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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월호 생각의자]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계시도다.”
    • 등록일 2021-12-22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829
  •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계시도다.”



    <오영진 주교님 장례식>

    ― 노동자들의 벗 오영진 주교님을 기리며

    2017년 5월 23일. 4년간의 프라도(Prado) 국제양성 과정을 위해 파리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한국으로부터 오영진(올리비에, Olivier de Berranger) 주교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노동사목에 헌신할 사제들을 찾던 중 살레시오회 도요안 신부님의 조언에 1974년 프랑스 리옹의 프라도 국제본부를 찾아가셨다. 그리고 노동사목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양성자를 한국에 파견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셨고 그 요청을 받아들여 국제 프라도회는 다음 해에 프라도신학교 총장이었던 오영진 신부를 한국으로 파견하였다. 그리하여 오 신부님은 한국에서 17년간 노동 사목을 위한 양성과 한국 프라도 사제회의 산파역할을 하셨다. 그분의 헌신적인 삶의 열매로, 한국 교회 안에는 노동사목(G.O.C)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이전과 달리 프라도 사제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많은 사제들이 노동사목에 뛰어들어 가난한 노동자들의 동반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소임을 마치신 오영진 신부님은 본국 프랑스로 돌아오셔서 프랑스 내 가장 가난한 지역 ‘생-드니’ 교구의 (Diocèse de Saint-Denis)의 주교로 임명받으셨다. 이 지역은 세계 각지에서 온 노동자, 이주민과 난민이 밀집되어있는 빈곤과 범죄의 온상이었다. 주교님은 당신 소임에 앞서 바오로 사도의 에페소서 2장 19절 말씀을 택하셨다.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한 형제들입니다.”


    <오영진 주교님 장례식>

    이 성경말씀의 의미대로 그분께서 교구장으로서 행하신 첫 발걸음은 교구 내 모든 이들의 목소리 특히 무지와 가난으로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눈과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를 위해 교구 내 모든 지역과 본당을 방문하여, 이들이 처한 어려움과 아픔에 공감하시며 함께 나아가야 할 사목 방안을 마련하고자 하셨다.

    오 주교님은 생-드니의 신자들과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한국에서 만났던 한 명 한 명의 노동자들을 떠올리셨다고 한다. 그 증거로, 유언에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한국에서 만난 이들을 통해 저는 주님의 사랑을 더 깊게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하느님 자비하심을 신뢰하였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길을 배웠기에, 프랑스에 돌아와서도 저는 노동자들과 함께 그 기억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오영진 주교님 장례상본>

    ― 나눔은 가난을 풍요롭게 합니다

    프라도 국제양성 과정 중 사목체험 기간이 있는데, 나는 오영진 주교님에 대한 기억과 헌신을 생각하며 생-드니 교구로 보좌신부 생활을 지원하였다. 그곳은 ‘보비니(Bobihny)’라는 도시였는데 90%이상의 이슬람교 문화권이고 본당 신자들의 국적 역시 20개국이 넘었다.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국적을 가진 이네들의 삶은 전반적으로 열악했는데, 대부분 일용직이나 말단 하청 노동자였고 그런 직업이나마 구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어린이, 청소년들은 경제생활을 위해 학업을 포기했고 돈벌이가 쉬운 범죄에 쉽게 노출되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라곤 ‘가난’밖에 없었다.

    2019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예외 없이 이 지역에도 찾아왔다. 프랑스 내 코로나 첫 사망자가 보비니에서 나온 것도 이들의 고된 삶과 무관하지 않다. 보건 당국의 봉쇄조치가 시작되고 혼란과 함께 변변한 일자리가 없었던 이들은 더 큰 타격과 고립감에 갇히게 되었다. 다행인 부분 중에 하나는 오래 전부터 공산-사회주의적 경향이 강했던 이 지역주민들 스스로 구호단체, 시민기구들과 협심하여 팬데믹에 맞설 생존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생-드니 교구 음식 나눔 봉사>

    성당에서는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바게트,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노숙인과 독거 어르신, 장애인들을 찾아나서는 활동을 시작하였고, 마을 주민들은 두 군데의 식당을 빌려 식료품 창고를 마련하였다. 이 창고에는 순식간에 밀가루와 캔 음식과 같은 보관이 용이한 식품들을 모아졌다. 매주간 모인 물품들은 화요일과 목요일 이틀에 걸쳐 지역 주민들에게 배급이 되었고, 우리 본당에서도 카리타스 회원들과 함께 이 구호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매 주일 세 군데의 성당에 모여진 물품들을 마을 식료품 창고로 옮기는 것이 월요일 나의 주된 일과가 되었다.  

    활동이 시작된 지 한 달여가 지난 어느 월요일 오후였다. 식당 마을창고에 물품들을 쌓고 잠시 밖에 나와 쉬고 있었는데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슬람 히잡을 쓴 여인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한 손에 아이 손을, 다른 한 손에는 갓난아기와 음식물로 보이는 봉투를 들고 있던 그녀의 옷차림은 허름했고 한눈에 봐도 도움이 필요해보였다. 나는 속으로 이 곳에서 음식물을 나눠주는 요일과 시간을 안내해주려고 준비를 했다. 그녀는 내게 물었다. ‘매주 월요일마다 많은 식료품이 이곳에 오던데 무슨 일인가요?’ 나는 이 구호활동의 취지와 요일, 시간을 알려주었고, 여인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손가락을 세며 무엇인가를 골똘히 계산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녀는 자신의 봉투에서 스파게티면 한 봉지와 감자 두 개를 꺼내어 내게 건넨다. ‘분명 저보다 더 어려운 이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 나누어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봉투 속 절반의 음식을 나누었다.  


    <생-드니 교구 음식 나눔 봉사>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사의 봉헌시간 때마다 거친 손으로 건네주던 그녀의 스파게티면과 감자가 생각난다. 부자들 틈바구니에서 생활비의 전부인 렙톤 두 닢을 봉헌한 과부의 손이 그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굶주린 이들을 위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온 꼬마 아이의 손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코로나의 기승이 대단하다.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매일 이어지는 뉴스와 재난문자 속 확진자-사망자 숫자는 자칫 우리를 더 무관심으로, 무덤덤한 일상으로 빠지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아기 예수님을 깨어 기다렸던 이유를, 그분께서 우리에게 오신 뜻을 마음 깊이 간직하기 위해 가난한 이들에게 나서야 한다. 내 봉투 속 스파게티면과 감자알을 들고서….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계시도다.”


    <생-드니 교구 주교좌 성당>

    김항수 파스카시오 신부
    의정부 교구 국내수학
  • 첨부파일
    생드니 주교좌성당.JPG
    생드니 교구 음식나눔 봉사2.jpg
    생드니 교구 음식나눔 봉사1.jpg
    오영진주교님 장례상본.JPG
    오영진 주교님 장례1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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