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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향신문][강진구의 고전으로 보는 노동이야기](19)니체가 말한 ‘노예정신’ 깨지 않는 한 ‘노동존중 사회’는 멀다
    • 등록일 2019-05-10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68
  • [강진구의 고전으로 보는 노동이야기](19)니체가 말한 ‘노예정신’ 깨지 않는 한 ‘노동존중 사회’는 멀다

     

    니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23일 서울 콜텍 본사 앞에서 4464일의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끝내고 기자회견을 하는 노조 조합원들. 42일째 단식투쟁 중 협상 잠정타결 소식을 접한 이인근 조합원(가운데)은 “이제야 제대로 된 기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웃사랑에 앞서 자신에 대한 사랑을 강조했다. 이웃이 아니라 너 자신부터 사랑하라는 것은 누군가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명령에 따라 살라는 의미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속에는 기존의 가치와 명령에 복종해 편안한 삶을 구하려는 노예의 의지와 스스로 명령에 따라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고자 하는 주인의 의지가 공존하고 있다. 니체가 자라투스트라로 의인화한 예언자는 신에 대한 믿음도, 찬란한 과학기술 문명도 불안·공포·절망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구세주가 될 수 없다는 예언을 전달하고 있다. 인류의 희망은 신이 만들어낸 천국이나 인간이 만들어낸 다양한 유토피아의 꿈이 아니라 부단한 고통과 시련, 좌절이 기다리고 있는 대지의 삶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상처를 간직한 인간은 극복돼야 할 그 무엇인 동시에 메마른 대지에 풍요를 가져올 싹을 저마다 몸속에 간직하고 있는 불씨들이다. ‘신을 부정하는자’ 자라투스트라는 말한다.

    “그대들의 이웃을 언제나 그대 자신처럼 사랑하라. 그러나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라. 그대들이 의욕하는 바를 항상 행하라. 그러나 우선 의욕할 수 있는 자가 되어라. 내 말을 그대들이 이해하기를.”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절을 맞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노동으로 꿈을 이루고 노동으로 세계를 발전시키고 존경받는 나라를 이뤄내고 싶다”고 했다. ‘강성노조’ 탓만 하며 노동절에도 의례적 축하 메시지 하나 없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달라진 변화다. 하지만 올해 문 대통령의 노동절 메시지는 ‘영혼’이 보이지 않는다. 2017년 대선후보 시절 노동절 메시지에서는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사회’ 실현을 위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다. 2018년 대통령 당선 후 첫 노동절에도 ‘노동기본권 강화를 위한 개헌안 발의’ ‘단체행동권 강화’가 언급됐다. 하지만 올해 문 대통령은 노조 할 권리에 대한 일절 언급 없이 “과거 기울어진 세상에서 노동이 ‘투쟁’으로 존중을 찾았다면 앞으로 세상에서 노동은 ‘상생’으로 존중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사회적 대화 참여를 거부한 채 장외투쟁만 벌이는 민주노총에 대한 불편한 심정이 읽히는 대목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현 정부가 노동존중의 의미를 양대노총의 양보를 전제로 상대적 약자인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연민과 동정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 이유다.

     

    니체는 인간이 노예 상태에서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주인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연민과 동정을 가장 저열한 정신으로 파악했다. 연민과 동정심은 노예들이 기존 가치 질서에 순종하는 힘을 강화시킬 뿐이며 스스로에 잠재된 능동적 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자라투스트라는 “동정심은 모든 자유로운 영혼들에게는 답답한 공기를 만들어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미 오래전에 낙수효과는 끝이 났다”며 ‘사람중심 경제’를 재차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대기업과 수출중심의 경제를 사람중심 경제로 바꾸기 위해서는 연민과 동정심에 기초한 차별 철폐나 임금격차 해소에 앞서 비정규직들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노조 할 권리가 더 절실하다.

