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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사목 자료]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3
    • 등록일 2021-03-31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76
  • 오늘날 노동이 자본에 종속되는 추세의 여섯 요소 중에서

     

    2. 지구촌 차원에서, 가톨릭과 이슬람국가에서 더 낮은 비율이 여성이, 그리고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가장 높은 비율의 여성이 노동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여성의 참여는 노동 활동 인구를 특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도, 이런 추세는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증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일시적 현상이라고 볼 징표는 아무것도 없다. 실제로 서비스 영역의 확장과 결합하여 여성의 참여는 관측할 수 있는 미래에 확대될 것 같다.

     

    그러나 노동현장에서 여성들의 고용은 상대적으로 낮은데, 이는 가정 내의 가사에 언제나 과다하게 고용되어 있고, 게다가 출산 휴가와 아기 돌봄이라는 영속적 문제들을 안고 있으며, 전통적인 형태의 차별에 기인한다. 간단히 말해서, 지금 더 많이 일하고 있는 여성들은 불리한 조건들에서도 일한다. 그러나 노동이 각각의 인격의 완성에 공헌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그들의 인성을 함양하기 때문에, 고용에 있어 여성의 자발적인 진입은 기꺼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결국, 노동 시장에서 여성들의 철수(withdrawal)는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 시기에, 즉 반세기도 안 된 시기에, 발전된 사회들 안에서 더 많은 특권을 누리는 영역들 이 보이는 특성일 뿐이다. 분명히 이는 [여성의 노동현장 진입은] 가족이 수행할 책임들을, 특별히 어린이들과 노인들에 대한 책임들을 면제한다는 문제들을 제기한다. 이 문제는 배타적으로 여성의 역할들에 집중함으로써 해결될 수 없다. 교회의 사회 교리가 직면한 도전들 가운데 하나는 양부모의 책임 있는 양육을 위해서 도덕적으로 요구되는 바들을 힘들여 고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비-고용자들의 주변화를 벌충하기 위해 일자리 나누기나 partial working(일부분의 노동)을 주장하는데, 그런 것들은 자녀 양육과 직업적 지속성을 결합하려는 여성들의 욕구들과 대단히 잘 조화할 수도 있는 ‘사회적 연대’라는 문제에 해결책 가운데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노동 일수를 줄이려는 추세를 강화하는 것은, 회사가 움직이는 (말하자면 1주 6일 노동제) 시간을 고용인들의 주 노동시간(working week)(말하자면 4일)에서 떼어놓지 않음으로써,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도, 중기(中期)의 비고용을 상당히 완화할 수도 있다. 많은 비즈니스계에서는 그런 제안들이 단위 노동 비용(unit labour costs, 단위 노임)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제안들이 경제성장에 불리한 것으로 여겨진다.

     

