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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노동뉴스] 고 정순규씨의 죽음, 응당 책임 묻는 재판 되길
    • 등록일 2021-06-15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342
  • 민변 노동위의 노변 政담

     

    고 정순규씨의 죽음, 응당 책임 묻는 재판 되길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


    고 정순규씨는 25년 넘게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베테랑 노동자였다. 다른 곳도 아닌 경동건설에서 ‘안전인’으로 선정돼 표창장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장에 안전장치가 제대로 갖춰 있지 않은 위험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2019년 10월, 그는 경동건설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추락사고로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떠났다.

     

    사고 당일, 고인은 점심식사를 마친 직후 옹벽 작업을 위해 2층 비계 위로 올랐고, 그 직후 추락한 채 발견됐다. 고인이 어떻게 추락하게 됐는지 직접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그와 함께 떨어져 있던 작업도구와 헬멧, 그가 비계 위로 올라가자마자 떨어진 정황으로 사고 경위를 추적할 수밖에 없었다. 옹벽에 박혀 있는 철심을 그라인더로 제거하기 위한 작업을 준비하던 중 옹벽과 비계 사이의 틈으로 떨어졌던 것으로 충분히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고인이 추락할 당시 옹벽과 비계 사이의 틈은 45센티미터 가량 됐지만, 그 사이에 안전망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에는 작업발판을 설치하고 추락을 방지할 수 있는 추락방호망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따른 조치는 없었다. 사고 직후 고인이 일하던 현장의 비계는 옹벽 가까이로 옮겨졌고, 안전망이 설치됐다. 충분히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지 않았음을 스스로 보여 준 것이다.

     

    그런데 원·하청업체의 현장 안전보건책임자와 업체들에 대한 재판에서는 고인이 비계를 오르는 사다리를 이용하다가 실족한 것처럼 추락사 원인이 다뤄지고 있다. 당시 현장의 안전관리를 총괄하고 있던 원·하청업체 현장소장의 의견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로 보이는데, 위 관리자들은 실제 고인이 추락하는 상황을 목격하거나 추락 당시 사고 현장에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고의 원인이 마치 고인의 실수인 것처럼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사고 현장에 설치돼 있던 사다리는 비계 안쪽이 아닌 바깥쪽에 설치돼 있었고, 안전한 통로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다. 고인이 사다리를 이용하다가 추락했다고 하더라도, 추락할 위험이 있는 상태로 비계와 사다리를 설치한 이들의 책임은 달라질 수 없다. 더욱이 재판 과정에서 고인을 관리감독자로 지정하는 관리감독자 지정서가 고인 명의로 작성·서명날인된 것으로 제출됐다. 그러나 유족들이 필적감정을 진행한 결과 고인이 직접 작성한 문서가 아니라, 현장관리소장이 작성한 문서임이 확인됐다. 현장의 관리감독자는 안전관리에 관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자고, 이를 위반해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져야 하는 지위에 있다. 고인이 아닌 현장관리소장이 고인인 것처럼 서명날인한 관리감독자 지정서가 재판에 제출된 것은, 고인의 책임과 과실이 크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임의로 작성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고인의 동의를 얻어 작성된 문서라고 할지라도, 안전관리와 관련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자에 관한 문서가 허술하게 관리된다는 것 자체가 현장에서 안전을 얼마나 경시해 왔는지를 보여 준다.

     

    원·하청업체의 현장 안전보건책임자와 원·하청업체에 대한 형사재판은 16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지난 1년8개월간, 유족들은 생업을 뒤로 하고 고인이 왜 사망했는지 밝히기 위해 나서야만 했다. 유족의 노력이 없었다면 관리감독자 지정서가 고인 명의로 작성·서명날인됐다는 사실도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원·하청업체가 서로 책임을 미루고, 노동자의 과실을 탓하려 하고, 사고 현장이나 원인에 대한 조사결과에는 유족이 접근하기 어렵고, 사고 발생 며칠 만에 사고 현장은 보란 듯이 안전조치를 취해 바뀌어 있고, 하루아침에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유족들이 몸과 마음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진상을 밝히기 위해 나서야 하는 현실은 그대로였다.

     

    관계자들에 대한 처벌이 고인이 입은 피해를, 유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원·하청업체와 관계자들에게 분명한 책임을 묻고 현장 안전을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금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건설현장 추락사를 멈출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링크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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