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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세상의 빛] 95. 도요안 신부와 청년 전태일 - 예수님 닮기와 하느님 나라
    • 등록일 2020-11-18
    • 작성자 관리자
    • 조회수 21
  • 가톨릭신문

    발행일2020-11-22 [제3220호, 17면]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세상의 빛] 95. 도요안 신부와 청년 전태일 - 예수님 닮기와 하느님 나라

    「간추린 사회교리」 494항


     평화는 사랑의 열매, 오직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다

    불안과 분노로 갈라지는 대한민국
     예수님 닮은 밀알 같은 사랑만이 암울한 현실과 사회 바꿀 수 있어
     정의, 평화의 장애물을 없애는 일


    “이 주변 블루칼라는 다들 민주당 지지했는데, 미국은 자유무역에서 연패했고 제조업도 멕시코로 나가 버렸어. 남은 건 월마트와 K마트에서 딴 나라의 제품을 파는 일뿐이지. 현역 시절 마지막 일급으로 200달러(약 22만4000원)는 받았어. 근데 지금은 시급 12달러(약 1만3000원)를 받지. 그 돈으로 젊은이가 생활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정당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 미국을 강력하게 재건하기 위해 트럼프 같은 사업가가 필요해.”(가나리 류이치 「르포 트럼프 왕국, 어째서 트럼프인가」 중)

     

    ■ 힘든 현실 속에서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1516)에서 이상적 사회를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존 스튜어트 밀이 1868년 영국 의회 연설에서 정부를 비판하면서 ‘디스토피아’(Dystopia)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암울한 세계나 사회를 뜻합니다. 괴롭고 고단한 현실도 디스토피아입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 불치병 환자들, 온갖 상처로 괴로워하는 사람 등 종류도 제각각입니다. 「간추린 사회교리」는 굶주린 이들, 글을 모르는 이들, 치료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집 없는 사람들, 소외와 차별, 버림당한 이들, 전쟁과 폭력으로 고통 받는 이들, 그리고 중독과 새로운 형태의 빈곤과 노예상황에 시달리는 모든 이들을 가난한 이, 약자라고 묘사합니다.(5항)

     

    ■ 반목과 대립의 이유, 불안과 좌절

     

    초등학교 시절 옆짝꿍이 누가 앉느냐가 큰 관심사였습니다. 마음에 들던 짝이 앉길 바라지 않으셨나요? 그런데 그도 잠시, 다투기라도 하면 책상에 선을 긋고 넘어오지 말라고 서로 으르렁댑니다. 하지만 어른이 돼 보니 명분과 실리, 이해관계가 경계를 형성하고, 자존심과 명예, 독선과 아집이 그 벽을 더 단단하게 합니다. 여기에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미됩니다.

     

    이번 미국 대선이 최고 투표율, 박빙 대결, 개표 결과 역전 등으로 세계적 주목을 끌었습니다. 관심의 축은 양진영이 내세우는 대조적인 세계관, 그 속에 녹아 있는 분열된 미국의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그 분열은 ‘러스트 벨트’(Rust Belt, 녹슨 공업지대)가 상징하듯 많은 이들의 불안과 소외, 또 양극화라는 미국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에 원인이 있습니다. 이는 대립이 증가하는 오늘날 대한민국과도 닮았습니다. 우리 사회도 불안과 두려움, 그로 인한 분노로 인해 갈라지고 있음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불안과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기

     

    1970년 11월 13일, 청년 전태일이 자신을 산화해 노동인권을 외쳤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노동운동은 큰 전환을 이뤘습니다. 또 그가 동생 같은 여공들을 항상 돌봐 줬다는 것이 큰 감동을 줍니다. 배곯는 여공들을 보면 늘 마음이 아팠다 합니다. 전태일 열사의 사망 이듬 해(1971년 3월 24일) 김수환 추기경님은 도시산업사목연구회를 설립, 노동자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이것이 노동사목위원회의 시작입니다. 여기에 1968년 서울 도림동본당에서 시작해, 2010년 11월 22일 선종하기까지 일생을 노동사목에 헌신한 미국인 사제 도요안 신부가 있습니다.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청년 전태일과 사제 도요안은 강생하신 그리스도를 무척 닮았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의 시대, 어려운 현실, 실망이나 좌절과도 싸워야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 닮기를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유토피아도 유토피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힘든 현실이 하느님 나라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밀알 같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 나도, 우리도, 사회도 바꿉니다.

     

    전태일 열사는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는 행위가 전혀 없었더라도 정말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담당 PD가 평화시장 근처 감자탕집을 한번 취재하러 갔대요. 문득 그곳이 평화시장이니까 그 할머니께 “혹시 전태일 아시나요?” 하고 물어 봤다는 거죠. 할머니는 “잘 알지. 단골이었는 걸.” 하셨어요. 그런데 여공들을 데리고 오면, 항상 자기는 안 먹고 여공들만 사줬다는 거예요. 그래서 공짜로 줘도 안 먹더라는 겁니다. 다음에 혼자 왔을 때 할머니가 “내가 너한테 돈 받을까봐 안 먹었냐? 바보처럼?” 물어 봤다는 거죠. 전태일 열사가 뭐라고 그랬을까요? “아이들한테 먹었다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안 먹은 게 탄로날까봐 먹었다 그러고 안 먹고 있었던 겁니다.(2020년 10월 13일 KBS ‘역사저널 그날’ 283화 중)

     

    “평화는 사랑의 열매이다. 참되고 지속적인 사랑은 정의의 열매라기보다는 사랑의 열매이다. 정의의 역할은 단지 모욕을 가하거나 손해를 입히는 것과 같은 평화의 장애물을 없애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 그 자체는 사랑의 행위이며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94항)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 링크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349953¶m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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