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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노동•가정 2021-7.8.9] 모세의 부르심과 예수님의 부르심
    • 등록일 2021-11-06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48
  • <신부님 / 반갑습니다 1>

     

    모세의 부르심과 예수님의 부르심

     

    화곡본동 성당 정월기 프란치스코 신부

    (둥지팀 동반사제)

     

    직장도 불안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열등감을 느낄 때가 있다. 우울하면 의욕이 상실된다. 우리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열등감이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간은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그 열등감 극복하려는 여정이 인생 여정이하고 한다.

     

    이 세상 태어나서 처음으로 체험하는 세상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무기력한 자신의 처지를 경험하며 어려서부터 열등감이 쌓여간다. 어린아이가 체험하는 세상은 먹을 것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려서부터 열등감으로 인생을 시작하지만 좋은 부모나 사람을 만나면 열등감을 극복하며 성숙해간다. 그러나 그런 이상적인 부모를 만나기는 쉽지 않음으로 그 열등감을 지니고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우리의 열등감은 우리의 삶의 뿌리 깊이 박혀있다. 형제들에게 치이고, 공부도 못하고, 키도 작고, 얼굴도 그렇고, 가난하고, 방치되었던 어린 시절의 삶의 경험 등이 열등감을 조장한다. 또한, 여자이기 때문에 당한 차별과 열등을 많이 체험하면서 살아왔다. 여자라고 늘 허드렛일을 하고, 여자라고 천대받고, 학교도 못 가서 배우지 못한 현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적이 늘어나게 되고 그럴 때마다 열등감도 커진다.

     

    모세의 삶의 여정을 보면 심한 열등감에 사로잡혀있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집트인의 정책으로 히브리인들은 모두 노예가 되었다. 히브리인들의 노예가 강한 세력으로 불어나자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의 아들들을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 모세는 태어나면서 죽음의 위협 속에 있었다. 많은 어린아이가 죽는 와중에 모세는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태생부터 무의식적인 트로마에 노출되었다. 사내아이인 모세는 죽음을 피해 작은 상자에 담겨 나일강으로 보내졌고, 강에 떠내려가 죽을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이집트 공주가 아들로 삼는다.

     

    다리 밑 강에서 주어 온 사람은 뿌리가 없는 사람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왕궁에서 친자식들로부터 놀림을 받거나 노예의 아들이라고 천대를 받거나 소외된 경험을 하며 물에서 건져온 자로서의 멸시와 천대를 받았을 것이다. 노예 출신의 모세를 형제로 동등하게 대우하는 사람이 극히 적었을 것이다. 이런 그의 삶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서 모세는 사람을 살해하게 되는 모난 성격이 되었을 수 있었겠다.

     

    모세는 히브리 동족을 때리는 이집트 감독관을 살해하게 되고 그 때문에 모세는 이집트를 떠나 미디안 땅으로 도망을 가게 된다. 인자로서 도피 생활이 시작된다. 왕궁은 다리 밑, 물에서 건져온 노예 출신 모세의 안식처가 되어줄 수 없었다. 아라비아인들 가운데 이방인으로 살게 된다. 미디안 땅에서 장인 이드로의 목자가 되어, 십보라와 결혼하여 아이도 낳게 된다. 출생의 열등한 처지와 물에서 건져온 자로서의 정체성 혼란, 살인자로서의 쫓기는 몸, 장인의 집에 양을 치는 목자가 된 서러움을 겪어야 했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안 한다”라는 말이 있다. 가진 것 없는 모세의 신세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할 수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을 살아온 모세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다. 그의 나이는  80세이고 그 장소는 호렙산이었다.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모세가 보러 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탈출 3,3-5)

     

    모세는 불타는 하느님의 사랑 앞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불타는 사랑으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 지난날 자신이 지탱해온 열등감과 과거의 낡은 삶을 벗어버리고 하느님의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신다. 열등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부르시어 사람 낚는 어부로 삼아주신다.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사랑과 성령을 가득히 부어주시어 사랑의 사도 성령의 사람이 되도록 부르신다. 열등감이 아니라 늘 함께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성령으로 살아가도록 부르신다.

     

    “하느님께서는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이 보화를 담아주셨습니다. 이것은 그 엄청난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2코린 4,7)

     

    신약성경의 제자들도 주님의 부르심에 즉시 주님을 따른다. 모세에게 불타는 사랑으로 나타나셨던 하느님이 예수님 안에서도 불타는 사랑을 갖고 제자들을 불렀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마태 4,18-20)

     

    모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열등감이라는 신발을 벗어버리고 하느님의 사람이 된다.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불타는 사랑으로 모세를 부르셨다. 이런 하느님의 불타는 사랑의 부르심을 이해하면 제자들도 예수님 안에서 그런 불타는 열정과 사랑을 보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떨기나무에서 불타는 사랑으로 모세를 부르시는 하느님처럼 예수님도 불타는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이제 우리가 응답할 차례이다. 과거의 열등감과 열등감에 짓눌렸던 지난날의 낡은 신발을 벗어버리고 하느님이 사랑의 신발을 신고 주님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주님 사랑의 도구가 되어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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