든 상관없이 정당이 좋으면 가입하듯이, 그런 노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재무설계·법률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노조 설립 이후엔 장갑 등 물품의 공동구매 같은 공제회 성격도 갖게 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행간)는 노조는 아니지만 사실상 간호노조 몫을 하고 있다. 1987년 참간호를 실현하고, 간호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 산하에 설립된 간호사위원회 준비위원회(간호사위원회)가 뿌리다. 지난해 2월 서울 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박선욱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간호사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일부가 뭉쳐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 현재 간호사, 예비 간호사, 간호대 학생 등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박 간호사를 죽음의 원인이 신입 간호사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우면서도 교육은 방치하는 병원 시스템이라는 입장이다. 이는 모든 병원을 관통하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보고, 병원의 지금 간호 시스템은 환자에게도 위험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행간 회원들은 간호사들의 권익과 국민의 건강권을 실현하기 위해 모인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활동을 공유하고, 소식지를 낸다. 행간 모임엔 전주, 광주, 속초, 포항 등 전국에서 회원이 온다.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 중소 병원을 잘 아는 사람, 대학병원 상황을 아는 사람 등 자신이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일을 나눠 맡아 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와 함께 간호사들에게 노동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대구와 포항 방문해 근로계약서의 독소 조항을 알려주고, 직장 내 괴롭힘인 태움과 직장 내 성희롱 피해가 많은 간호사에게 증거 자료를 모으는 방법 등 현실적 조언을 한다.

     

     

     

    ‘노조 포비아’를 넘어서

     

    라이더 유니온의 박 위원장은 ‘노조’라는 단어 대신 ‘유니온’이라고 쓴 이유를 ‘노조 포비아’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행업체 사장님 일부는 ‘노조는 돈 뜯어먹는 단체’라며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노조의 등장은 반갑지만 기존 노조 바깥의 새로운 노조 등장에 대해 내부에서도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이 많다”며 “노조 혐오는 기본적으로 노동권이 시민과 가까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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