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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향신문]30년 흑자기업, 왜 하루아침에 문 닫았나
    • 등록일 2020-07-27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32
  • 30년 흑자기업, 왜 하루아침에 문 닫았나

     

    가동이 중단된 한국게이츠 대구공장 내부 / 반기웅 기자

     

    “희망퇴직 신청 마감 1시간 남았습니다. 미신청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17시 이전에 신청 바랍니다.”

     

    지난 7월 20일 오후 4시. 회사가 직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공장에 있던 김태현씨(46)도 메시지를 받았다. 회사가 제시한 희망퇴직 신청 기한은 이날 오후 5시. 1시간 안에 희망퇴직 신청 서류에 사인하지 않으면 ‘위로금’을 받지 못한다. 꼬박 19년을 다녔던 회사에서 빈손으로 나와야 한다는 의미다.

     

    김씨의 회사는 대구 달성공단에 있는 자동차 부품 제조사 한국게이츠다. 전체 직원은 147명. 현대·기아차에 타이밍벨트류를 납품하는 1차 협력사다. 한국게이츠 지분은 미국게이츠(51%)와 일본의 닛타(49%)가 갖고 있는데 미국게이츠의 최대 주주는 미국계 사모펀드 블랙스톤이다.

     

    회사 지분의 51%는 미국게이츠 소유

     

    30년 역사의 한국게이츠가 지난 6월 26일 돌연 공장 폐쇄 방침을 밝혔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구조조정’이 사측이 밝힌 폐업 사유다. 예상치 못한 통보였다. 한국게이츠는 연평균 60억원의 이윤을 남기는 흑자기업이다. 그런데 6월 25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해산을 결의했다. 이후 일사천리로 폐업 절차를 밟았다. 직원의 의견은 묻지 않았다. 항의할 틈도 주지 않았다. 7월 8일 등기 신고를 완료했고, 8월 1일자로 회사 출입을 금지했다. 직원에게는 희망퇴직제도(ERP)를 내걸어 퇴사를 유도했다. 회사는 기한 내 퇴사 신청을 한 직원에 한해 희망퇴직 위로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회사는 수시로 희망퇴직 신청 알림 메시지를 보내며 직원들을 압박했다. 희망퇴직 신청 마지막 날 접수가 몰렸고, 결국 27명을 제외한 모든 직원이 희망퇴직 신청서에 사인했다. 김씨는 끝내 희망퇴직 신청을 하지 않았다. 아이 셋의 아버지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파트타임 일을 하는 김씨의 아내는 최근 직장에 근무시간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김씨는 “청춘을 바친 곳에서 쓰고 버림받는 도구로 남고 싶지 않다”며 “회사의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존중을 받고 싶어 사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단체 카톡방 통해 폐업 사실 전달받아

     

    여상원씨(54)도 희망퇴직을 거부한 27명 중 한 명이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한 여씨는 서른여섯 살에 늦깎이 입사를 했다. 한국게이츠에 취업한 뒤 가정을 꾸렸고,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 그는 회사가 고마웠고, 그래서 충성했다. 유니온숍(취업 후에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노조에 가입하게 되는 제도)에 따라 노조에 들어갔지만 활동은 하지 않았다. 회사에 대해 불평을 하는 동료들에게 여씨는 “이만한 회사 없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누군가는 여씨에게 “니가 여기 사장이라도 되느냐”고 비아냥거렸다.

     

    그랬던 회사였기에 상처가 컸다. 단체 카톡방을 통해 폐업 사실을 전달받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는 배신감이 ‘이제 뭘 먹고살아야 하나’라는 걱정보다 앞섰다. 여씨는 “이번 일로 내가 어느 계층에 속해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됐다”며 “너무 어리석었고, 회사에 충성했던 나 자신에게 자괴감이 든다. 도저히 이대로는 못 나간다”고 말했다.

