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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향신문][한국지엠 비정규직 해고자, 그 후](중)내게 재취업은…‘법 주변’서 ‘법 밖’으로 가는 길
    • 등록일 2020-11-16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28
  • [한국지엠 비정규직 해고자, 그 후](중)내게 재취업은…‘법 주변’서 ‘법 밖’으로 가는 길

     

    ‘재취업 실태’ 살펴보니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으로 13년간 일하다 2018년 해고된 정상민씨(39)는 현재 택배기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일하는 택배 대리점에서는 지난달 택배기사 한 명이 “한 달에 200만원도 못 버는 일을 하고 있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은 배송 구역에 대한 권리금, 물품 파손에 대한 보증금, 차량 구입비까지 수천만원의 돈을 들여 일을 시작했지만 월 수입이 20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권리금과 보증금이라도 받고 일을 그만두려 했으나 후임자를 구하지 못하면 일도 그만둘 수 없었다.

     

    비정규직에게 먼저 온 ‘해고 칼날’
    십수년을 자동차 조립에 바쳤지만
    다친 몸과 나이는 “장애물이자 짐”


    취업 성공한 85명 중 절반 이상이
    직장 2곳 이상 전전…노동도 가중
    빚은 늘고 더 아래·더 주변 일터로
    정부 재취업 지원 혜택은 단 1명뿐

     

    김수현씨(50·가명)의 양 손바닥에는 가로로 1㎝쯤 되는 자잘한 흉터가 4개 있다. 지난 14년간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하루에도 수백번씩 볼트를 체결하다 생긴 것들이다. 공구를 쥔 그의 손엔 늘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엔가는 일이 끝나도 굽은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다. ‘방아쇠 수지 증후군’이다. 장시간 무언가를 쥔 채 일하는 사람들, 손을 이용해 반복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질환이다. 김씨는 창원공장에 다니며 3년에 한 번꼴로 굳은 손가락을 움직이기 위해 인대를 절개하는 수술을 했다.

     

    차량 수백만대가 그의 손을 거쳐갔다는 증명인 셈이다. “이것 역시 숙련된 기술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볼트 잘 박는 게 특별한 기술이 되느냐. 십 몇 년을 다녔어도 나와 보니 특별한 기술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해고돼 노동시장에 다시 구직자로 나선 사람들은 모든 악조건의 결정체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고, 세전 연봉 4000만원 언저리에 맞춰 생활의 규모를 키워왔으나, 오랜 기간 일하며 배운 기술은 달리 써먹을 데가 없다.

     

     

    경향신문이 이 공장에서 2018~2019년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138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 연령대는 40~50대가 61.6%로 절반을 넘었다.

     

    10명 중 7명은 한국지엠 비정규직으로만 10년 이상을 근무하다 해고됐다.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집에 가져가야 하는 돈이 많고 생계 부담이 늘었지만, 재취업에는 남들보다 더 애를 먹었다. 40~50대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4%는 해고 이후 가계 부채가 1000만원 이상 늘어났다고 답했다. 5000만원 이상 부채가 늘어났다는 사람도 10.6%나 됐다.

     

    50대 후반의 유근상씨(가명)는 한국지엠 해고 후 지난 10개월간 한 달에 2번 이상은 입사원서를 썼다. 하지만 한 번도 회신을 받지 못했다. 지게차 자격증과 지난 20년간의 지게차 운전 경력이 하잘것없이 느껴졌다. 그는 “있는 사람들에게는 나이가 권력이고 힘이고 명예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장애물이고 짐”이라고 했다.

     

     

    올 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한국지엠 해고자들에 대한 대책이라며 내놓은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은 정작 이들에겐 도움이 되지 못했다. 기업과 구직자를 연결한 뒤 정부가 기업에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인데, 이 사업을 통해 일자리가 연결된 한국지엠 해고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제조업 대공장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사측의 인건비 절감 도구이자 정규직들의 해고 안전판이다. 단기 이익을 중시하는 글로벌 자본의 일터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극적이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2018년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과정에서도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해고 칼날을 먼저 맞았다.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해고자들은 허겁지겁 더 아래로, 더 주변부의 일자리로 떨어졌다.


