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시는길
  • 후원안내
  • 문의하기
자료실

웹진

  • home
  • 자료실
  • 웹진
  • [2월호 그의 신발을 신고] 사회사목국 직원 인터뷰 - 이주사목위원회
    • 등록일 2023-02-13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224
  • 사회사목국 직원 인터뷰 - 이주사목위원회

    1. 자기소개 겸 위원회 소개 

    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는 황준호 요셉이라고 합니다. 이주사목위원회는 이름에서 느껴지다시피 이주민들을 위한 일을 하고 있는데요. <국가별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주민 신자들을 위해 언어권별 미사와 행사를 준비하고, 사각지대에 있는 이주민들을 돌보기 위한 <이주민 쉼터>도 마련하여 삶의 위험에 처한 이주민-특히 여성이나 아이, 청소년 그리고 환자를 위한 공간을 각각 마련하여 보호해 주는 시설을 운영 중입니다. 그 밖에도 <상담센터>를 마련하여 이주민들에 대한 상담이나 각종 도움을 프로그램화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확하게 2015년 7월 1일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고요. 지금은 사무국과 서울가톨릭상호문화센터에서 일을 맡아 처리하고 있습니다. 사실 첫 근무는 이주노동자 상담실에서 시작했었습니다. 주로 필리핀 분들과 기타 영어권 언어를 가지고 계신 분들을 만나 임금체납/병원진료/비자연장 등 그분들에게 즉각적인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동반하여 일을 처리했었는데요. 크든 작든 직접적으로 그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많이 느낍니다.

    저는 이전에는 교회 쪽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전혀 상관없는 분야로 이직, 게다가 급여도 많이 적어지는 상황이지만 이직을 결심한 이유는, 제가 더 이상 돈을 좇는 삶을 살면 안 되겠단 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부인의 배 속에 아이가 있었거든요. 올바른 사람이 되고 싶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2. 일하면서 긍정적 경험

    이주민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표현을 들을 때가 가장 좋았습니다. 특히, 상담실에서 근무할 때 그런 일들이 종종 있었는데요. 임금이나 퇴직금을 받지 못해 억울함을 호소하던 분들에게 법적인 절차 등을 통해 그 돈을 받게 해드렸을 때나,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아픈 환자들이 검사비와 수술비 등이 없어서 병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그 비용이 해결되었을 때 등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자신을 꺼내 주었다는 의미로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막상 이런 일을 계속하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고맙다는 마음은 잘 전달됩니다. 손을 잡고 눈물을 보이시는 분도 계셨고, 돈을 주시려는 분도 계셨습니다. 모두 괜찮다 하고 건강히 잘 지내시라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서면 가슴이 조금 부풀어집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이 뿌듯하고, 다른 분을 또 찾아갈 힘이 생기게 됩니다. 일하다 보면, 긍정적인 경험이 부정적인 경험을 지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3. 일하면서 부정적 경험

    직접적인 사건보다는, ‘한계에 부딪힐 때’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법과 제도의 한계는 물론이고, 돈이 없어서, 생각이 달라서, 능력이 없어서 등 이런 것들이죠. 그런 문제를 직면할 때, 저는 많은 분열을 경험했습니다. 노력할 명분은 있으나 보상이 없으니 노력하지 않는 이들이 생깁니다. 또 누군가는 명분만을 쫓아 다른 이들을 폄하하고 비난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이들도 생겨납니다. 당연히 각자의 사정과 위치가 다르니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만, 그런 모든 것을 확인하고 한 방향으로 이끌어 줄 시스템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부정적인 생각이 파도처럼 덮쳐옵니다.

    몇 년 전, 워크숍에서 이런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이곳은 교회인가? 회사인가?” 회사처럼 운영하는 교회와 교회 업무를 처리하는 회사, 방점이 어디에 찍히느냐에 따라 조직 운영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어느 한 곳으로도 정의 내리지 않는 유연한 곳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어느 한 곳으로도 정의 내려지지 못하기에 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유연성과 경직성 그 사이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면, 확실한 방향성과 목표가 부족한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선장님이 계속 바뀌니 항해사라도 잘 두어야 배가 제자리에서 도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4. 내가 생각하는 좋은 노동이란?

    예전에 사회사목국 직원교육에서 사회권이라는 단어를 배웠습니다. 기업 총수에게 갑질을 당한 운전기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그 일을 그만두지 못한 이유는, 수입이 끊겨 생계가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에게 사회적인 안전망이 있어 언제든 일을 그만두었을 때 최소한 먹고 사는 문제에 큰 지장이 없게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사회권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좋은 노동이란 첫째로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자는 부당한 대우를 참지 않을 것이고, 노동의 선택은 오롯이 노동자에게 있게 될 것입니다. 진짜 그게 가능하냐는 의심도 있지만 머지않아 그런 사회가 도래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노동을 선택하게 될까요? 아마도 자기가 좋아하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좋은 노동의 두 번째는 자아실현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하는 목적이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존재하며 자기를 성찰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될 때 좋은 노동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각자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살려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 그 효율성 또한 극대화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노동은 사회적 가치에 부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개개인이 모여서 이루어지고 그렇기에 다양한 가치와 삶의 방식을 존중하여야 하지만, 그 모두를 아우르는 사회 공동의 가치를 합의하지 않으면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노동의 의미는 지금의 ‘먹고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일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노동에 대한 많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그런 생각들을 하나로 모아 인정을 받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법과 제도를 먼저 개선할 때 좋은 노동이 비로소 뿌리를 내릴 수 있을 테니까요.

    황준호 요셉
    천주교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

  • 첨부파일
    23 02 Mika Baumeister.jpg
    23 02 (12).png
    23 02 (13).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