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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호 그의 신발을 신고] 나는 + 가이드다
    • 등록일 2022-05-18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506
  • 나는 + 가이드다

     

    2022년 5월부터 주위에서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오고 있다. 나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내 직업이 이탈리아 투어 가이드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느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거 없이 초, 중, 고등 교육을 마치고 대학교 졸업 후 취업에 스트레스받으며 이것이 당연한 듯 살아가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취업해야 하고 취업하면 결혼해야 하고 결혼하면 애를 낳아 길러야 하고 힘들어도 일해야 하며 돈을 벌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게 당연한 삶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라는 직업을 갖기 전까지...

     

    나는 공부보다는 노는 게 좋았고 학교보다 성당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했다. 지금 생각하면 복잡한 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 같다. 하지만 결국 현실을 생각해 작은 중소기업에서 전공을 살린 기계설계일을 하게 되었다. 잘하지도 못했고 나랑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적응할 거로 생각했다. 그러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가이드를 하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나랑 잘 맞을 거 같다며 한 번 해볼 생각 없냐는 친구의 이야기에 흥미가 생겼다. 아니 지금의 지겨운 하루를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다고 얘기했고, 그 주에 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한 번도 가볼 생각도 살아볼 생각도 없던 이탈리아 로마에 가게 되었다. 가이드라는 직업은 나에게 생소했지만, 한국에 있는 것보다 나을 거란 생각이었다. 29년 인생에 처음 타는 비행기 그리고 처음 가는 해외가 로마라니... 지금 생각해도 너무 무모했다. 하지만 그냥 하고 싶었다. 어쩌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그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해외에서 산다는 건 쉽지 않았다. 로마가 이탈리아인지도 몰랐고 그곳이 이탈리아어를 한다는 것도 몰랐다. 게다가 가이드로써 나의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는 것도 몰랐다. 현지인들에게 말 못한다고 무시당했고, 회사도 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친구는 나에게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처음으로 내 인생에서 욕심이 생겼다. 한국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된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타지에 던져지니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탈리아어를 하고 싶어졌다. 집 앞 카페에 무작정 들어가 아무 말이나 했다. 처음에는 이상한 동양인 취급하던 직원들이 이탈리아어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가이드를 잘하고 싶어서 로마 역사책을 밤새 읽고 공부했다. 우스갯소리로 한국에서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을 거라는 이야기도 한다. 30대에 처음으로 사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긍정적인 마음이 생겼고 자신감이 생겼을 때 3개월 만에 처음으로 팀을 맞게 되었다.

     

    첫 가이드를 한날은 잊을 수가 없다. 여행자들은 내 이야기에 웃었고 감동했고 칭찬했다. 좋은 후기들이 하나둘씩 올라오며 꽤 인기 있는 가이드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더 욕심이 생겨 현지 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해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서유럽 가이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라 힘들었던 일을 말로 다 못 하지만 어쨌든 좋은 분들이 훨씬 많아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좋은 기회로 가톨릭 성지순례 가이드를 하게 되어 소중한 경험과 큰 커리어를 쌓았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생각했던 해외 생활이 1년 2년 지나가며 10년 차가 되었다. 너무 안주해서 일까? 욕심이 사라지고 당연한 듯 지내고 있을 때 코로나가 터졌다. 단순히 지나갈 감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오래갔고 한순간에 회사가 문을 닫았다. 허무했다... 내가 지금까지 잘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긍정적인 마음이 부정으로 바뀌었고 삶의 욕심은 불만으로 변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가이드라는 직업을 원망했다. 코로나 이후 1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2년이 지나가니 불안했다. 이렇게 나는 다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건가?

     

    로마에 처음 왔을 때를 생각했다. 결국 나는 모든 걸 정리하고 한국에 다시 가기로 했다. 로마에서 적응했던 거처럼 한국에서 다시 적응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로마에서 인정받던 로컬 가이드 자격증은 한국에선 아무 쓸모 없었다. 나이 때문인지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여차 친구의 권유로 제과를 배우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너무 재미있었다. 제과는 정직해서 매력 있다. 내가 대충하면 대충 나오고 정성을 들이면 잘 나오는 디저트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딜레마에 빠졌다. 나는 가이드인데 디저트 장사를 하는 것이, 그것도 한국에서 하는 것이 맞는 걸까? 그렇다고 여행이 풀려 다시 로마에 간다고 답이 있을까? 코로나 같은 이런 상황이 다시 왔을 때 결국 지금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내 팀을 만들어 유럽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팀을 만들기 위해선 사람을 모아야 하고 여행하고 싶어 하는 동기를 만들어야 했다. 그 동기를 디저트로 이용하자! 마카롱을 가르쳐주며 프랑스를 이야기하고, 스콘을 만들며 영국 역사를 이야기하고, 티라미수를 만들며 이탈리아를 이야기하자! 랜선으로 유럽 도시를 투어하고 그 나라 디저트를 만드는 새로운 형식의 원데이 클래스를 계획했다. 그렇게 또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막 사업자를 내고 홍보에 열중하며 아직 수입은 없지만, 시작이라는 단어에 떨리고 설렌다. 사실 두려움이 더 크지만, 그때마다 로마에 처음 갔을 때를 생각하고 베드로 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봤을 때를 생각한다. 그리고 속으로 외친다. 나는 또 할 수 있다고. 마흔 가까운 나이에 내 친구들은 한 가정에 가장이 되어 중년을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아직 청년으로 남아 철없는 중년이 될 것이다. 당장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내일에 부정적으로 살기에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가이드라는 직업이 나에게 참 많은 것을 알려주었고 많은 것들을 할 수가 있게 해주었다. 누군가 가이드라는 직업에 만족한다고 물어본다면 내가 한 것 중 가장 행복한 일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가이드 할 때가 제일 좋다.

     

    김진우 사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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