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서울 종로구 삼표그룹 본사 앞 동양시멘트 농성장에서 해고 노동자들이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기획은 불평등, 노동 탄압, 특권 세습, 권력 독점, 법치 실종, 부정부패, 대의제 한계 등 ‘민주공화국’의 부재와 위기를 7회에 걸쳐 진단합니다. 웹·모바일 특집페이지에 지면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싣습니다. 취재팀이 지난 8~9월 만난 노동자, 장애인, 활동가, 지식인 등 100여명의 육성을 르포와 인터뷰로 올립니다. 특집 페이지는 시대를 진단하는 아카이브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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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미국대사관 뒤편으로 고층 빌딩이 즐비하다. 지난 8월10일 오후 2시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한 서울 기온은 섭씨 33.6도였다. 한낮이 되자 빌딩 유리 벽면에 반사된 햇볕에 아지랑이가 일렁거렸다. 삼표그룹 본사가 있는 이마빌딩 입구 앞에는 사람이 간신히 기어들어갈 수 있는 천막 2동이 있었다. 

이 천막이 동양시멘트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이 353일째 노숙 농성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천막은 목재로 기둥과 벽을 만들고 비닐을 씌워 만들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 보니 침낭 주변에 모기장이 쳐져 있었고 바닥에는 살충제 캔이 뒹굴고 있었다. 빨래줄 위에는 수건 2장이 걸려 있었다. 비좁은 공간에 꽉 차 있는 열기 때문에 숨이 막혔다. 이곳에서 동양시멘트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이재형씨(42), 박호기씨(54), 최창수씨(43)를 만났다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은 지난해 2월13일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인 동일산업이 ‘유령회사’이며 하청 노동자들은 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동양시멘트 소속 정규직 노동자라고 판정했다. 하지만 동양시멘트는 고용노동부 판정에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노동자 100여명을 해고하는 것으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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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해고 노동자들을 구하지 못했다. 지난해 6월 강원지방노동위원회가 동양시멘트의 부당해고를 인정했고, 11월 중앙노동위원회까지 부당해고로 판정했지만 동양시멘트는 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않고 오히려 중노위 판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지난해 9월 동양시멘트를 인수한 삼표그룹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한 해고 노동자들에게 소송을 취하하면 삼표라임스톤 등 자회사 노동자로 취업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일부 해고자들은 노조를 탈퇴하고 자회사 취업을 선택했지만 이재형씨 등 23명은 삼표 본사 앞에서 천막을 치고 정규직 복직을 요구하는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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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차별이었다 

이재형씨는 26살이었던 2000년 10월 동양시멘트의 하청업체인 동일산업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군대를 가기 전에 중장비 운전기능사 자격증을 따 두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굴삭기를 10년, 불도저를 4년 운행하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 넷을 키웠다. 어머니도 모시고 살았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씨는 이를 악물었다. 기본급보다 연장근무수당이 많았기 때문에 연장근무가 일상이었다. “먹고 살려면 연장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연장근무해야만 수입이 되니까요. 16시간 근무하는 게 일상이죠. 저는 이틀에 한 번씩 16시간 근무했습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씨는 당시를 “모든 게 차별이었다”고 회고했다. 임금은 정규직의 40%밖에 받지 못했지만 당시에는 그 사실을 몰랐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 동료들에게 멸시받기도 했다. 점심식사를 하러 식당에 갈 때 정규직보다 먼저 먹으면 “하청 주제에 왜 우리보다 밥을 먼저 먹느냐”는 조롱을 들었다. 

결국 동양시멘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4년에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이씨는 “노조가 순식간에 조직됐다”며 “그만큼 차별당했으니까”라고 덧붙였다. “이전에는 노조 결성하면 해고될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차별, 체납된 인금 인상분, 고용불안이 있으니까 2014년에 폭발한 거죠.”

동양시멘트 해고 노동자들은 3주마다 3명씩 교대로 삼척에서 서울로 와서 노숙농성을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삼표 본사 앞에서 오전 7시 15분부터 9시까지 아침 시위,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점심 시위를 한다. 저녁에는 서울의 다른 농성장 연대방문을 한다.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많냐고 묻자 이씨는 약간 머뭇거렸다. “거의 모두가 다른 농성장에서 연대하러 오신 분들입니다. 일반 시민들은 소수입니다. 우리는 투쟁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나름대로 일상이 있는 거죠.”