     

    지난달 25일 고려대 노동대학원이 주최한 ‘백년의 시민, 노동의 미래’ 포럼에서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ILO 핵심협약도 비준하지 못한 상태에서 노동존중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ILO 기본협약 중 결사의 자유 협약은 시민의 자유와 직접적인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공고화하는 단계에 들어서고 있지만 민주주의 정신과 가치가 노동현장에 침투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민사상 분쟁에 불과한 노동분규 현장에 경찰력 투입이나 조합원 체포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 방증이다. 노무를 집단적으로 거부하여 근로계약을 불이행하였다는 이유로 5년 이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법체계는 19세기적 노동관에 기초한 것이다. 국제노총(ITUC)은 우리나라의 노동인권 수준을 소말리아 등 내전 상태 국가(6단계)를 제외하고 최악인 5단계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자라투스트라는 인간정신의 발전 단계를 낙타-사자-어린아이를 통해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낙타는 외로운 사막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명령에 복종하며 어떤 어려움도 참고 버텨내는 정신을 상징한다. 사막을 달리던 낙타는 어느 순간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명령을 거부하고 ‘나는 하고자 한다’고 선언한다. 이것이 자유를 상징하는 사자의 정신이다. 자라투스트라는 “스스로 자유를 창조하고 의무 앞에서도 신성한 부정을 말하는 것, 그것을 위해 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자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지 못한다.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는 것은 가장 잘 견디고 경외심에 가득 찬 정신이 획득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것이다. 자라투스트라는 바로 이 무서운 일을 하기 위해 사자는 어린아이로 변해야 한다고 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조할 권리 보장하지 않은 채

     

    ‘연민·동정’ 시각으로 접근한 정부

    ‘힘’ 뺏으려 노조파괴 나선 사용자

     

    ILO 핵심협약 비준 약속 미룬 채

    노동 존중 거론 ‘영혼 없는’ 울림

     

     

    “형제들이여, 사자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어린이가 할 수 있을까. 어째서 약탈하는 사자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가. 어린아이란 순진무구함이고 망각이며 하나의 새로운 출발, 유희, 스스로 굴러가는 수레바퀴, 최초의 운동, 신정의 긍정이다.”

     

    니체가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한 위대한 정신을 어린아이에 비유한 것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섯살 꼬마를 연상시킨다. 꼬마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보여주며 “무섭지 않아”라고 하지만 어른들은 “모자가 뭐가 무서워”라며 쓸데없는 그림 따위 집어치우고 산수, 역사, 문법에 재미를 붙여보라고 충고한다. 이처럼 어른은 성장 과정에서 주입된 가치, 과거의 기억에 얽매여 사물을 고정된 의미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반면 어린이는 매 순간 새로운 상상과 생성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확장시켜 나간다. 하지만 사자가 새로운 가치 창조를 위한 어린아이로 변하기 위해서는 낡은 질서와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것과 함께 낙타 시절 각인된 기억으로부터의 단절이 필요하다. 낙타에게 가장 무거운 짐은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위해 스스로 무릎을 꿇게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노동절 메시지에서 “쌍용자동차와 KTX 여승무원, 파인텍, 콜텍악기 등 고공농성이나 단식 등으로 고생하던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돼 다행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해고된 후 길거리 천막농성이나 굴뚝농성을 하며 동료들이 자살하는 사태를 지켜보거나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시달린 노동자들이 과거의 기억을 잊고 정상적인 직장생활이나 노조활동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들의 고통은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들에게 집단기억이 돼 생존을 위해 낙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체념과 복종의 무거운 정신을 심어준다.

     

    니체는 “노예들은 단합하여 자신들 힘을 증대시킴으로써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자들 힘을 뺌으로써 승리한다”며 “지배자들이 자신이 지배하는 노예의 힘을 뺌으로써 순종적인 인간으로 길들이려 하는 한 노예적 인간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노동자들의 힘이 세질 것을 우려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노조파괴 행위에 나서는 사용자들은 노예정신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노동 자체의 가치를 높이는 고민보다 고용주를 압박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급급한 노조 역시 마찬가지다.

     

    자라투스트라는 노예는 주인이 명령한 기준에 따라 선과 악을 중시하는 반면 주인은 스스로 입법자가 되어 고귀함과 비천함을 중시한다고 했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최저시급 8350원 때문에 국가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고용지표나 경제성장률이 발표될 때마다 호들갑을 떠는 정치인, 전문가, 친재벌 언론들은 니체의 시각에서 보자면 물신을 숭배하는 비천한 노예들일 뿐이다.

     

    머리위에 자유롭고 창조적인 노동 대신에 안정된 직장과 임금이 노동의 꿈으로 매달려 있는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존중은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노동이 자유롭고 가치있는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지난해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자 “최저임금의 목적은 비정규직들에게도 최소한 연봉 2500만원은 받게하자는데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문 위원장은 임금 양극화 해소에 앞서 최저임금이 갖는 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놓치고 있다. 최저임금의 보다 더 큰 가치는 먹고 사는 걱정 때문에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노예처럼 사는 노동자가 없도록 최소한의 임금소득을 보장해주는데 있다. 노동자들의 경영참여나 노동3권 역시 마찬가지다.

