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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톨릭뉴스지금여기] <이주형 신부 강론> 1월 10일(주님 세례 축일)이사 55,1-11, 사도 10,34-38 마르 1,7-11
    • 등록일 2021-01-08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38
  • 첫 마음,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첫 마음

     

    며칠 전 눈이 많이 왔더랬죠. 퇴근 후 눈 쌓인 성북천을 걸었습니다. 소복이 쌓인 눈 사이로 걸으니 참 상쾌했습니다. 하얀 풍경 속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렸고, 눈사람을 만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다들 얼굴이 밝아진 듯했습니다. 겨울에 내리는 눈은 한겨울의 메마름과 추위를 견디라고 신이 주는 선물이라 했다는데, 코로나로 지친 우리들에게 잠깐의 여유가 주어진 것 같았습니다. 또한 눈은 본시 하얗습니다. 그 순백의 하얀 눈을 보며 순수함을 떠올렸습니다. 하얗기에 어떤 것도 그릴 수 있고, 새길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래서 누구든 눈을 보며 아이처럼 동심과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바로 눈이 주는 영감이 아닐까요? 아마 그것을 ‘첫 마음’이라고 할 수 있고요. 신입생, 신혼부부, 새로 시작하는 이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역경이라도 견디겠다는 겸손하고 순수한 마음 말입니다. 사제 생활 10년차로 접어들었는데 저에게도 그런 첫 마음이 있는지 성찰했습니다.

     

    신앙에 대한 진지한 성찰

     

    사제가 되어 많은 세례식에 참여했습니다. 세례식은 언제나 눈물과 감동이 가득합니다. 새롭게 그리스도인이 된 형제자매들은 거룩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주님을 따르며 신앙에 충실한 삶을 살겠다고 약속합니다. 이를 보며 사제로서 보람도 느낍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도 잠시, 새 영세자들 중 많은 분이 곧 냉담을 합니다. 영세받을 때의 거룩한 마음이 금세 식은 탓일까요? 아니면 신앙생활이 홀로서기가 어려워서일까요? 물론 경쟁과 불안이 강요되는 현실적 요인도 큽니다. 밤샘 시험공부로 피곤에 쩔어 미사에 못 나오는 학생들부터, 취업에 여념 없는 청년들과 일자리가 불안한 비정규직 종사자에 이르기까지 현실은 신앙생활을 하기에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항상 신앙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맙니다. 하지만 그래도 신앙을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고 권하고 싶습니다.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선익과 선물이 있고 저도 그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안도현

     

    신학적 순수함과 아름다움은 물질을 넘어 하느님과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뭔가를 시작할 수 있기를! 시구처럼 우리도 이웃과 세상에 사랑과 희망이 되면 좋겠습니다. ^^

    2021.1. ©️이주형 

     

    성장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신앙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현실과 신앙 사이에서 늘 고민하는 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순교자들의 영웅적 이야기가 남 이야기 같은 것도 솔직한 우리 심정이죠.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저는 빅터 프랭클의 “하느님의 계획은 영원에서 완성된다”는 이야기를 꺼내 봅니다. 참 사랑은 친절하고 함께 기뻐하며 견디어 내고 그래서 상대를 기다려 준다고 하지요?(1코린 13,4-7) 우리도 더디게 걸어가고 때론 옆길로 새지만, 신앙을 소중히 여긴다면 분명 그것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더디게라도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첫 마음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이고요. ‘첫 마음’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내가 안다고 하기보다 나의 무지를 먼저 인식하고 그래서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자세’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뭔가를 시작하게 하고, 열정을 갖게 하며,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킵니다. ‘세 살 버릇 여든에라도 고쳐야 하고, 청춘은 마음이 젊은 것이다’라고 하듯이 첫 마음이야말로 우리를 생기 있게 하고 살게 합니다. 주님 세례 축일을 지니며 겸손히 성찰하는 가운데 새롭게 삶을 시작할 용기와 희망을 얻으시길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구원을 받은 자임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한때는 죄인이었음을 속삭이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을 선택했노라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실수하는 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 하노라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강한 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이 힘주시기를 기도하노라고."

     

    캐롤 위머,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때는’ 중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장

  • 링크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161
  • 첨부파일
    31161_51223_4416.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