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듦, 공사장, 돈 못 버는 일...”
저는 노동사목위원회에 소속된 <숨>에서 주일학교 학생들 대상으로 청소년 노동권리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4, 5년 전 청소년들에게 ‘노동’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는지를 질문했을 때 학생들은 힘들고 지치고 임금도 적은 일을 ‘노동’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올렸습니다. 코로나로 교리를 한동안 하지 못하고 얼마 전 오랜만에 노동권리교육을 하러 갔던 저는 놀라운 변화를 마주했습니다. “‘노동’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라는 같은 질문에 학생들의 대답이 바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월급, 일하는 것, 최저시급...’ 등 긍정적이고 현실적인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몇 년 사이에 우리 청소년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노동연구를 하는 하종강 교수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한 장면을 담아낸 글이었습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 북부 탄광촌에 사는 11살 소년 빌리가 우연히 발레를 접하게 되고 로열발레학교 오디션을 보러 가면서 꿈을 찾는 과정이 담긴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탄광촌에서의 장기파업 문제가 등장하는데, 영화 속에서 장기파업에 대한 사람들 태도는 우리나라의 인식과는 아주 다릅니다. 발레학교 면접시험을 망치고 실의에 빠져 걸어 나가는 빌리의 부자 뒷머리에 보수적인 교장 선생님은 "파업에서 꼭 승리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로열발레학교의 교장이라면 영국 사회에서도 최상류층에 속하는 사람이고, 영화 속에서도 권위의 상징으로 그려지는데 시골에서 올라온 광부 부자에게 파업에 승리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파업을 떠올렸을 때 ‘나를 불편하게 하는 문제’라고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파업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 결국 시민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길이라는 영국 시민의 깊은 이해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저 역시 세계여행을 떠났던 시절 유럽인들의 파업을 대하는 자세를 보며 놀랐던 적이 많습니다. 갑작스럽게 결항한 비행기, 갑작스럽게 변경되는 열차 스케줄에도 화를 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는 파업을 존중해야 나의 권리 찾기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스케줄이 변경되어 화가 난 사람은 저 하나였으니 그때의 무지함은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던 저는 외국에 사는 친구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친구들은 어려서부터 학교 교육을 통해 노동자 권리 교육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모의 파업을 수업 중에 진행하기도 하고, 사용자의 관점 노동자의 관점에서 토론하기도 하는 등 노동에 대한 교육이 공교육을 통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교육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노동인권에 대한 이해도 당연히 높아졌던 것입니다.
지난 교리 시간 학생들의 대답에 놀라 노동인권 교육을 받아본 사람이 있는지를 묻는 말에 대부분 학생은 손을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한 번씩은 배웠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국가교육 과정 안에서 노동인권 교육이 실시된 이후 청소년들에게 건강한 노동에 대한 인식이 자리할 수 있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다양한 노동 문제들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노동인권에 대해 교육받고 있지만 공교육에서 노동인권 교육을 받지 못한 세대인 우리는 어떤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건강한 사회, 건강한 노동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도 노동에 대한 건강한 지식을 쌓는 일에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 않을까요? 작은 배움도 사회를 이해하는 큰 첫걸음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송수미(가톨릭 청소년 노동권리 교육 ‘숨’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