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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겨레신문] 비정규직,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단어
    • 등록일 2015-03-31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4141
  • 비정규직,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단어

    확실한 개념 정의라기보다는 정규직의 반대말 성격… ‘정상’으로 바꿔내야 할 분노의 말이자 노동운동 정치화에 긍정적 기여를 한 말

     
    “모르고 살았다. 당연한 줄 알았다.”

    인터넷 통신업계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강수하(37·가명)씨가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적은 답이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에는 주말에 쉴 권리, 시간외 근무수당이라는 게 있다는 것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1991년 처음 기사에 등장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 상징하는 의미는 복잡미묘하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인 1천만 명 안팎(노동계 추산)이 비정규직이다. 숫자로는 다수다. 주변을 둘러보면, 여기저기 비정규직이다. 당연한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비주류다. 피해야 할 나쁜 일자리로 여겨진다. 그래서 비정규직은 스스로를 ‘을’(乙), 하층민, 현대판 노예 등으로 자기규정한다. <한겨레21> 설문 응답 결과(76~84쪽 참조)가 이를 증명한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해 12월 ‘비정규직법 전면 폐기’를 주장하며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옛 기륭전자 사옥 앞에서부터 광화문광장까지 오체투지 행진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박승화
     
    단어의 상징 의미는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름 짓기는 그 존재를 단순히 설명하는 과정만이 아니다. 최근 <조선일보>가 청년층을 ‘달관 세대’로 명명한 게 대표적이다. <조선일보>는 비정규직으로 적게 벌고 적게 쓰는 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젊은이들을 칭송했다. “당연한 줄 알고” 비정규직의 삶에 순응하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란 주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포기, 체념이 아니라 ‘달관’의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점이다. 묘한 작명법이다.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등 청년층의 비참한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달관 세대’라고 이름 붙이자 마치 현실 자체가 달라진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비정규직이란 이름 짓기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은 본디 ‘정식이 아니다’ ‘바른 규정이 아니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를 본격적으로 썼다. <한겨레> 기사 데이터베이스(DB)에는 1991년 처음 비정규직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그 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을 위해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돌리거나 업무를 통째로 아웃소싱(외주화)하는 전략을 택하면서 비정규직이 확산됐다. 단어의 쓰임도 자연히 늘었다.

    비정규직은 그 자체로 확실한 개념 정의라기보다는, 정규직의 반대말 성격이 강하다. 비정규직이라는 용어는 법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흔히 ‘비정규직법’이라고 부르지만,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처럼 기간제나 파견직 등의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률 전체를 통칭해 부르는 이름일 뿐이다.


    외국에서도 비정형(non-standard), 한시적(contingent), 비전형(atypical), 비정규(irregular), 시간제(temporary) 등을 혼재해서 비정규직을 표현한다. 최근 유럽에서는 불안정(precarious)이라는 표현이 주목받고 있다. 고용형태보다는 고용의 안정성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가이 스탠딩 교수가 실업자, 노숙자, 이주노동자 등을 모두 포괄해 ‘프레카리아트’(precarious와 proletariat의 합성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취약 노동자, 논스탠더스…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은 얼마 전부터 몇몇 연구자들과 함께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을 해체해보자는 고민을 시작했다. “이를테면 하층 노동자라고 불리는 취약 노동자를 어떻게 바꿔 부를까 하는 고민이 있다. 정부 등 관가에선 취약노동자라는 표현을 선호하지만, 피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최근 독일 등 유럽 쪽에서는 ‘표준고용계약의 붕괴’에 초점을 맞춰서 ‘논스탠더드’(비정형)를 넓게 해석하는 흐름이 나타나기도 한다.” ‘비표준’ 고용계약이 ‘표준’이 돼버린 시대라는 뜻이다.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왔을 때, 노동자면 다 같은 노동자지 ‘정씨’가 어딨고 ‘비씨’가 어딨냐는 비아냥이 있었다. 그런데 이후에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싶어 했던 건 오히려 정부다.”.

    -오민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본부실장

    사실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를 먼저 퇴출시키고 싶어 한 쪽은 정부다. ‘정규직=좋은 일자리’ ‘비정규직=나쁜 일자리’라는 인식이 워낙 뿌리 깊이 박혀버린 탓이다. 2010년 고용노동부는 노동정책 용어 107개를 순화하는 작업을 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비정규직’의 어감이 부정적이어서 다른 용어로 대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자 비정규직 중에서도 ‘무기계약직’만 바꾸겠다고 한발 물러섰으나, 이마저도 무산됐다.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왔을 때, 노동계 안에서도 노동자면 다 같은 노동자지 ‘정씨’(정규직)가 어딨고 ‘비씨’(비정규직)가 어딨냐는 비아냥이 있었다. 그런데 이후에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싶어 했던 건 오히려 정부다. 비정규직이라는 단어 자체에 불온하고 저항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민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본부실장의 말이다.

    ‘아닐 비’(非)는 차별과 배제의 언어다. 하지만 동시에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꿔내야 할 분노의 언어가 되기도 한다. 사회적 낙인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때론 낙인을 지우기 위해 서로 손잡고 집단행동에 나설 동력이 되기도 한다. 비정규직이라도 권리가 있음을, “당연한 줄 알았던” 것들이 부당함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에 가능하다. 이때 ‘비정규직’은 좌절과 포기의 단어가 아니라, 혁명과 불온의 단어가 된다.

    최근 몇 년 새 민주노총을 이끄는 주체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주요 상징어 가운데 하나는 ‘비정규직’이다. “2001년부터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이란 상징을 중심적으로 제기함으로써, 노동운동이 민주주의의 일관된 대변자로 재현하여 노동운동의 정치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은수미 논문 ‘노동운동 거듭나기’) 비정규직이라는 단어 또는 의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민주노총이 일종의 상징정치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민주노총의 거리 노동정치를 이끄는 건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이다. 지난해부터 연달아 노숙농성과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더불어 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희망연대노조)의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씨앤앰지회 조합원들은 모두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다. 열정페이와 최저임금 논란 등을 불러일으킨 것도 알바노조, 청년유니온, 패션노조 등의 불안정 노동자들이다. 민주노총의 4월 총파업은 ‘비정규직 파업’이 될 공산이 크다.

    지난해부터 연달아 거리 노동정치를 이끄는

    “삼성전자서비스나 인터넷·통신 업계의 설치·수리 기사들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일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 밑바닥에서 건당 수수료를 받는 시스템, 서로가 경쟁하고 서로 밟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근무환경이었다. 거리로 뛰쳐나올 만큼 이들에게 극심한 분노의 감정을 심어준 건, 결국 다단계 하도급을 부추긴 정부와 기업이다.” 박재범 희망연대노조 정책국장의 분석이다. 그러나 ‘새장’ 밖으로 뛰쳐나와 날아오르는 비정규직은 900만 명 가운데 소수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눈치만 보며 숨죽여 웅크려 있다.

    “몇몇 재벌한테 경제력이 집중돼 있는 한국 경제 구조는 비정규직들의 투쟁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삼성·SK·LG·현대차 등 싸울 대상이 재벌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규모도 어느 정도 되는 곳에서만 싸움이 일어나는 거다. 수직축으로 자리잡은 경제권력 가까이 있을수록 싸울 수 있고, 변방으로 밀려나 있는 비정규직일수록 일찌감치 저항할 싹이 잘려버린다.”(김성희 소장)

    이처럼 비정규직이라는 단어 속에는 한국 사회 여러 겹의 모순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아무리 비정규직이 부정의 단어로 인식되고 있다 해도, 아직은 그 단어를 지울 수 없는 까닭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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