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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노동뉴스] 메르스 사태로 되돌아 본 노동자 안전보건
    • 등록일 2015-07-02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2698
  • 메르스 사태로 되돌아 본 노동자 안전보건 - 감염병 무방비에 놓인 산업현장, 관련 법·제도 없어 '끙끙'

    수백명 모여 일하는 공간, 진원지 될까 우려 … 감염노동자 보호대책도 미흡

    #1. 이달 3일 한 방송 보도프로그램에는 매우 이질적인 동네 풍경이 화면에 담겨 눈길을 끌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망자가 처음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 동탄성심병원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신도시는 거리에 사람 하나 없을 정도로 휑했다. 주민들은 메르스에 노출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외출마저 삼갔다. 인근 약국에서는 마스크 하나 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불과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국내 유명 제조업체를 포함해 노동자 수천명이 일하는 산업단지가 있다. 점심시간, 공단 인근 식당에 가기 위해 수천명의 노동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마스크를 쓴 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2. 비슷한 시기 전국 체인망을 갖춘 한 문구·팬시 판매회사 노조는 조합원의 메르스 감염을 우려해 회사측에 마스크 지급과 착용을 건의했다. 하루에도 몇백명에 달하는 불특정 다수의 손님을 맞이하는 판매서비스 노동 특성상 메르스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측은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노조는 이를 강제할 수 없는지 전문가에게 문의했다. 이 상담을 진행했던 한 공인노무사는 “처지가 답답한데도, 이와 관련한 법령이나 제도가 없어 답해 줄 말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메르스가 우리나라를 강타하면서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실태가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병원 중심의 방역체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산업현장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혹여나 메르스가 지역감염으로 확산된다면 같은 공간에 수천·수백명이 모여 일하는 산업현장이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직원 메르스 확진 후 뒤늦게 예방조치 나선 기업들

     

    실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는 생산라인 지원업무를 담당했던 직원 A(46)씨가 이달 1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쌍용차는 부랴부랴 공장 전체를 소독했다. 직원들에게 메르스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마스크를 지급했다. A씨와 함께 일하던 직원 20명은 격리 조치됐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도 직원 B(31)씨가 이달 14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로 인해 B씨와 함께 일하던 동료 등 77명이 격리됐다.

     

    산업계는 그야말로 비상에 빠졌다. 두 사건이 발생한 후 일부 대기업들은 서둘러 메르스 예방 교육을 진행하고 직원들에게 마스크를 지급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달 5일에서야 메르스 예방·확산방지를 위한 기업 대응지침을 내놓았다. 메르스 증상을 보이는 직원에 대한 동향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적절한 격리조치가 이뤄지도록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이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과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가 유행할 때도 이와 비슷한 사태가 일어났다. 다행히 사스는 크게 유행하지 않았고 신종플루는 백신이 있어 치료가 가능했다. 메르스 역시 아직 지역 감염사례가 나오지 않아 대규모 생산공장 같은 산업현장이 확산의 진원지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주기적으로 새로운 전염·감염병이 발병하는 가운데 언제까지 사후 약방문 식 대책만 내놓을 것이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 산업현장의 안전보건지침을 총괄해 담고 있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산업안전보건규칙)을 살펴보면 의료법상 의료행위 종사자와 감염 고위험 작업군을 제외한 일반 사업장의 감염병 대책은 거의 없다.

     

    산업안전보건규칙은 감염병 예방계획 수립을 사업주의 의무사항으로 규정(제594조)하고 있지만 일반적 관리기준에 불과해 지키는 사업장이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더구나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역시 "동료와의 접촉을 제한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조치하라"는 규정(602조) 외에는 별다른 강제 사항이 없다.

     

    유성규 노동건강연대 편집위원장은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감염병이 유입될 경우 국가재난 사태로까지 치닫는 경우가 많지만 대책은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며 “10년에 한 번, 1만명 중 한 명이 감염병에 걸리더라도 피해가 커질 수 있는 만큼 상시적 대응책을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실장은 “메르스 사태 발생 후 노동부가 뒤늦게 기업 대응지침을 발표했으나 권고에 그쳤고 정부 당국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었다”며 “감염병 확산을 예방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법·제도를 정비·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 열악할수록 보호대책도 미흡

     

    감염병 확진환자나 접촉자로 분류돼 격리조치를 당한 노동자에 대한 보호장치도 없다는 게 메르스 사태가 일깨워 준 우리나라 안전보건 실태의 한 단면이다.

     

    메르스 확진환자는 최소 2주간 치료를 받거나 격리돼야 한다. 일용직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비정규직처럼 고용이 불안한 이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노심초사했다.

     

    이런 문제가 지적되자 정부는 확진·격리자를 대상으로 4인 가구 기준 월 110만원의 긴급 생계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이달 10일 밝혔다. 그러나 이런 사태가 터졌을 때 감염자에 대한 생계 책임을 누가 져야 할지에 대한 기준은 없는 상태다.

     

    유성규 편집위원장은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해 격리당한 것임에도 정부 도움이 없다면 생계 책임은 온전히 해당 노동자가 져야 하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며 “노동자와 기업·정부 간 책임 부담 기준을 명확하게 세워둘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고용상황·노동조건이 열악한 비정규직·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방역 대상·범위에서 쉽게 누락되고 있다는 사실도 메르스 사태를 통해 알려졌다. 실제 삼성서울병원 협력업체 소속 환자이송요원 두 명과 용역업체 소속 안전요원은 격리 대상에서 누락됐다가 메르스 확진 환자로 뒤늦게 판명됐다. 대전 대청병원에서는 파견 직원이, 서울아산병원에서는 청원경찰이 비슷한 일을 당했다. 서울시는 “비정규직 직원들이 격리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삼성서울병원 비정규직 2천944명 전원에 대한 메르스 증상 발발 여부를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정규직이라고 보호받는 것은 아니다. 취업규칙·단체협약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정규직이라도 감염병에 걸렸거나 의심자로 격리될 경우 연차를 사용하거나 무급으로 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심지어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서울 강서구의 한 지역시설공단은 관련 시설의 휴관을 결정하고도 직원들에게 연차 사용을 요구했다.

     

    노동계는 질병휴가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질병휴가제는 세계 140여개 국가에서 이미 도입한 제도”라며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서라도 유급휴가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4월 “사업주 선의에 기대지 말고 질병휴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메르스 사태가 터진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지만 이 법안은 아직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김봉석 | seok@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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