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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호 그의 신발을 신고] 프리랜서 13년차, 정규직 작가가 되어보니
    • 등록일 2022-11-16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457
  • 프리랜서 13년차, 정규직 작가가 되어보니

    어려서부터 누군가 내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없었다. 그게 글로 써 내려가는 일이든, 입을 통해서 하는 이야기든 나로 하여금 사람들이 ‘반응’하는 자체가 행복이고 에너지였다. 같은 이야기라도 더 재밌게 만드는 재주. 내가 13년째 구성작가로 살아가는 이유이다.

    2010년에 방송작가 일을 시작해 올해 5월까지 여러 방송국과 외주 제작사를 다니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고약한 심성의 PD를 만나 이 바닥 매운맛을 온몸으로 느꼈던 막내 작가 생활,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취재 나가기 일쑤였던 입봉 시절, 1평 남짓한 편집실에서 며칠 동안 잠 한숨 못 자고 지새웠던 나날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들었지만 언제나 나의 일을 사랑했다. 사람들이 ‘잘 봤다’, ‘재밌게 봤다’ 한 마디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지난 연말부터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일하는 ‘형태’의 문제였다. 계약직도 아닌 프리랜서로 13년. 프로그램이 끝나면 작가의 자리도 종잇장처럼 날아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최근엔 미디어 시장이 급변하면서 런칭-폐지의 사이클이 더 빨라지고 빈번해졌다.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감을 달고 일해야 할까’ 현타(?)가 밀려오던 시점에 과거 콘텐츠 제작으로 연이 닿았던 수의사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작가님, 언제까지 방송만 하실 거예요”

    동물병원을 접고 새로운 곳으로 눈을 돌린 원장의 스타트업 이직 제안이었다. 반려동물 데이터를 기반으로 헬스케어 플랫폼을 설계하는 회사인데 그곳에서도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팀을 꾸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때마침 방송계에서도 뉴미디어나 스타트업 시장으로 이적 바람이 불고 있었고, 우리 팀만 해도 두 명이나 이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본질적인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성장 가능성이 충분한 스타트업이라 판단되는 곳이었고, 내 의지에 따라 정규직 형태로 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6개월간 고심 끝에 나는 시류를 따르기로 했다.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은 아니지만 넓은 의미에서 하는 일은 기존과 다를 게 없다. 똑같이 기획하고 구성을 하고 글을 쓴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된 지금. 규칙적으로 만날 수 있는 모임이 생기고, 수면 패턴이 바뀌고, 주말을 기다리는 요일 개념이 생겼다.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삶. 퇴근하고도 과업 없이 마음 편하게 취미생활을 하고, 주말에 전화나 카카오톡 알람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삶. 연차를 쓰고 병가를 쓸 수 있는 삶. 직장인이 되어보니 남들에겐 당연한 것들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혹사하며 일하던 습관이 남아있는지라 가끔은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때가 있지만 어쨌든 이러한 체계 안에서도 일은 충분히 돌아간다. (스타트업이라 숨도 안 쉬고 달릴 줄 알았는데 요즘은 이쪽 업계도 갖출 건 갖추고, 지킬 건 지키자는 분위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밥줄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해방됐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실로 ‘안정감’이란 무엇인지 체험하는 요즘이다.



    완벽한 직장이란 없기에 지금의 직장도 시간이 흐르면 어떤 단점이 눈에 보일지 모른다. 극단적으로는 다시 방송계로 돌아가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 그러나 내일의 걱정은 제쳐두고 지금 직장 생활을 후회 없이 즐길 예정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 안에서 사회에 필요한 콘텐츠를 만들고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일. 그런 일을 내가 하고 있다고 동료 작가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더 이상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되고, 갑자기 편성이 죽어서 원고료가 깎여 나오는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도 ‘안정감’ 있게 작가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이승민 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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