    가뜩이나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크게 확대됐다. 취업에 성공한 해고자 85명 중 57.6%는 해고 이후 2개 이상의 일자리를 거쳤다. 해고 이후 또 다른 해고를 겪기도 했고, 저소득·고강도 노동에 지쳐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했으며,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하기도 했다. 취업자 대다수는 전보다 위험한 일터에서 훨씬 높은 노동강도로 더 긴 시간을 일하고 있다. 이들의 일터는 주변부 노동시장이 현재 어떤 모순을 안고 있는지, 한국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주변부 노동자를 특수고용(특고)·플랫폼 등 노동관계법 밖으로 내몰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새벽 출근시간에 맞춰 사내하청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지엠 창원 비정규직지회 제공

     

    해고노동자 61%가 40·50대
    “나와보니 특별한 기술 없어”
    해고 후 또 다른 해고 겪기도


    택배 등 특고 일자리 내몰려
    수입 적다보니 ‘투잡’이 일상
    “저녁 있는 삶, 그런 거 없어”
    “엄마, 아빠 왜 안 와? 지엠 어려워?”


    서동규씨(39·가명)의 아홉 살 난 큰아이는 요즘 부쩍 엄마에게 아빠의 행방을 묻고 있다. 서씨가 아이들이 자는 시간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통에 평일에는 아빠 얼굴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해고된 이후, 서씨는 ‘투잡’을 뛰고 있다.

     

    그의 주업은 화물운송이다. 2500만원을 대출받아 중고 1t 트럭을 샀다. 그는 “1000만원도 안 할 중고차를 일자리하고 같이 산 것”이라고 했다. 개인사업자로 취급받는 특수고용(특고) 노동자가 된 것이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중소기업 생산직으로 갈 경우 200만원 남짓의 월급만 받게 되는 데다 추가 수익을 위한 투잡이 불가능했다.


    그의 목표 수입은 월 300만원이다. 화물차 구입 비용에 더해 예상치 못한 빚까지 생겨, 목표를 높게 잡았다. 지난 6월 서씨는 실업급여 부정수급으로 적발됐다. 이후 지급될 실업급여가 끊겼음은 물론, 앞서 받은 700여만원까지 다시 토해내야 하는 형편이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구직활동을 벌였음을 입증하는 구직이력을 한 달에 한 번 온라인으로 입력해야하는데, 집 컴퓨터가 고장나 아내가 자신의 회사 컴퓨터로 서씨의 구직이력을 대신 입력한 것이 문제가 됐다. 서씨는 “구직활동은 제가 하고 온라인 입력만 아내가 한 건데도 부정수급이 됐다”며 “비정규직 양산한 불법파견은 10년이 넘도록 해결이 안되는데 이런 건 칼 같이 잡아낸다. 한국은 약자한테만 강하고 강자한테는 약한 나라”라고 말했다.

     

    한국공장 창원공장에서 해고된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되던 날 공장에서 가져온 물품들. 안전화와 정규직 노동자들이 입는 작업복을 가져왔다.

     

    그는 오전 7시쯤 첫 출근을 하고, 일을 마치는 오후 8시쯤 쇠를 깎는 두번째 일터로 출근했다. 여기선 하루 2~3시간씩 일했다. 보통 집에 들어가 저녁식사를 하는데 밤 11시가 훌쩍 넘어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 ‘저녁이 있는 삶’ 이런 거는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인 것 같다”며 “TV에 안 나오는 안 좋은 풍경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경향신문의 설문에 응한 한국지엠 창원공장 해고자 138명 중 해고 후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85명이다. 이들 중 택배·화물운송·음식배달 등 특고 일자리를 경험한 사람이 32%를 차지한다. 누군가는 노동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일자리를 구하기 수월하다는 이유로 특고가 됐다.


    한국지엠에서 12년간 일했던 석동훈씨(49·가명)는 2018년 해고 후 택배기사가 됐다. 제조업 생산직 일자리도 몇 곳 알아봤지만 지원 가능한 것은 최저임금 수준의 일자리가 전부였다.


    좋은 일자리를 찾기에는 적잖은 나이도, 내세울 만한 기술이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 됐다.


    그는 매일 오전 6시30분쯤 집을 나서는데, 배송이 많은 날은 오후 10시30분쯤 돼야 일이 끝난다. 가뜩이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가 많은 지역을 맡아 몸이 쉬이 피로해졌다. 택배를 시작하고 한 달, 체중은 20㎏이나 빠졌다. 그는 밤늦은 인터뷰 중에도 팔이며 허리며 온몸 이곳저곳을 연신 주물러댔다.