     

    퇴직금을 받아 떠난 사람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이석영씨(51·가명)는 퇴직 이후의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구직 사이트에 채용 공고를 봐도 이씨가 일할 만한 곳은 없었다. 연령 제한에 걸려 재취업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씨는 대학생 자녀가 둘이다. “애들 등록금 생각에 일단 퇴직신청을 했지만 앞으로가 막막하다”며 “남은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이 폐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생계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게이츠의 최근 2년간 현금성 세후 영업이익은 130억원이 넘는다. 회사는 주주 배당으로 110억원을 지급했다. 이에 반해 설비 투자금액은 2억원에 불과하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회사가 장기적인 경쟁력 유지를 위한 재투자는 거의 하지 않고 주주의 배당 챙기기에 급급했다”며 “상생을 위한 노력 없이 구조조정부터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게이츠가 희망퇴직 신청을 재촉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한국게이츠 폐업은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구지역 전체에 터진 악재다. 그간 한국게이츠와 거래해온 협력사들은 51개, 여기에 종사하는 직원은 6000여명에 이른다. 이번 폐업사태로 거래업체와 소속 노동자들은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구 달성공단 내 2차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는 김상규씨(가명)는 “당장 매출 타격뿐만 아니라 저 정도 규모의 흑자기업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다는 사실이 무섭다”며 “지난달까지 코로나19로 단축 근무를 하다가 이제 정상근무를 하는데 한국게이츠가 터지면서 공단 전체가 불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게이츠는 ‘알짜’ 한국 시장을 포기한 것일까. 대구공장에서 생산하던 부품은 앞으로 중국게이츠가 만들어 현대·기아차에 공급한다. 부품 수입과 공급은 한국에 있는 판매법인 게이츠유니타코리아(GUKC)가 담당한다. 상대적으로 생산비가 덜 드는 저렴한 중국산 제품을 공급해 더 큰 이윤을 남기겠다는 것이 게이츠의 계산이다.

     

    현대차 “우리와 관련 없다” 거리 두기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옮겨도 거래량은 유지된다. 현대차는 주문 물량이 차질없이 공급된다면 생산지역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한국게이츠 노조는 부품 구매 권한과 협력사 관리 책임이 있는 현대차가 폐업사태를 방기했다고 본다. 차차원 한국게이츠투쟁본부 기획팀장은 “현대차는 해외 진출 시 국내 1차 부품사와 동반 진출한다. 완성차와 협력사 제조시설이 같이 움직인다는 의미”라며 “그럼에도 현대차가 한국게이츠 폐업과 역외수입을 통한 부품공급을 승인한 것은 국내 노동자들의 생존권 박탈을 방기한 부도덕한 행위”라고 말했다.

     

    대구시도 한국게이츠 폐업사태에 있어 현대차가 나서줄 것을 원한다. 대구시 관계자는 “시에서 직접 현대차를 방문해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라며 “어떤 방식이든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한국게이츠 폐업 이슈와 선을 긋는다. 현대차 측은 1차 협력업체는 게이츠유니타코리아로, 엄밀히 따지면 한국게이츠는 현대차의 거래업체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우리가 개입하면 협력업체에 대한 경영 간섭이다. 자칫 원청사의 갑질로 오해받을 수 있다”며 “지금 상황은 안타깝지만 현대차는 한국게이츠 폐업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대차의 ‘거리 두기’는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옮겨가는 자동차 산업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한국게이츠에서 생산한 타이밍벨트는 전통적인 내연기관차 부품이다. 전기차로의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내연기관에 의존하는 부품업체들은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가 내연기관 부품업체를 지원해 회생시킨 ‘선례’를 남기면 앞으로 부담이 커진다는 판단이다.

     

    남종석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차 경영진이 ‘한국공장 생산 제품을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면 한국게이츠 폐업은 뒤로 미뤄졌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그런 방식을 택하면 앞으로 현대차가 살려야 할 기업이 너무 많아져 책임이 커진다. 현대차가 기존 전속거래 시스템 탈피를 선언한 이면에는 ‘기존 내연기관 부품사는 더 이상 끌고 가지 않겠다’는 뜻도 담겨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게이츠와 같은 외국인투자기업(외투기업)발 고용위기는 제조업을 시작으로 시장 전반에 확산될 추세다. 산업구조 재편에 따라 불가피하게 시장에서 철수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게이츠처럼 흑자의 폭을 늘리기 위한 이른바 ‘돌발 폐업’을 하는 사례도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모펀드가 한국게이츠 최대 주주인데, 사모펀드의 최종 목적은 산업 육성이 아니라 수익 창출”이라며 “적자 시기에 처분하면 수익이 적기 때문에 흑자를 내고 있더라도 빠지는 게 사모펀드의 습성”이라고 말했다.

