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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업 살인
    • 등록일 2021-06-15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360
  • 기업 살인


    얼마 전 둘째 아이가 제대했다. 공병대에서 복무한 둘째는 제대를 한 달 정도 앞두고 작업에 나갔다. 컨테이너를 크레인으로 운반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높이 들린 컨테이너가 그만 바로 앞에 떨어졌다. 깔림은 피했지만, 컨테이너의 무게로 떨어지는 순간 몸이 뒤로 날아갈 정도의 큰 충격이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노동 현장의 사고와 위험을 알고 있었지만 둘째의 이야기를 듣고 받은 충격은 정말이지 달랐다.

     

    태안화력발전소 석탄 이송 컨베이어에 끼어 사망한 김용균 씨는 사고 추정시간 4시간 후에나 발견되었고, 다시 4시간 방치된 뒤에야 태안의료원으로 이송되었다. 평택항 부두 청소작업을 하다 300킬로그램 컨테이너에 깔려 사망한 이선호 씨는 사고 후 10분이 지나서야 119에 사고 신고를 했고 현장에는 안전관리자는 물론 신호수도 없었다. 부산 경동건설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추락사고로 2019년 10월 사망한 정순규 씨는 25년 경력 베테랑 노동자였지만, 건설 현장 아파트 옹벽과 비계(가설발판) 사이의 벌어진 틈으로 추락했을 때 안전보건 책임자도, 추락 방호망도 없었다.

     

    한미 정상회담과 G7 회의 이후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 보인다. 시민들이 함께 노력해 쌓아 올린 우리나라의 위상을 애써 깎아내리고 싶진 않다. 선진 코로나 방역국, 바이든 대통령이 이야기한 ‘기생충’과 BTS 문화 선진국. 소위 소프트 파워 대한민국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 사망률 최상위권의 불명예국이다. 특히 건설산업 노동자 사고 사망자 수는 OECD 1위다.

     

    기업들의 산업재해가 반복되는 이유는 산업재해 사망 사건에 대한 법원의 형량을 보면 알 수 있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상해 사망 사건 형량 분석(2013-17년)을 보면 피고인 2932명 가운데 징역과 금고형을 받은 피고인은 불과 86명, 2.93퍼센트다. 3퍼센트가 채 안 된다. 절대다수는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친다. 그럼 벌금은 얼마일까? 벌금 액수는 개인 420만 원, 기업(법인) 480만 원 수준이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노동자가 사망하면 고용주에게 최대 징역 25년, 법인은 최대 60억 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영국은 기업의 안전조치 미흡으로 인한 사망사고에 대한 법 이름이 그 성격을 명확히 드러낸다. ‘기업 살인법’(The Corporate Manslaughter and Homicide Act)이다. 태안화력 김용균, 경동건설 정순규 노동자 모두 개인이, 가족이 사망사고의 진상을 입증해야 했다. 영국의 기업 살인법에서는 개인의 과실 입증을 요구하지 않음은 물론 양형기준은 최소 50만 파운드(한화 약 7억 4000만 원)에서 수백만 파운드까지 권고하고 있다. 이는 기업매출액의 2.5-10퍼센트 수준으로 위반 정도가 심하면 상한 없는 징벌적 벌금을 물린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법인, 기업에 원청, 하청 구분 없이 이 법이 적용된다.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앞에서 시위 중인 고 정순규 씨의 유가족. (사진 제공 = 정순규 씨 유가족)

     

     

    한국 기업들은 안전장치를 갖추고 신호수를 두고 노동자 안전교육을 할 필요가 없다. 왜? 목숨값 480만 원만 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산재 사망은 기업 살인이다. 산재 사망은 기업의 문제이고 기업 경영실패로 발생하는 기업 살인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전 지구적으로 움직이는 자본이 사람과 환경에 대한 중범죄의 원천이라 말하며 특히 기업 범죄는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말한다.(2019년 국제형법학회 총회 연설)

     

    코로나 방역 성공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 자랑스러울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밖’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에 주목하지 않는다. 일을 마친 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지 못했다.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 20,1-16)의 주인은 무엇보다 일꾼들의 생명을 우선으로 여긴다. 무관심 속에서 배제된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생명을 먼저 선택하고 이를 위해 자신의 이윤을 포기하는 실로 선한 주인이다. 노동자는 도구도 잉여 노동자도 아닌, 존중받고 보호해야 할 하느님의 자녀이자, 우리의 형제자매이기 때문이다.(2021년 노동절 담화)

     

    내일 부산 경동건설 추락 사망 고 정순규(미카엘) 씨의 원·하청업체의 현장 안전보건 책임자와 원·하청업체에 대한 형사 재판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지난 1년 8개월 동안 아들 정석채(비오) 씨와 유가족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회사의 서명 조작을 밝히는 등 진상규명에 애써 왔다. 내일 1심에서 원·하청업체의 책임을 물어, 노동자의 실수로 인한 산재 사망이 아닌 기업 살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해마다 2400명의 노동자가 기업 살인으로 사망한다. 일을 마친 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사회가 진짜 선진국 모습이다.


    맹주형(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JPIC) 담당

  • 링크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611
  • 첨부파일
    31611_51991_353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