    고강도 노동보다 더 큰 문제는 택배업계가 노동 무법지대라는 점이다. 잇단 택배기사 과로사에 정부가 표준계약서를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현장은 불공정계약이 만연하다. 이들의 외향은 언제든 자율적으로 쉴 수 있는 개인사업자이지만 하루를 쉬려면 25만원을 주고 사람을 써야 한다. 쉴 수 있는 날이 사실상 없다. 석씨는 “택배는 한국지엠이랑은 비교가 안 되게 노예다. 너무 열악하고, 너무 불합리하다”고 했다.


    석씨보다 한발 앞서 택배기사가 된 정상민씨(39)의 일터에서는 지난달 20일 택배기사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 “한 달 200만원도 못 버는 일을 하고 있다”고 적었다. 고인은 택배 일을 구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경기도에서 부산까지 내려왔다. 권리금 300만원을 주고 배송할 구역을 사고, 택배물품 파손 등에 대비해 택배대리점에는 보증금 500만원도 맡겼다. 벌이가 시원찮아 그만두려 했지만 쉽게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대리점은 후임자가 보증금을 입금한 뒤에야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고 버텼는데, 돈이 안 되는 고인의 구역을 사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정씨는 택배를 “종합예술”이라고 했다. 한 사람의 택배기사가 운전, 고객응대, 배송, 영업은 물론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막노동’까지 두루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중 하나라도 잘못하면 사고가 나는데 사고 수습의 책임은 모두 기사가 졌다. 정씨는 “계약서상 책임은 모두 을이 진다. 을이 잘못하면 갑은 손해배상도 걸고 해고나 다름없는 계약해지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한국지엠 사내 하청 시절과 지금 하는 택배 일이 본질적으로는 유사하다고 했다.


    그는 “택배회사가 모든 걸 관리하고 컨트롤하면서 불리할 때는 개인사업자라고 하는 거나, 한국지엠이 직원처럼 부려놓고 필요 없을 때는 하청업체 소속이라며 나가라고 하는 거나 비슷하다. 회사 입맛에 맞게 바뀐다”고 했다.


    제조업 생산직으로 수평 이동한 재취업자들도 새 일자리 적응에는 애를 먹었다. 최저시급과 짝이 되는 하루 10~12시간의 장시간 노동이 만만치 않았고, 중소공장의 주먹구구식 노무관리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 재취업자의 81.2%는 한국지엠 때보다 현재 직장의 업무강도가 강하다고 답변했다. 재취업자의 65.9%는 ‘휴식시간이 아예 없거나 한국지엠 때보다 적게 쉰다’고 답했고, 85.9%는 ‘연차의 개념이 없거나 한국지엠 때보다 연차 사용이 자유롭지 않다’고 답했다. 64.7%는 작업 환경이 더 위험해졌다고 답했는데, 65.9%는 이렇다 할 안전장비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었다.


    자동차 부품사 하청업체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태종현씨(55·가명)는 평일 5일은 하루 11시간씩, 토요일에는 8시간으로 주 63시간을 일하고 있다. 그는 “이건 인간이 생활하는 게 아니고 그냥 먹고살기 위해서,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렇게 산다”고 했다. 2018년 해고 이후 LG전자의 하청업체 소속으로 전자제품 입·출하 보조 업무를 맡고 있는 설복현씨(50·가명)는 “계속 힘쓰는 일을 해야 하는데 여름에도 선풍기가 없다. 2년이 다되어 가는데도 아직 틈틈이 인터넷 구직 사이트를 본다”고 했다.


    하지만 재취업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 연령대가 높은 해고자일수록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설문에 참여한 50대 이상 응답자는 절반만이 재취업에 성공했다. 50대 재취업자의 절반은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거나 택배기사 등 특고 노동자가 됐다.

     

    김수현씨는 해고 이후 건설 일용직이 돼 대구·부산 등 각지를 돌고 있다. 올여름 유난히 긴 장마로 일을 공칠 때는 쿠팡 새벽배송을 하거나 부산까지 나가 대리기사 일을 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이렇게 된 데다 나이도 많으니 일반적인 회사에 들어가기 힘들고 선택할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효상·정대연·윤기은·송윤경 기자


    * 출처 : 경향신문 2020. 11. 16

  • 링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1160600015&c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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