     

    무책임한 외투기업으로 인한 고용불안은 심화되는데 정부는 되레 외투기업에 대한 혜택을 늘리고 있다.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국내 진출한 외투기업은 법인세와 소득세, 취득세, 등록세 등 각종 조세를 감면받는다. 국·공유 토지와 공장은 저렴한 임대료로 빌릴 수 있고, 각종 보조금 혜택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올해부터는 보조금 규모도 확대된다. 여기에 더해 지자체들은 조례 제정을 통해 각종 특혜를 얹어준다.

     

    외투기업은 특혜를 받은 만큼 고용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을까. 외투기업은 고용안정기금 조성과 같은 노동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마련해놓지 않는다. 고용안정 대책을 마련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폐업과 구조조정에도 정부나 지자체가 규제할 방법이 없다. 대구시 관계자는 “폐업 계획을 전혀 몰랐고 사전에 통보해온 사실조차 없다”며 “폐업 이후 부지와 설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도 시에 함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당장 지역 경제에 타격을 입게 된 지자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호소’뿐이다. 지난 7월 13일 권영진 대구시장은 게이츠 본사 CEO에게 “폐업을 철회하고 공장을 다시 열어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이에 대해 게이츠 측은 “폐업 결정은 확정된 사안”이라며 철회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한국게이츠 직원 여상원씨(54)가 평소 일했던 작업장에서 작업 도구를 정리하고 있다. / 반기웅 기자

     

    외투기업, 특혜만큼 책임 다하고 있나

     

    결국 고용불안으로 인한 피해는 노동자의 몫이다. 외투기업의 불합리한 행태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노동계뿐만 아니라 국책연구기관에서도 나온 바 있다. 지난 4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보고서에서 “외투기업의 철수는 동일산업뿐 아니라 중간재를 공급하는 후방산업의 국내기업 고용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외국인 직접투자 유인책에 대한 적절한 법제화를 통해 사후관리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다국적기업 철수의 영향과 정책 대응방안)

     

    그럼에도 재계는 외투기업의 이탈 책임을 정부의 반기업적 규제와 노조 탓으로 돌린다. 외투기업 철수를 막으려면 규제를 더 풀고 노조의 힘을 빼야 한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해 12월 경영발전자문위원회에서 “외국기업이 투자를 기피하는 것은 노사문제 때문”이라며 “정부가 유연한 노동시장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외투기업에 대해 한국보다 강화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영국은 공정무역법으로 외국자본이 공공이익에 반할 경우 투자를 철회하도록 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7년 3월 다국적 기업 규정을 전면 개정했다. ILO는 다국적 기업의 인권 및 노동권에 관한 실사조치(due diligence)를 신설하는 한편 다국적 기업과 각국 노·사·정이 준수해야 할 상세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국제사회가 다국적 기업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과 독일은 각각 엑슨-플로리오 법(Exon-Florio Amendment), 폭스바겐 법으로 국가와 지역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나원준 교수는 “자본의 이동을 막자는 취지가 아니다. 무분별한 폐업을 단행하는 외투기업에 대해서는 자유무역협정(FTA) 투자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지원 혜택 회수와 같은 제재를 할 필요가 있다. 필요한 경우에는 특별 근로감독과 세무조사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판 뉴딜의 핵심 투자처로 ‘지역’을 꼽은 정부는 지역 일자리 창출을 약속한 바 있다. 대구시 역시 ‘대구형 상생일자리 창출’을 역점 사업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폐업으로 인해 위기를 맞은 대구지역 6000명의 일자리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정아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사무처장은 “상황 설명을 위해 청와대와 정부, 대구시에도 면담을 요청하고 있지만 어디에서도 응답하지 않는다”며 “당장 해결하라는 게 아니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자리라도 마련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 출처 : 경향신문 2020. 7. 26
    * 해당원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260829001&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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