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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요안 신부 선종 10주기 추모 기획연재 6
    • 등록일 2020-11-16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362
  •  

    내가 본 도요안 신부님


    허윤진 안드레아 신부
    서울대교구 대신학교 원감


      한국전쟁의 여파로 사람뿐 아니라 강산마저 헐벗었던 이 땅에 오신 1959년부터 주님께 돌아가신 2010년까지 줄곧 가난한 청소년들과 노동자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신 도요안 신부님의 일생을 단 몇 줄로 되새겨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마지막 10여 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어서 이 글을 요청받았으므로 제 눈에 가장 두드러지게 들어왔던 사목자로서의 도 신부님의 특징을 네 가지로 요약해보겠습니다. 

     

      첫째, 도 신부님은 평생 가난한 사목자로 사셨습니다. 수련을 마치자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캐나다가 아닌 대한민국을 선택하셨습니다. 빈민가에서 가난한 이주노동자의 손자, 아들로 태어났으므로 몸에 밴 가난 때문에 가난하게 사실 수 있었다거나, 청빈해야 할 수도자라서 가난하게 사셨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가난하게 살 수 없는 사람은 가장 가난한 이들을 우선 선택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참된 목자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난한 양들은 가난을 싫어하는 목자에게 결코 다가갈 수 없습니다. 곧 찢어질 듯 낡은 속옷에 대해 물었습니다. “신부님, 궁상이라는 말 아세요?” “새 옷은 기분 좋지만, 헌 옷은 익숙하고 편안합니다.”

     

     

      둘째, 도 신부님은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목자로 사셨습니다. 그러나 유명한 대학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분에게는 오직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의 모상인 존귀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사는 데 필요한 지식을 찾으셨을 뿐입니다. 가난 때문에 못 배운 이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고, 그들이 자신 있게 일어설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쉬지 않고 공부하셨습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교회 문헌은 물론이고 조선일보부터 한겨레신문까지, 뉴욕타임지부터 워싱턴포스트까지 다양한 대중매체와 일반 문헌들을 읽고 그것들을 교회의 정신으로 재해석하셨습니다. 

     

      셋째, 도 신부님은 정말로 한국을 사랑하신 사목자이셨습니다. 그분에게 고국인 미국은 그저 미국이라는 나라일 뿐이고, 남의 나라이어야 할 대한민국만이 언제나 우리나라이었습니다. 하얀 피부와 높은 코는 어쩔 수 없었지만, 미국인 잭 트리솔리니가 아닌 도요안이라는 한국인으로 육화(강생)의 신비를 실재화하셨습니다. “이곳에 뼈 묻으러 왔습니다.”라고 하신 것처럼 참으로 어려웠던 시기부터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시간까지 정신과 영혼과 정서 모두 한국인으로 사셨습니다. “그리도 한국인으로 오래 사셨으면서도 왜 귀화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귀화하면 꼭 필요할 때도 미국을 가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것뿐입니다.”

     

     

      넷째, 그분은 마음뿐 아니라 늙고 병든 몸 한 조각까지도 기꺼이 나누어주고 가신 사목자이셨습니다. 도 신부님께서 당신의 시신 전부를 기증하시기도 했지만, 병들어 아픈 몸으로 그날 오후 늦게까지 앞으로 이 글을 읽을 후배들에게 생명윤리에 대한 지식을 정확하게 전달하시기 위해 교황 문헌을 검색하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입니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남은 이들을 위해 단 한 방울의 땀까지 쥐어짜신 착한 목자이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점들 때문에 서울대교구 사제들이 경건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러드렸습니다. 교구 신부가 아닌 수도회 신부의 장례미사를 명동대성당에서 봉헌한 경우는 그때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전국의 그 많은 주교님께서 수도회 사제의 장례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명동대성당으로 오실 일도 없을 것입니다. 많은 분이 알고 계신 것처럼 도 신부님은 청년 시절부터 끊임없이 이어지는 갖가지 지독한 병고를 숙명처럼 안고 사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 마지막 날에 그 고통의 대가를 따뜻하게 안배해주셨습니다. 마지막 검안을 한 의사가 말해주었습니다. 

    “다행이시네요.”

    “예?”

    “아마 돌아가시는 것도 모르고 고통도 별로 못 느끼신 채 주무시듯이 가신 것 같습니다.”

     

     

  • 링크
    http://www.nodongsamok.co.kr/load.asp?subPage=611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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