이씨가 서울에서 농성을 하는 동안 아내는 삼척에서 6살 막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식당에서 설거지와 잡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이씨 가족은 아내가 벌어오는 돈과, 지난해 9월 2일 중앙지법이 임금가처분지급 명령을 내리면서 매달 들어오는 100만원, 그리고 시민들이 보내는 자동이체(CMS) 후원금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빠듯한 살림이지만 가족들은 이씨의 투쟁을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결혼생활 20년 가까이 제가 한 번도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내도 믿고 있다”며 “자식들에게도 내가 비록 해고됐지만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너희들을 키울 자신이 있다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더위, 모기, 그리고 손배소송 

최근 동양시멘트는 노조의 단체행동에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소송 소장을 보내고 있다. 이씨는 덤덤하게 웃었다. “저희 조합원 23명 다 합쳐서 배상금이 총 16억원 정도 됩니다. 소장은 받은 조합원도 있고 아닌 조합원도 있는데 계속 송달 중입니다. 집으로 송달을 옵니다. 문을 안 열어주면 창문 틈새로 밀어놓고 가죠. 그래서 한여름에도 창문을 못 열고 지내고 있습니다.”

한여름이다보니 농성에서 가장 힘든 것은 역시 더위와 모기다. 박호기씨는 “물도 사 먹어야 하니까 식당에서 많이 먹는다”며 “밥 먹으러 식당에 가면 물통 2개를 그냥 비워버린다”고 말했다. 이재형씨는 여름 노숙농성을 ‘모기와의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모기장을 치면 바람이 막혀 더위가 더 심해진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기장을 걷으면 모기 때문에 잠을 못 자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이다. 모기향을 피우면 환기가 잘 되지 않고 혹시 비닐이 타서 불이 날까 걱정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아침이면 세면도구를 챙겨 근처 공원 화장실에서 몸을 씻는다. 

지난해 겨울의 추위는 특히 매서웠다. 전기가 없어서 침낭 안에 핫팩을 넣어 버텨야 했다. 최장수씨는 “추워서 입 돌아가는 줄 알았다”며 “씻지는 못하고 세수하고 양치만 하는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해고 노동자들은 지하철 지하상가에서 노숙인과도 섞여 잤다. “겨울에 삼척에서 저희가 30~40명 올라왔단 말입니다. 노숙인들이 쫓겨서 딴 곳으로 가니까 미안했죠. 공중화장실에서도 저희 때문에 노숙인들이 못 씻어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는 것 같았습니다.” 

이재형씨에게 ‘정규직’의 의미를 묻자 한숨을 쉬었다. 이씨는 “우리가 삼표에게 원하는 건 노동부 판정대로 정규직으로 복직이행을 하라는 것”이라며 “자회사로 가면 노동조합도 그만둬야 하고 완전한 노예생활이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27명이 노조를 탈퇴해 자회사로 복직했습니다. 복직 조건이 소송과 노조를 포기하면 시급이 20% 인상되는 거였어요. 하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급이 20% 인상됐다고 하는데 해고기간 1년에다 최저임금 인상분을 감안하면 더 받은 게 아니고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은 거죠.” 

농성을 포기한 동지들이 야속할만도 하지만 이씨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했다. 이씨 역시 오랜 농성 생활을 하면서 그들이 겪었을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해고 노동자의 삶이란 가족들 부모 친인척 다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겁니다. 아내부터 ‘포기해라’, ‘이혼하겠다’ 하는데 긴 싸움에 대한 자신이 없었던 거죠.” 

■헌법대로 한다면 왜 노숙농성을 하겠나 

해고 노동자들에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물었다. 그들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고민했다. 생각 끝에 나온 그들의 답은 모두 “아니다”였다. 박호기씨는 “민주공화국은 국민들한테 인권이 다 있지 않냐”며 “대한민국은 인권을 너무 무시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자본만 감싸고 노동자는 노예처럼 취급하는 그런 나라니까. 이게 민주공화국은 아니죠.” 

이재형씨는 “민주공화국이라고 헌법에 나와 있지만 판결을 이행하지 하는데 그게 민주공화국일까요?”하고 되물었다. “우리 변호사님들도 다 그렇게 얘기하더군요. 헌법대로만 한다면 부당해고 판정이 났는데 저희들이 노숙농성을 할 필요가 없죠.” 본인이 생각하는 민주공화국이란 뭐냐고 묻자 이씨는 약간 어려워하면서도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와 인간답게 산다는 만족이 있는 나라”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농성이 장기화되면서 조합원들은 시민들의 관심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 이씨는 “처음에는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셨는데 지금은 소수 인원만 남았다”며 “외면당하는 기분도 든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직까지 싸우고 있는데 잊히지 않을까, 묻히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지금 23명이 남아서 싸우고 있지만 과연 승리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인터뷰를 끝내며 마지막으로 이재형씨에게 왜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지는 것일지 물어보았다. 아픈 질문이었다. 이씨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숙였다. 인터뷰 내내 당당하던 이씨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아마 우리가 못 싸워서 그렇지 않을까….” 

* 출처: 경향신문 2016. 11. 4

* 해당원본글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042119001&code=94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