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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사목 자료]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10
    • 등록일 2021-06-04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42
  • 노동의 우선성에 대한 성찰

     

    H.E. PATRIARCH ANGELO SCOLA

    안젤로 스콜라 추기경 (1941 - ) 신학자, 철학자. 밀라노 대교구장.)

     

    현안

     

    먼저 우리가 물어야 할 몇 가지 물음이 있다. 나는 MalinvaudArcher의 글들이 나 같은 평신도조차 이해할 수 있는 매우 분명한 용어로 자본/노동의 관계에 있어 지난 몇 해 사이에 일어난 주요 변화들을 잘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이 글들은 이 모임을 열게 된 물음들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 물음을 반복하면, 변화된 상황에서, 노동의 우선성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여전히 설득력이 있는가? 그리고 회칙 노동하는 인간(11-15항 참조)이 제시한 용어로서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회칙 백주년(특히 32-35, 43)이 제시한 더 복합적인 경제 체계의 관점은 우선성을 충분히 재확인하는가?

     

    비판적인 관심

     

    이 문제의 집합을 부득이 도식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한편으로 우리는 순전히 경제 지형에 외적인 것으로서 제안된 윤리학적 및 인류학적 참조에 기반한이 원리를 재확인하는 데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 다른 한편 우리는 경제 영역이 자율적이고 절대적이며 자기 일에 열중하는 세계로 간주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제가, 그 구성적 요소들에 있어서 그리고 현재의 복잡한 연결들에 있어서, 그 내부에서부터 윤리학과 인간학과의 끊임없는 관계를 요구한다는 보여주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 설득력이 있으려면,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선성은 경제 분야에서 강한 의미로 편리하게 나타나야 하며, 밀접하게 관련되어야 한다.

     

    노동/자본 관계: 그 변화들

     

    MalinvaudArcher는 노동/자본 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대단히 잘 분석했으므로 그 내용을 반복하지는 않겠다. 다만, 경제활동이 이제 공장 체계에 기초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수준의 인간관계에서 자본과 노동이라는 계급 사이의 (국가, 자본, 노동 사이의) 균형 잡힌 관계는 이제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환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른바 세계 차원의 시장(global market)에서 관계자들은 이제 사람들을 직접 다루지않으며 대신 자본의 배치에 관련한 정보와 결정을 다룬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처럼 복잡한 사회에서 경제적 동력은 사회적 동력과 더욱더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제3 영역의 비중이나 단체(기업)의 활동과 결과에 있어 소비 행위의 중요성이 갖는 비중을 생각해보자.

    따라서 우리는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사회 교리가 제시하는, 성찰의 원리, 판단의 기준과 행동의 지침을(자유의 자각, 72항 참조) 따르려 하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성이라는 사회교리 원리가 있음에도 말이다.

     

    이 원리를 재확인하기 위한 토대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조건들에서조차 우리의 설명에 기초가 되는 이 원리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힐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싶다.

     

    첫째, 나는 노동을 생산 과정의 한 요소를 강등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 적합한 노동 개념을 이념적으로 축소한 것이었음을 지적하고 싶다. 옛 방식의 공장 체계에서 발생하곤 했던 그런 일은 완전히 시대에 뒤진 것이다. 교회의 사회 교리는 언제나 그 같은 접근을 배격했다. 교회의 사회 교리에 따르면, 노동은 인간의 기본적인 체험을 떠받치는 두 기둥 가운데 하나다. 다른 한 기둥은 정서적 생활(emotional life)이다. 그리스도교 인간학에 있어, 노동은 노력(수고)을 더 요구하고 모순적인 측면들이 있음에도 -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께서 펼치는 창조 및 구속 사업에 참여하는 핵심 형식이다.

     

    둘째, 경제성장이 생산 요소들에만 연결이 된 것이 아니라는, 최근 경제성장에 관한 이론적 성찰은 노동의 이 인간학적 가치를 확증하는데, 이런 확증이 바로 이 원리가 유효하다는 두 번째 근거가 된다. 실제로 주식자본은 필요하더라도 경제성장의 일부 만을 설명할 수 있다. 경제성장은 생산 및 조직 도구들의 사용에 있어 인간 노동의 효율성에 훨씬 더 많이 좌우된다. 나의 견해로는, 경제전문가들이 경제성장에 있어 중추적 요소들로서 학습과 인간적 자본에 대해 말함으로써 주장하는 바는 노동의 탁월성이 정확하게 경제 과정에 귀속되는 것이라고 인정하는 명확한 방식이다. 그러므로 인간학적 긴급성을 강조하는 것은 경제학 그 자체다.

     

    셋째, 지난 몇 십 년 동안 제도적 전망이 중요해졌다. 즉 경제활동이 따라야 할 규칙과 규범 그리고 가치의 공유 체계는 그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 더욱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나쁜 법률은 경제를 질식시킨다. 창조적이지 못하고 재분배의 성격만 띠는 문화적 행위들은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한 나라의 다른 운명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윤리적 욕구는 경제 내부에서 나타난다. 이 욕구는 입법 과정을 통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 제도 구축은 사회생활의 조직화에 의해 실현되는데, 이런 제도 구축이야말로 인간 노동이 자본보다 우선한다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비록 간략하게 말했지만, 이 모든 것이 명백히 강조하는 것은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위성이다. 비록 이 탁월성이 인간학과 윤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경제 그 자체의 내부에서도 볼 수 있다.

  • 링크
    http://www.nodongsam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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