    최종구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 3월 금융회사의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해 “은행권 종사자의 급여나 복지비중은 다른 분야에 앞서 노동이사제를 먼저 도입할 만큼 열악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노동이사제를 노동자의 책임과 권한을 확대해 사업장 민주주의와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확대하는 계기로 삼기보다 노동자의 밥그릇 챙기기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노동을 이처럼 밥그릇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낡은 틀을 깨지 않고는 노동존중사회는 여전히 멀 수 밖에 없다..

     

    MBC는 지난달 말 콜텍 노조 임재춘 조합원이 정리해고 13년 만에 해고 노동자 신분에서 벗어나기 이틀 전 목숨을 건 40일째 단식투쟁을 방영한 바 있다. ‘돌아가고 싶은데 해고 13년, 단식농성 40일’ 기사에는 응원의 댓글과 함께 악플도 눈에 띄었다.

     

    “13년 투쟁이라니. 동정의 여지가 없네. 그동안 다른 일자리 찾아보고 열심히 일했으면 아파트 한 채 장만했을 것” “노조가 파업권이 있듯이 사측은 맘에 안 들면 폐업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서로 상생을 해야 된다는 소리다”.

     

    해고기간 중 임금 상당액도, 한 달짜리 명예복직 후 안락한 노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지만 ‘부당한 해고에 대해 사과한다’는 한마디를 듣기 위해 4464일을 버틴 고귀한 정신을 ‘먹고사니즘’과 ‘노예근성’에 찌든 댓글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자라투스트라는 ‘우리 모두는 평등하다’는 천민들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가진 정신의 고귀함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단식 42일째 잠정합의안 타결 소식을 전해듣고 눈시울을 붉힌 임재춘 조합원은 사자에서 어린아이로 변해 있었다. “기타를 만드는 회사와 13년 동안 싸우면서 조금 질려버리긴 했어도, 여전히 제 꿈은 ‘명품기타’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 그 꿈을 다시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콜텍 조합원들의 투쟁을 지원한 비정규직 쉼터 ‘꿀잠’은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을 통해 운영되는 대안 공동체다. 이곳에는 집단해고의 대명사인 기륭전자· 쌍용차·파인텍 노동자, 아들을 산재로 잃은 고 김용균 어머니 등이 모여 노동에 새겨진 고통스런 집단기억을 지우고 함께 새로운 노동의 가치를 써내려 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의 미래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히 맞서지만 ‘노동의 종말’을 지구촌에 충격적으로 예고했던 제러미 리프킨은 정작 노동의 미래를 우울하게 보지 않았다. 생산성을 중시하는 시장의 노동은 기계에 의해 대체되겠지만 인간들의 자발적 협력에 기초한 사회적 경제가 잉여노동을 창조적 노동으로 바꿀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은 문명화에 사형선고를 내릴 수도 있지만 새로운 사회변혁과 인간정신의 재탄생의 신호일 수 있다”며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조대엽 고려대 노동대학원장도 ‘백년의 시민, 노동의 미래’ 포럼 기조연설에서 “1919년 민주공화정이 출범한 후 100주년이 되는 시점에 우리는 노동의 공익성을 강화하는 공화적 협력의 새질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리프킨이 말한 인간정신의 재탄생이나 조 교수가 말한 공화적 협력은 낙타와 사자를 넘어 순진무구함과 창조적 정신을 가진 니체의 ‘초인’과 맥이 닿아 있다.

     

    1990년대 대표적 노동시인이자 민주투사였던 박노해는 지구의 유랑자로 전 세계 분쟁현장과 빈곤지역을 돌아다닌 뒤 2014년 <다른 길>이라는 사진집을 펴낸 바 있다. 책 제목처럼 다른 길을 찾아나선 박노해는 인간의 노동과 함께 영원히 순환하는 대지에서 니체의 초인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 한 마을에서 커피체리를 따는 여성노동자 마르야나(20)는 말한다.

     

    “증조할머니가 심은 이 나무는 백살이 넘었어요. 하얀 커피꽃이 피고 꿀벌이 날고 꽃잎이 떨어지면 빨간 커피체리 안에 녹색 커피 생두가 반짝여요. 제 손으로 커피체리를 딸 때마다 저 안개 너머에 지금 커피잔을 들고 미소짓는 누군가를 떠올리곤 해요.”

    강진구 노동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 출처 : 경향신문 2019. 5. 3

    * 해당원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031645005&code=9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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