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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호 생각의자] “예수님이 묵으실 때도 공문을 보내라 하겠냐”
    • 등록일 2022-04-27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598
  • “예수님이 묵으실 때도 공문을 보내라 하겠냐”

     

    얼마 전 사무실로 베레모를 쓴 한 남자가 쑥 들어왔다. 무슨 일로 오셨냐 물었지만 남자는 예수님께 정의와 평화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며 앉아버렸다. 사연인즉 택시 기사를 폭행하지도 않았는데 폭행죄로 감옥살이했고, 자신은 헌법 27조 기본권을 침해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이야기 내내 남자의 눈동자는 흔들렸고 때론 흐느꼈다. 이날 연대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지만, 그냥 이야기를 들었다. 딱히 도울 해결책도 없어 그 흥분된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 자꾸 그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남자의 이야기와 이름과 연락처를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베레모 남자는 다만 누군가에게 그 억울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까지 서울교구 신학생들의 방학 프로그램으로 정의, 평화, 환경, 농촌 현장에 가는 사회 사목 실습이 멈췄다. 코로나19 이전 신학생들과 함께 월성 핵발전소 현장에 갔었다. 신학생들은 월성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과 만나 경주로 가서 탈핵 순례에 함께 했다. 경주역 광장에서 잠시 쉬며 순례 참가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월성 나아리에 사는 황분희 회장님이 신학생들에게 예전에 천주교에서 밥과 잠자리를 제공해주었다고, 지금도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랬다. 월성 나아리 주민들이 서울 광화문에 있던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상경 투쟁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함께 연대하며 주민들 숙소를 마련해 드렸고, 명동에 있는 식당에서 따뜻한 밥과 소주 한잔을 대접했다. 새벽부터 추위에 떨던 주민들은 맛나게 드셨다. 회장님은 그때 일을 기억하고 계셨고, 부끄럽지만 고마운 인사였다.

     

     

    그리고 신학생들과 왜관에 있는 수도원에서 묶은 적이 있다. 수도원 신부님께 신학생들과 4대강 낙동강 녹조 현장을 가기 위해 하루 묶을 수 있는지 문의했더니 흔쾌히 손님의 집을 내주셨다. 그날 밤 신부님께 수도원에서 묶어간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다. 밀양 송전탑 싸움 때 할매들,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농민들 이야기였다. 수사님들은 밀양 송전탑 싸움이나, 가톨릭농민회 농민운동 현장에 늘 함께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도로 함께하고 밀양 할매들과 농민들이 교육이나 행사를 하게 되면 흔쾌히 장소를 빌려주고 정성껏 밥과 잠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예전에는 수도원 숙소와 장소를 이용하려면 공문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어찌 보면 필요한 절차이다. 그런데 한 수사님이 “예수님이 묵으실 때도 공문을 보내라 하겠냐”며 그 절차에 이의를 제기했고, 그 뒤로 수도원은 공문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문에 대한 수사님 이야기는 당장 아프고 힘들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형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순 밥 한 끼와 따뜻한 위로의 말들, 그리고 하루 편히 묶을 잠자리가 다이기 때문이다.

     

     

    촛불 혁명이 있었지만, 정권은 다시 바뀌었다. 산재 사망,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 홈리스 주거권 문제, 소성리 주민들, 생산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농민들, 핵발전과 제주 제2공항 등 난개발 사업 재추진 등등 연대와 싸움이 벌써 몰려온다.

     

    더욱더 연대가 중요해졌다. 하지만 늘 현장에서 연대할 순 없다. 내 삶의 자리에서 탐욕과 불공정한 권력에 맞서 연대할 수 있는 일들은 생각보다 많다. 기도와 기억과 관심,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들, 공유와 서명 동참, 필요한 물품 나눔, 가능하다면 잠시 짬을 낸 지지 방문과 퇴근 후 거리 미사 참여 등등.

     

     

    나 스스로 연대는 ‘몸 빵’, ‘시간 빵’이라 말한다. 현장에서 몸과 시간으로 때우는 몸 빵, 시간 빵도 중요하지만, 그중 제일은 ‘마음 빵’이다. 그렇게 마음을 나누다 보면 이 고난의 시간도 곧 끝날 것이다.

     


    맹주형 아우구스티노 /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선임팀장, JPIC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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