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경기 시흥 시화공단의 한 제조업체가 페이퍼 노조(유령 노조)를 방패막이로 삼아 2노조(금속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과반수 노조가 출범을 했지만 회사는 기존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이 남아 있다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2011년 복수노조 제도 도입 이후 등장한 ‘신종 부당노동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29일 경향신문이 단독 입수한 녹취록을 보면, 대창 노동조합 위원장인 오모씨(35)는 지난 20~21일 회사에서 나일권 금속노조 경기지부 대창지회장과 만나 “우리 회사에 오래 전부터 페이퍼 노조가 있었던 것을 알지 않느냐”며 “(회사에서) 이름만 올려놓고 서명만 하면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오씨는 “(노조위원장)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노조의 노자도 모르는 사람인데 그걸(단체협약) 자세히 읽었겠느냐”고 했다. 위원장 스스로 노조가 회사에 의해 설립됐다는 점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시화공단에 위치한 동(銅) 압연품 제조업체인 대창은 시흥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조시영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대창에는 대창 노조가 2003년 7월 설립됐는데 오씨가 2014년부터 위원장을 맡고 있고 조합원 수는 4명이다. 최근 상급단체를 금속노조로 하는 대창지회가 조합원 259명을 조직한 뒤 지난 19일 출범해 복수노조 사업장이 됐다.

문제는 과반수 노조인 대창지회가 출범 이후 회사에 교섭을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가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는 대창지회에 보낸 공문에서 “기존 노조와 (지난 1월) 체결한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이 도래하지 않았으므로 대창지회의 교섭 요구는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대창지회는 지난 27일 시흥시청에 ‘휴면노조 해산 요청 진정’을 제기했다. 시흥시청은 전날 사업장을 방문했는데 오씨는 그간 노조 활동 여부에 대한 질문에 “한 게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대창지회는 “그동안 회사는 임금과 복지 관련 사항을 노사협의회를 통해 결정해왔는데 노조를 만들어 교섭을 요구하자 조합원 4명이 가입한 페이퍼 노조를 방패막이로 삼아 교섭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며 “사용자들이 페이퍼 노조와 유령 단협 신고를 할 경우 복수노조과 교섭 창구 단일화의 취지와 달리 교섭도 못하고 노조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다른 사업장에도 나타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박주영 금속노조 법률원 노무사는 “복수노조 제도 도입 전에는 회사가 친기업 노조를 먼저 세워 민주노조가 설립되는 것을 막았다면 복수노조 제도 도입 이후에는 페이퍼 노조를 활용해 민주노조의 교섭권을 무력화시키는 신종 수법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창 측은 “먼저 세워진 대창 노조는 자주적으로 세워졌고 회사가 해당 노조 설립에 관여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