    3. 정보기술의 증대는 노동자들의 육체적 능력들보다는 지적 능력들의 극대화를 요구한다. 그리고 서비스 노동은 노동자들의 사회적 기술들이 동원되어야 한다. 만일 물려받은 사회적 불평등이 새로운 노동의 세계(정보기술과 서비스 노동)에서 영속되지 않으려면 - 새로운 노동 세계의 성장은 인간의 능력들을 최대한으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계발하는 데에 달려 있을 것으로 예견되는데 – 모든 이에게 가장 높은 질의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과 관련해서, 전 세계에 걸쳐 다음의 두 관계가 철저하게 증명되었다. 첫째로, 전체 정규 교육 과정 기간이 길면 길수록, 일반적으로는 더 나은 삶의 기회가 있으며, 특별하게는 더 나은 직업 및 소득에 있어 더 나은 전망이 생긴다. 둘째로, 이런 교육 및 후속 고용 이점들의 획득은 학생들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밀접하게 관련되는데, 그런 배경을 통해서 문화적 이점들이 가족 안에서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된다. 따라서 교육은 사회적 포용/배제라는 역학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직업적 기회에 수문장으로서 교육은 가장 낮은 수준의 사회적 자본을 가진 이들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심각한 차별을 가한다. 발전된 세계에서, 교육 기회들과 교육적 결과들의 불평등은 인종적 집단들에서, 아시안 계통보다는 아프리카의 인종 집단들에서 또렷하게 나타난다. 젊은 아프리카인들 가운데서 더 높은 비-고용률은, 비-고용 유럽인들보다 훨씬 심하게 겪는 빈곤과 함께, 어려운 정세와 도시 내의 하위계층의 문제의 원인이 된다. 오늘날 인종적 불평등은 가장 치유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차별 철폐 조치(affirmative action)’ 정책들이나 다른 형태들의 차별 철폐의 바람직함에 관해 확신하지는 않는다. 그 같은 프로그램들에 수반된 수준들의 축소는 틀에 박힌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에만 이바지할 수 있는데, 틀에 박힌 부정적 이미지의 강화는 인종적 소수민 가운데 성공한 구성원들을 존중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부색을 전혀 보지 않는’ 정책들은, 단순하게 정규 교육 기회들에만 의지하는데, 교육 및 고용에 있어서 모두 인종적 차이들을 오래 끌 수 있을 뿐이다. 더 나은 실행은 역사적으로 인종 그룹들 사이에서 발생하게 된 교육-직업적 차이들을 영속성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선택적(preferential)’ 활동보다는 ‘발달의(developmental)’ 활동에 실질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지역 공동체의 전문학교에서 정부 보조금으로 한두 해 학업을 통해 목적을 이룬다는 조건으로 잠정적인 대학 입학을 허용하거나, 인종에 기반한 사업들을 위해 단기 마중물 자금을 지원하는 그런 조처들은 젊고 덜 숙련된 이들 가운데에서 비-고용을 줄이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서 자기들의 능력이 보편적 기준들에 부응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더 많은 수의 젊은이들의 존엄성을 지탱하고 강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질적으로 볼 때, 노동의 본성은 변형되고 있으며, 변화들에는 빈번하게 다른 고용주들과 다른 노동 장소로의 이동이, 어떤 이들은 ‘가상 일터(virtual workplace)’을 선도하는 것으로 보는 ‘가정 노동’의 증가가, 더 많은 자기-고용과 - 시간제 고용, 제한적 계약고용, 부분적 노동의 축적 고용 등의- 더 많은 임시 고용이 포함된다. 공장들과 광업과 같은 채취 산업들의 폐쇄들에 맞선 저항이 있음에도, 하나의 작업장과 평생의 거주에 적합한 노동은 사라지고 있다. 정보기술의 응용을 동반하는 노동의 파편화가 증대되는 것을 고려할 때, 이는 차례로 연대의 쇠락이라는 문제를, 노동조합원의 감소라는 문제를, 새로운 형태의 불안(자가 고용 사업의 높은 실패율)과 고립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동료 노동자들과 사회적 연대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가 지켜가며 살아야 할 인류의 단일성에 내재하는 것이지만, 그 연대의 양태들은 변하고 있으며, 옛 형태의 노조 조직화, 옛 형태의 조합 운동, 그리고 직업적 연합들조차도 어느 곳에나 약해지고 있다. 문제는 실행 가능한 새로운 형태들의 사회 연대를 특정 하는 것인데, 그 형태들은 노동의 우선성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촉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자주 탈규제의 ‘미국식 모델’이 쫓아야 할 바람직한 모델로 제시되는데, 이 모델에서는 고용 조건들과 임금에 있어 더 큰 유연성이 사실상 비-고용을, 심지어 비숙련자들 가운데서도 비-고용을 줄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모델은 재직기간(job-tenure)의 불안전성과 함께 임금 격차의 확대를 동반한다. 임금 격차의 확대는 이 모델이 높은 수준의 삶을 사는 이들이 대규모 하위계층으로부터 점점 격리되는 사회를 만들어냄으로써 사회적 분열을 강화하는 뿌리 깊은 경향을 지닌다는 의미이다. 물론 그런 사회는 인종적 집단들과 이민을 적절하게 대변하지 않는다.

     

    저임금에서의 탈규제는, 그것을 사회보장제도의 규정을 완화하는 것에 결부시킬 때, ‘빈곤의 정식(a formula for poverty)’이 된다. 때때로 어떤 이들은 밝은 (재)고용의 전망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 ‘정식’이 들어맞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대폭 축소된 보험급여에다가 장기간의 비-고용은 지금의 인구에게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는 열악한 영양 상태, 형편없는 교육, 빈약한 삶의 기회로 세대를 잇는 파멸(intergenerational entrapment)을 수반하는데, 간단히 말해서. 이는 비-고용을 다음 세대에 안기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가 1996년 담화에서 강조한 것처럼,3) 번영과 경제적 성장은 사람들과 인민 희생으로 실현되어서는 안 된다. 자유주의(liberalism)는, 다른 경제 체계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을 그저 생산의 도구들로 만들어가면서 자본을 보유한 이들에게 혜택을 준다면 그것은 심각한 불의를 자행하는 것이다. 게다가 1997년에4) 교황은 시장의 자유는 ‘le droit primordial de tout homme a avoir un travail’(모든 인간의 원초적 권리는 노동의 권리라는 원리)에 반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3) L’Osservatore Romano, 22 March 1996 참조.
    4) L’Osservatore Romano, 25 April 1997 참조.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자본에 대한 노동의 탁월성(우위성)이 지닌 의미


    (주교회의 정의 평화위원회 노동사목소위원회 발행 문건을 짧게 나누어서 올립니다. )

  • 링크
    http://www.nodongsam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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